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 봄기운이 서서히 스며들던 4월 초, 기자는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해발 208.9m 마로산 정상에 자리한 광양 마로산성을 찾았다. 화려한 관광시설이나 북적이는 인파는 없었지만,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과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이 오히려 이곳의 고요한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곳이 예로부터 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서쪽으로는 광양읍 일대가, 동쪽으로는 백운산과 국사봉, 구봉산 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과거 이곳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살피고 방어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자리였을 것이다.
마로산성은 테뫼식 석성으로 남북으로 긴 사각형 형태를 이루며, 전체 둘레는 약 550m에 이른다. 6세기 중엽 백제에 의해 처음 축조된 이후 통일신라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당시에도 광양만 일대 전투에 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 내부에서는 기와와 토기, 건물지와 우물지 등이 확인되어 당시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성내 식수 확보를 위해 조성된 집수시설이다. 방형과 원형으로 구분되는 집수정은 당시의 토목기술과 생활 지혜를 잘 보여준다. 방형 집수정은 사각추형 석재를 정교하게 쌓고 바닥을 점토로 다져 만들었으며,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토사 유입을 막도록 설계되었다. 원형 집수정 또한 층을 이루어 쌓은 구조와 목재 흔적이 확인되어 시대별 축조 방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당시 사람들의 삶과 지혜를 생생히 전해준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나, 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접근성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더욱 큰 가치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산성 정상 일대의 일부 소나무에서는 재선충병 피해로 보이는 현상도 확인되었다. 이는 나무의 생장을 위협하는 심각한 병해로, 문화유산 보존과 함께 주변 자연환경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옛 성벽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공간을 둘러싼 자연과 환경까지 함께 보살필 때 비로소 온전한 보존이 가능하다.
산성 정상에 잠시 멈춰 서니, 돌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듯 잔잔히 흐른다. 화려하지 않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하는 곳, 광양 마로산성은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기자수첩] 20년 배수로 철제 덮개, 이제야 걷히나](https://gy-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4/20260406-신전마을-경사로-11-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