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된장 국물에 시래기 우거지와 메기살을 듬뿍 넣어 끓여낸 구다리식당의 메기매운탕 한 상. 들깨 향 가득한 국물 한 숟갈에 옛 시골 밥상의 추억과 초여름 들녘의 정취가 함께 담겨 있다. 사진=문성식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초여름 문턱에 들어선 옥곡면 들녘은 분주했습니다.

논에는 물이 들어차고, 농부들은 모판을 손질하며 모내기 준비에 바쁜 모습입니다. 봄빛은 짙어지고 있었고, 바람에는 벌써 여름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날은 옥곡면 일대를 취재하던 날이었습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문득 오래전 기억 속의 식당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옥곡면 점터마을로 새롭게 이전한 구다리식당 전경. 허름한 옛 다리 건너 식당의 추억은 사라졌지만, 메기매운탕의 구수한 손맛만은 여전히 세월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문성식
하천가 다리 건너에 자리했던 옛 구다리식당 모습.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끓여내던 메기매운탕 한 그릇은 광양 사람들의 허기와 삶의 고단함을 오래도록 달래주었다. 사진=문성식

구다리식당.

1990년대 초, 기자가 처음 광양에 발을 디뎠을 무렵 자주 찾았던 메기매운탕집입니다. 당시 식당은 하천가 다리 건너 허름한 스레이트 지붕 아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깔끔한 건물도 아니었고, 간판도 투박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음식보다 더 오래 남는 정이 있었습니다.

흰머리에 쪽비녀를 꽂은 할머니가 주인이었습니다.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방 안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어느새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메기매운탕 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반찬은 단출했습니다. 김치와 깍두기, 젓갈 몇 가지 정도. 하지만 그 투박한 손맛은 시골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메기매운탕 국물은 유난히 진했습니다.

토실토실한 메기살에 우거지가 듬뿍 들어가고, 된장으로 우려낸 국물은 입안에 감길 만큼 깊은 맛을 냈습니다.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국물을 후후 불어 먹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그 시절 함께 다니던 친구는 출장만 다녀오면 이 집부터 찾곤 했습니다.

“광양 오면 여기 메기탕부터 생각난다”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전의 식당 자리는 사라지고, 지금은 점터마을 안쪽으로 새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사람도 바뀌고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메기매운탕의 맛은 기억 속의 어느 지점을 그대로 붙잡고 있었습니다.

식당 안에는 점심시간을 맞아 손님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들판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 공장 근무복 차림의 손님들, 동네 어르신들까지 삼삼오오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이 집 메뉴는 단 하나, 메기매운탕입니다.

잠시 후 나온 뚝배기에서는 된장과 들깨 향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시래기 우거지가 듬뿍 들어간 국물은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대파와 고춧가루가 어우러진 붉은 국물 사이로 큼지막한 메기살이 숨어 있습니다.

한 숟갈 떠먹으니 어릴 적 풍경이 떠오릅니다.

새 단장을 마친 구다리식당 내부 모습. 점심시간을 맞아 들른 손님들이 메기매운탕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벽면 메뉴판처럼 이 집의 메뉴는 오직 메기매운탕 하나, 수십 년 세월을 이어온 한결같은 맛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사진=문성식
옥곡면 구다리 앞 하천 풍경. 봄볕 아래 잔잔히 흐르는 물길과 벚꽃 풍경은 예전 메기매운탕집을 찾던 사람들의 추억을 조용히 불러낸다. 이 물길 따라 흐르던 민물고기와 사람 냄새가 지금도 마을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문성식

기자가 자란 마을 아래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저수지라고 했습니다. 하천과 논둑 수로에는 메기와 붕어, 미꾸라지, 빠가사리, 장어가 흔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논둑 물꼬에 메기 떼가 우글거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친구들과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어 팔뚝만 한 메기들을 잡아냈습니다. 스무 마리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져갈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옷 버렸다고 꾸중 들을 게 더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을 어귀 외딴집에 살던 ‘떨보 아재’가 지나가다 메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가져가시라고 했고, 그날 저녁 집에서는 예상대로 옷 더럽혔다고 혼이 났습니다.

그 시절에는 메기 맛을 몰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에서 살게 되면서 민물고기의 맛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구례와 하동 사람들은 바다고기보다 민물고기를 더 가까이했습니다. 섬진강변 식당마다 메기탕과 참게탕, 은어구이가 흔했습니다.

특히 민물매운탕에 넣는 ‘젠피’ 향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떠날 즈음에는 그 향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도 추어탕에서 젠피 향이 올라오면 젊은 날의 섬진강 풍경이 떠오릅니다.

메기는 시니어들에게 대표적인 보양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소화 부담이 덜합니다. 특히 메기매운탕은 된장과 들깨, 우거지가 어우러져 속을 편안하게 풀어주는 음식입니다.

무엇보다 이 음식에는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국물 한 숟갈을 다시 떠먹으며 먼저 떠난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장성댐과 섬진강가에서 함께 매운탕을 먹던 시절, 웃음소리 가득했던 젊은 날들이 국물 속에 잠겨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은 떠나고 집은 바뀌어도,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어쩌면 음식이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구다리식당

전라남도 광양시 옥곡면 명주로 2 (061-772-6349)

대표 메뉴: 메기매운탕(대,중,소, 공기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