천연기념물 제489호인 광양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 입구의 안내판과 울창한 동백나무 고목들. 신라 말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비보)하기 위해 심은 한 그루의 씨앗이 천년의 세월을 이어 1만여 그루의 거대한 푸른 숲을 이루었으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존상'을 수상할 만큼 보존 가치가 뛰어난 남부 지방의 대표적 생태 유산이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옥룡사지로 고즈넉하게 이어지는 동백나무 숲길 산책로. 도선국사가 수백 제자를 양성하던 신라 말 불교 성지로 들어서는 이 길은, 사찰이 소실된 후에도 수령 100년이 넘는 고목들과 아담한 묘목들이 대를 이어 푸른 울타리를 이루며 천년의 역사와 고요를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다. 사진=문성식
하늘을 가릴 듯 울창한 고목들이 만들어낸 옥룡사지 동백나무 터널 숲길. 도선국사의 비보풍수 지혜로 조성된 이 숲은 천년의 세월 동안 대를 이어 깊고 푸른 그늘을 드리워왔으며, 숲길을 걷는 이들에게 태고의 고요함과 영적인 치유의 시간을 선사하는 명소이다. 사진=문성식

땅의 기운을 다독이고 화기를 누른 천년의 비보림(裨補林)

백운산(1,218m)의 단아한 지맥인 백계산(505m) 남쪽 품, 텅 비어 고요한 옥룡사지(玉龍寺址)를 품에 안고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거대한 숲이 있다. 수령 100년이 넘는 고목 7,000여 주를 포함해 1만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7ha의 산기슭을 메운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489호)이다.

이 숲의 시작은 신라 말인 9세기 후반으로 올라간다. 한국 풍수지리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은 864년부터 35년간 이곳 옥룡사에 머물며 수백 명의 제자를 양성하고 입적했다. 당시 도선국사는 옥룡사의 지기가 약한 것을 보강하고 사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절 둘레에 사시사철 푸른 동백나무를 직접 심었다고 전해진다.

동백나무는 잎이 두껍고 수분이 많아 불길을 막아주는 천연 방화수(防火水)가 되어 주었고, 열매에서 짜낸 기름은 사찰의 등잔불을 밝히는 유용한 자원이 되었다. 땅의 허함을 채우고 생명을 보살피려 했던 도선의 비보(裨補) 지혜는 그렇게 천년 숲의 아늑한 초석이 되었다.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길 산책로 위로 붉게 떨어진 동백꽃 융단. 신라 말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조성한 옥룡사지 동백숲은, 봄이면 가지 끝에서 피어난 붉은 꽃송이들이 땅 위로 떨어져 천년의 역사를 비추는 눈부신 붉은 양단을 펼쳐낸다. 사진=광양시
7월 하순의 녹음 속에서 청량한 고요를 전하는 광양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길. 봄날의 붉은 꽃 잔치는 지났지만, 세월의 궤적을 담은 고목들이 뻗어 올린 울창한 동백 잎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한여름의 열기를 시원하게 다독여주고 있다. 사진=문성식

두 번 피어나는 꽃,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선비의 지조

동백(冬柏)은 찬바람이 불어오는 한겨울에 꽃망울을 머금어 봄볕을 기다린다. 그리하여 3월과 4월이 되면 백계산 골짜기는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터져 나온 피빛 붉은 함성으로 물든다.

동백꽃은 생의 마지막 순간마저 서럽도록 고결하다. 벚꽃처럼 꽃잎이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게 만개했을 때 통꽃 그대로 ‘후드득’ 송이째 떨어진다. 나무 위에서 한 번 피고, 떨어진 땅 위에서 또 한 번 피어나는 셈이다. 누군가는 그 낙화(落花)에서 변치 않는 절개와 지조를 보았고, 시인 유치환은 ‘청춘의 피꽃’이라 노래했으며, 가수 송창식은 ‘눈물처럼 떨어진다’고 읊조렸다.

향기가 없는 대신 달콤한 꿀을 잔뜩 품은 동백꽃 속으로는 동박새와 직박구리가 날아들고, 꿀벌들이 파고든다. 봄날, 낙화로 붉게 카펫이 깔린 숲길을 거닐다 보면 온 산을 울리는 새소리와 벌 소리가 천년의 고요를 깨우며 생명의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사적 제407호 광양 옥룡사지 절터와 능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선 동백나무 숲. 신라 말 도선국사가 중창하여 수백 제자를 양성하고 선풍을 일으켰던 옥룡사는 조선 후기 화재로 소실되어 빈터로 남았으나, 국사가 땅의 기운을 비보(裨補)하기 위해 심었던 동백숲은 1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푸른 울타리가 되어 묵묵히 절터를 지키고 있다. 사진=문성식
옥룡사지 절터 한쪽에 쌓인 예스러운 석축과 ‘도선국사 참선길’ 안내 이정표. 신라 말 도선국사와 제자들이 거닐며 마음을 다스리던 이 고즈넉한 길은, 탑비전지와 운암사로 이어지며 1,20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숲을 찾는 이들에게 사유와 차분한 참선의 기운을 건네고 있다. 사진=문성식

사찰은 소실되어도 뿌리는 깊어역사의 진정한 복원

천년의 세월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도선국사가 머물며 수백 제자를 키워내고 ‘옥룡사파’의 기틀을 다졌던 옥룡사는 몇 차례의 화재를 겪다 1878년 끝내 소실되어 한 포기 재로 사라졌다. 석비와 승탑마저 수난의 역사 속에 사라지고 지금은 쓸쓸한 빈터(사적 제407호)만 남아있다.

하지만 절터는 비었으되 숲은 죽지 않았다. 한 나무의 수명이 다하면 떨어진 씨앗이 다시 움을 트고 새순을 내어 대를 이었다. 300년, 500년을 견뎌낸 고목들이 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뿌리를 견고히 내린 채 불타버린 전각의 빈자리를 사시사철 푸르게 감싸 안았다.

진정한 역사의 복원은 화려한 목조 건물을 다시 지어 올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불타버린 사찰의 비극을 품고서도 해마다 봄이면 변함없이 붉은 꽃을 피워내는 저 동백나무들이야말로, 옥룡사의 천년 역사를 가장 진실하게 증언하고 있는 산증인이다. 텅 빈 절터와 울창한 동백숲이 어우러진 비움과 채움의 풍경은,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숭고한 위로이자 축복이다.

탁 트인 광양 옥룡사지 빈터와 사방을 포근히 감싼 동백나무 숲 전경. 웅장했던 전각은 사라져 초록 잔디밭으로 남았으나, 도선국사가 심은 동백숲은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이 땅을 푸르게 비보(裨補)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 아래로 비움과 채움,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거룩한 상생의 서사가 아늑하게 펼쳐진다. 사진=문성식

시니어 시대의 사명, 겸손한 마음으로 천년의 유산을 기록하다

동백의 꽃말은 ‘겸손한 마음’과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이다. 천년의 세월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우리 인간이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 아래 서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이 겸허해진다.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기록하는 시니어 기자의 눈에 옥룡사지 동백숲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도선국사가 심었던 한 그루의 나무가 천년의 숲이 되었듯, 우리가 오늘 흘리는 땀방울과 기록들 역시 후대에 거대한 문화적 그늘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느덧 계절이 흘러 꽃은 떨어지지만, 동백이 남긴 붉은 서사와 푸른 절개는 백계산 골짜기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텅 빈 사찰 터를 지키는 푸른 동백숲처럼, 우리 시니어들 역시 세파에 흔들리는 시대의 중심을 잡고 오래된 지혜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할 때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4부 광양의 자연, 제39회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주민들의 삶과 희로애락을 한자리에서 함께해 온 민속의 산증인, ‘광양의 당산나무와 마을 공동체 서사’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동행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