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의 시가 보관됐던 정병욱 가옥 내부. 사진=소재민
배알도
정병욱 가옥 별헤는다리 앞 조각상. 사진=소재민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잊는 해맞이다리. 사진=소재민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드는 계절이 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6월의 어느 날, 전남 광양의 망덕포구와 배알도 수변공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정병욱 가옥이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친필 원고가 숨겨지고 지켜진 바로 그 집이다. 작은 일본식 건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해방 직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원고를 항아리에 넣어 마루 밑에 숨겼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시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과 용기를 거쳐야 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문학이란 때로 목숨을 걸어야 지켜지는 것임을, 이 작은 가옥은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가옥을 나와 망덕포구로 내려서면 분위기가 한순간 달라진다. 섬진강과 광양만이 만나는 포구 특유의 비릿하고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포구 한편에는 ‘섬진강별빛스카이’ 짚라인 탑승장이 서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출발 지점에 오르면 광양만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짚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발아래로 반짝이는 강물과 초록빛 섬이 그림처럼 지나간다. 아이들의 탄성과 어른들의 웃음이 뒤섞이는 순간, 여행이 비로소 활기를 띤다.

짚라인의 종착지는 배알도 수변공원으로 이어진다. 광양 유일의 섬인 배알도는 ‘별헤는 다리’와 ‘해맞이 다리’ 두 개의 다리로 망덕포구와 연결되어 있다. 섬 전체가 초록빛 잔디와 계절 꽃들로 물들어 있어, 걸음마다 카메라를 들게 된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이들, 돗자리를 펴고 쉬어가는 가족들, 감성 카페 창가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는 여행객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섬을 누비고 있었다. 섬진강 자전거길의 종착지이기도 한 이곳은, 긴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쉼터였다.

망덕포구는 전어철이 되면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찬다고 했다. 통통한 전어를 굽는 냄새가 포구 전체를 감싸고, 지역 주민들의 삶과 여행객들의 설렘이 한데 어우러지는 계절이 머지않았다. 역사와 자연, 레저와 휴식이 한 공간에 고루 녹아 있는 광양은, 아이와 함께든 혼자든 떠나기 좋은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짧은 하루였지만, 정병욱 가옥의 마루 밑에 숨겨진 시 한 편과 배알도를 스치던 강바람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역사를 품은 포구, 광양 망덕으로의 여행은 그렇게 조용하고 깊은 울림을 남긴 채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