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굽이치는 물길 따라 가닿은 다압면 매화마을의 심장부, 홍쌍리 명인의 예술성이 집약된 청매실문화관의 전경이다. 이 현대적인 건축물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전시관을 넘어, 척박한 돌산을 일구어 대한민국 최고의 매화 군락을 만든 김오천 선생의 개척 정신과, 그 위에 전통 옹기와 문화적 감수성을 더해 대중을 사로잡은 명인의 삶이 집약된 상징적인 공간이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봄의 전령이 닿는 곳, 섬진강 굽이치는 물길 따라

동토(凍土)의 잔설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찬란한 봄의 서막을 여는 곳이 있다. 지리산의 장엄한 능선이 남쪽으로 내달리다 섬진강 푸른 물길과 만나 멈추는 곳,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위치한 ‘섬진강 매화마을(섬진마을)’이다. 해마다 3월이 오면 이 나지막한 강마을은 산자락에서부터 강변에 이르기까지 온통 하얀 매화꽃으로 뒤덮여, 마치 거대한 흰 꽃구름이 지상에 내려앉은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매화마을의 지세를 살펴보면, 뒤편으로는 호남정맥의 척추인 백운산 자락이 매서운 북풍을 든든하게 막아주고, 앞쪽으로는 섬진강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흘러 풍부한 수분을 공급한다. 강 너머로는 경남 하동의 평사리 들판과 지리산 자락이 마주 보고 있어, 영남과 호남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형상이다. 이 천혜의 생태적 조건 덕분에 매화나무들은 남녘의 따스한 햇살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하얀 독백을 시작한다.

섬진강 매화마을은 단순히 경치가 수려한 관광지를 넘어,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지혜가 오랜 세월 동안 빚어낸 거대한 생태 예술품이자 광양이 가진 청정 자연의 정점이다.

매화마을 청매실농원의 초입을 알리는 거대한 자연석 표지석 앞에 이른 봄을 만끽하려는 나들이객들의 발걸음이 정겹다. 표지석에 새겨진 ‘홍쌍리 매실가(梅實家)’라는 선명한 필체는, 60여 년 전 척박한 산비탈에 시집와 곡괭이 한 자루로 10만 평의 초록 캔버스를 일구어낸 명인의 집념과 자부심을 상징한다. 사진=문성식

쫓비산 자락 아래, 돌밭을 일군 율산(栗山) 김오천의 땀방울

오늘날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매료시키는 섬진강 변 10만 평(약 33만㎡)에 달하는 거대한 매화마을 군락은 결코 우연히 생겨난 자연의 선물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척박한 돌산을 황금의 땅으로 일구어낸 한 선구자의 위대한 집념과 땀방울이 새겨져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청매실농원의 창업주이자 광양 매화의 아버지인 율산(栗山) 김오천(1902~1989) 선생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17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광산과 제철소 등에서 모진 고생을 하며 돈을 모았다. 고국에 두고 온 헐벗은 고향 산천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돈이 생길 때마다 매실나무와 밤나무 묘목을 사서 고향으로 보냈다. 1931년 마침내 영구 귀국한 김오천 선생은 다압면 도사리 쫓비산 자락의 거친 돌밭을 밤낮으로 개간하기 시작했다. 곡괭이로 돌을 골라내고 묘목을 심는 그를 보며 당시 동네 사람들은 “ 쓸모없는 돌산에 나무를 심는다”며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의 혜안은 정확했다. 척박한 기운을 이겨내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 매화나무들은 매년 봄마다 눈부신 꽃을 피워냈고, 여름이면 알찬 매실을 맺어 주민들의 굶주림을 달래줄 새로운 소득원이 되었다. 정부는 1965년 그의 공로를 인정해 전국 농민상(산업포장)을 수여했다. 그가 흘린 땀방울은 척박한 돌산을 풍요로운 농토로 바꾼 위대한 개척 정신의 산물이자, 오늘날 광양 매화마을을 존재하게 한 역사의 주춧돌이다.

1931년의 꿈, 청매실농원의 시원(始原)이 된 최고령 매화나무. 청매실농원 길목에 당당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이 매화나무는 홍쌍리 명인의 시아버지인 율산(栗山) 김오천 선생이 1931년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와 처음 심은 역사적인 보호수다. 거친 비바람을 견뎌낸 흑갈색의 굵고 투박한 줄기와 힘있게 뻗어 나간 가지마다 수백 년 세월의 묵직한 서사가 깃들어 있다. 사진=문성식

시아버지의 뚝심과 며느리의 예술성, ‘청매실농원의 서사

율산 선생이 매화의 뿌리를 내렸다면, 그 꽃을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로 피워낸 이는 그의 며느리인 홍쌍리 명인(식품명인 제14호)이다. 1965년 경남 밀양에서 광양의 척박한 산골 마을로 시집온 그녀는, 시아버지가 지켜온 매화밭을 마주하며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여인의 몸으로 호미와 곡괭이를 들고 산비탈을 구르며 매화나무를 자식처럼 돌보아 온 세월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눈물겨운 서사다.

홍쌍리 명인은 단순히 매실을 수확하는 농업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전통 가공식품과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예술성을 발휘했다. 농원 한편에 자리 잡은 2,000여 개의 전통 옹기독은 매화마을의 또 다른 명물이자 전통의 깊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지리산 바닷바람과 섬진강 강바람을 맞으며 옹기 속에서 숙성되는 매실액과 매실장아찌는 광양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웰빙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시아버지의 대를 이어 묵묵히 땅을 지켜온 뚝심과, 며느리의 현대적 감각이 결합하면서 ‘청매실농원’은 단순한 과수원에서 ‘자연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명품 공간’으로 도약했다. 매화꽃 사이로 굽이치는 돌담길, 장독대 위로 떨어지는 하얀 꽃잎의 풍경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고, 매년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영혼의 쉼터가 되었다.

대지를 수놓은 순백과 홍빛의 울림, 전국 상춘객을 매료시킨 초록빛 신원(新園). 시아버지의 뚝심 있는 개척 정신과 며느리의 예술적 감각이 겹겹이 쌓여 완성된 이 거대한 매화 군락은, 단순한 농원을 넘어 매년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힐링의 성지다. 산등성이를 덮은 화사한 꽃구름과 그 길을 따스하게 거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자연과 인간이 지어낸 가장 아름다운 상생의 서사가 느껴진다. 사진=광양시

광양매화축제’, 영호남 상생과 로컬 콘텐츠의 경제학

매화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광양매화축제’는 매년 봄 대한민국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메가 이벤트다. 1997년 제1회 축제를 시작으로 성장을 거듭해 온 매화축제는 단순히 지역 특산물을 파는 행사를 넘어, 섬진강을 사이에 둔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구례를 하나로 묶는 ‘영호남 상생과 화합의 한마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의 매화축제는 환경과 로컬의 가치를 더해 더욱 진화하고 있다. ‘차 없는 축제’를 지향하며 섬진강변 자전거도로와 걷기 길을 연계하고, 일회용품 없는 친환경 축제를 구현함으로써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즐기는 지속 가능한 관광의 모범 사례를 보여준다. 또한 매실을 활용한 다채로운 먹거리와 매화 압화 체험, 숲속 버스킹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콘텐츠로 가득하다.

매화꽃이 만개하는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발생하는 경제적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숙박, 음식, 교통 등 지역 상권 전반에 강력한 활력을 불어넣으며, 단일 농촌 마을이 가진 로컬 콘텐츠가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관광 자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로컬 경제학의 훌륭한 교과서가 되고 있다.

사유의 길, 다음 여정을 기약하는 매화마을 산책로 안내도. “오늘의 걸음이 내일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꽃길이 되시길..”이라 적힌 부드러운 문구처럼, 이곳을 거닌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은 저마다 깊은 여운을 가슴에 품고 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간다. 섬진강 변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이 산책로는 과거 선조들의 개척 정신과 현재의 상춘객, 그리고 미래의 기억을 이어주는 정다운 연결고리다. 사진=문성식

매화 향기 속에 흐르는 사유, 다시 길을 나서다

해가 저물 무렵, 청매실농원 정자에 올라 섬진강을 내려다본다. 유유히 흐르는 붉은 노을빛 강물 위로 흩날리는 매화 향(梅香)은 코끝을 스치는 잔잔한 자극을 넘어, 인간의 삶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를 청한다.

척박한 돌산에 청춘을 바쳐 나무를 심었던 선구자의 땀방울이 없었다면, 세대를 이어 전통을 지켜온 옹기독의 묵직한 기다림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눈부신 흰 꽃구름의 축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들인 정성과 사랑만큼 반드시 아름다운 결실로 보답한다는 명징한 진리를 매화마을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봄날의 찬란했던 매화 천국을 마음속에 갈무리하며, 무더운 초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길 위의 광양사’는 이제 섬진강의 물길을 따라 또 다른 광양의 숨은 비경과 역사적 서사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고자 한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4부 광양의 자연, 제37회에서는 수백 년 세월 동안 거친 바닷바람을 막아주며 읍성을 지켜온 상생의 초록 울타리, 눈부신 이팝나무 숲과 선조들의 지혜가 숨 쉬는 ‘광양 유당공원 비보림의 역사와 숲이 건네는 위로’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동행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