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 살던 서모씨는 지금 광양에 살지 않는다. 그는 당구도 잘치고 성격도 좋아 주위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가정을 이루고 직장인으로 평범하게 살았던 그가 장난처럼 시작한 도박 때문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채로까지 이어졌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차례차례 날아갔다. 그러자 결국 작년 세상을 떠났다. 40대 중반이었다.

“무심코 집어넣은 1만원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졌다.”

성인 사행성 도박게임으로 거액을 날리고 회사 공금에도 손을 대 자살을 기도한 도박 중독자의 고백이다. 김모(50) 씨는 의류업체 이사로 재직 중인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거래업체에 일감을 주러갔다가 호기심에 게임장에 들르면서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16세 때 마차 정거장에서 복권 한 장을 산 후 평생 도박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스토옙스키 얘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세기의 대문호인 그는 사기도박으로 여러 차례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빠져 허우적거렸던 인생의 수렁을 ‘여자’, ‘술’, ‘도박’을 꼽았는데 도박만은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도박이 갖는 가공할 흡입력은 무엇일까. 도스토옙스키는 돈을 잃으면 잃은 대로, 파멸 직전 단 한 번의 ‘끗발’이 주는 쾌감은 일상의 어느 것에서도 맛볼 수 없다고 했다.

어떤 학자는 생명체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먹이를 획득하려 하는데, 합리성과 노동이 배제되기 때문에 도박의 생리가 여기에 부합된다고 말한다. 거기에 불확실성이 놀이와 재미를 더한다는 것이다.

도박과 관련해 요즘 우리나라 형편은 어떨까. 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북한 노동당 39호실 소속 정보기술(IT) 조직이 국내 범죄조직에 수천 개의 도박사이트를 팔아 불법으로 외화를 벌어들인 사실을 적발됐다.

이는 최근 국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사이버 도박 범죄의 배후에 북한이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최초로 공개한 것이라고 한다.

또 작년 11월 SBS는 청소년 인터넷 도박문제를 심층보도했다. 학생 10명 중 4명은 도박 경험이 있었다. 청소년 도박은 불법 인터넷 사이트에 노출되면서 시작되는데 다단계 형태로 친구를 추천해 도박 머니를 받으면서 점차 습관화된다고 한다. 이후 도박 자금을 벌기 위해 사채, 사기, 절도, 심지어 성매매 등 각종 범죄에 연루된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청소년을 상대로 한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재판에서도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도박으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도박이 최근에만 성행하는 것일까. 결론은 아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재상, 승지, 홍문관 관원들도 투전으로 소일하니 다른 사람이야 일러 무엇하겠는가”라고 했다. 도박 종류만 다를 뿐 도박이 꽤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기록이다. 19세기 말 서구열강들과 우호통상조약을 맺은 조선에는 외교관, 선교사와 상인들의 출입이 잦아졌다. 이들 서양인들은 귀국해 조선을 알리는 데 열을 올렸다.

이 중에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은 1894년 라이프니치 신문에 조선을 ‘일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로 소개하고 있다. 그가 쓴 글을 보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낮으로 어딜 가든지 일을 하고 있는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일은 여자들이 다하는데… 남자들은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장기나 투전 놀음에 열중한다.”

외국인이 보기에도 조선 남자들은 고작 하는 일이 잡기와 노름이니 참으로 한심했던 모양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왜 도박은 이처럼 생명력이 질긴 것일까. 어느 사회나 도박은 단순한 내기부터 여러 형태가 있다. 게다가 처음에는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고 단순한 호기심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도박은 중독성이 강해서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얻은 쾌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도박을 시작할 때 느끼는 소소한 재미나 쾌감은 저비용으로 느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가정과 인생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는 초고비용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는 이미 늦었다. 도박은 마약이나 알코올 못지않게 철저하게 심신을 파멸시킨다.

앞서 말한 서모씨와 김모씨는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두 사례 결과는 판박이로 비슷하다. 가정과 회사는 뒷전이고 화장실에서도 게임기 돌아가는 모습이 아른거려 식음을 전폐하고 도박게임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흥표 교수는 ‘도박의 심리’라는 책자에서 도박중독의 발달과정을 승리단계, 손실단계, 절망단계, 포기단계를 거친다고 정리한다. 도박중독에 빠지게 되면 점차 직장을 잃고, 가족부양을 무시하고, 가정 갈등(폭력)에 이르고, 가정해체를 거쳐, 더 심해지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대체로 도박은 마약과 알코올 남용처럼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쯤 되면 도박은 개인문제를 넘어 사회 문제화 된다. 필연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이미 개인은 파산했고, 국가는 비생산적 요소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데 급급하게 된다.

개인의 쾌락추구에 뒷수습을 전체 사회구성원이 맡는 셈이다. 결국 도박은 작게는 개인을,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첩경인 것이다.

최근에는 발달한 과학기술 덕분(?)에 도박이 누구에게나 손쉽게 노출되는 세상이 됐다. 정말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