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깊은 골짜기의 입구를 알려주는 ‘백학동계곡 어치마을’ 표지석. 험준한 산세 속에서 자연과 상생하며 살아온 ‘느린재’ 사람들의 안식처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억불봉 아래 느린재‘, 호국의 숨결과 시간도 쉬어가는 어치마을

광양 진상면 수어호의 푸른 물빛을 뒤로하고 백운산의 깊은 심장부를 향해 들어서면, 하늘을 찌를 듯 장엄하게 솟구친 억불봉(億佛峰)의 바위 병풍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그 거대한 암봉이 드리운 너른 품속, 완만하게 늘어진 산자락을 따라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어치마을이다.

인위적인 손길이 미치지 않은 정갈한 산촌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무장해제시킨다. 억불봉을 천연의 이정표 삼아 찾아드는 이 길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다. 험준한 산세에 기대어 자연의 결을 어기지 않고 살아온 인간의 숭고한 생존 서사이자, 자연과 삶이 어떻게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인문학 현장이다.

백학동 신황교에서 바라본 백운산 산자락과 어치계곡의 시원한 물길. 교량 난간을 장식한 상징 학 조형물 너머로 구름을 머금은 웅장한 산세가 어우러져 백학동의 호젓하고 신비로운 풍광을 연출한다. 사진=문성식

느린재가 품어낸 여유와 고갯길 산촌의 지리적 유래

수어천(水漁川)의 맑은 계곡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쪽의 ‘상어치’와 아래쪽의 ‘하어치’가 아늑하게 맞물려 있다. 고산 지대 산촌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풍경을 품은 이 마을의 이름 ‘어치(於峙)’에는 이 땅의 인문지리적 본질이 깊게 투영되어 있다.

본래 순우리말로 ‘느린재’ 혹은 ‘느재’라 불리던 이곳은 산허리를 부드럽게 감아 돌며 완만하게 뻗어 나간 고갯길을 뜻한다. 가파르게 치닫기보다 산의 굴곡을 따라 천천히 늘어진 이 길은, 외부 세계와 소통하던 통로이자 산중 삶의 고단함을 여유로 승화시킨 조상들의 지혜였다. 언어학적으로는 ‘늘어진 고개’가 ‘늘재’와 ‘느재’를 거쳐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어(於)’와 고개를 뜻하는 ‘치(峙)’가 합성되어 오늘날의 어치가 되었다.

이 지명은 마을 이름인 동시에 어치에서 다압면 도사리로 넘어가는 고갯짓 자체를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지계리, 외회리, 내회리, 어치리가 하나의 단위로 묶이면서 오늘날의 어치리가 완성되었다. 흩어져 있던 골짜기들이 ‘느린재’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운명 공동체로 거듭난 것이며, 속도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가치’를 일깨우는 침묵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다.

어치교 너머 백운산 억불봉 산자락 아래 포근히 안긴 어치3구 지계마을 전경. 외부와 단절되었던 오지 산촌을 세상과 이어준 어치교와 그 너머에 모여 형성된 정겨운 마을터가 산골 공동체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사진=문성식

인방골의 총성, 억불봉 자락 아래 타오른 호국과 전설의 역사

어치마을의 내력은 1600년경 재령이씨(載寧李氏)가 터를 잡으면서 본격적인 서막을 열었다. 400여 년의 세월 동안 마을은 신비로운 민담과 처절한 역사의 목격자로 자리를 지켰다. 주민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억불봉과 인방골 인근에는 과거 황룡사(黃龍寺)와 12개의 암자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밤마다 골짜기를 메우는 물소리는 흡사 수행자들의 독경이자 대지를 어루만지는 불보살의 속삭임처럼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 신성한 터전은 국난의 격랑 속에서 민족의 생존을 건 항전의 요새로 급변했다. 상어치 서쪽 깊은 골짜기인 ‘인방골’은 1908년 무신년 당시 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항일 의병들의 핵심 전략 기지였다. 황병학 의병장이 이끈 백운산 의병부대(호남창의대)에는 어치마을 출신의 백학선(白學善), 김응백(金應伯) 선생이 투신하여 결사 항전을 펼쳤다.

억불봉 자락에 안긴 암자 터들은 의병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었고, 이는 인근 ‘생쇠골 야철지’에서 철광석을 녹여 무기를 직접 주조했던 실천적 투쟁으로 이어졌다. 인방골 널렁 바위 일대에서 왜군과 벌인 치열한 격전의 서사는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고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민초들의 뜨거운 결기와 호국 기상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백운산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세차게 굽이쳐 흐르는 어치계곡의 푸른 물줄기. 7km에 달하는 장대한 계곡을 따라 울창한 원시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백운산 4대 계곡다운 태고의 청정함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사진=문성식

7km 원시림의 생명력,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어치계곡

백운산이 숨겨둔 으뜸 비경인 어치계곡은 7km에 걸쳐 장대한 물길을 이룬다. 백운산 4대 계곡 중에서도 가장 깊고 울창한 원시림과 기암괴석을 품고 있어 태고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내회마을 상류에서 외회마을로 이어지는 4km 구간은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을 자랑한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대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겼던 선인들의 풍류와 마주한다. 용소바위 위의 넓은 암반인 오로대(午露臺)는 ‘한여름 볕이 바른 한낮에도 이슬이 맺힐 만큼 서늘하다’는 이름에 걸맞게 시원한 휴식을 선사하며, 바위에 음각된 문자는 자연과 인문이 어우러진 경관을 형성한다.

소구유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구시폭포(구시소)는 15m 절벽 아래로 힘찬 물줄기를 내뿜으며, 극심한 가뭄에도 물길이 마르지 않는 신비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정월 대보름날 하늘을 날던 천마(天馬)가 지친 몸을 추스르며 물을 마셨다는 설화와 그 상류의 푸른 선녀탕은 계곡의 신비로운 서사를 완성한다.

어치마을회관 입구에 자리한 현대사 아픔의 흔적인 기념 안내판. 구한말 항일 의병의 호국 기상부터 해방 직후의 격동기 역사적 비극까지 품어 안은 채, 오늘날 주민들의 온기 어린 소통 공간이자 치유의 터전으로 거듭난 공동체의 현재를 보여준다. 사진=문성식

자연의 시계에 맞춘 삶, 어치마을 공동체의 생활상과 미래상

어치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험준한 산세에 순응하며 고립을 이겨낸 상생과 노동의 역사다. 과거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었던 이 오지 마을에 1984년 들어선 어치보건진료소는 주민들의 아픔을 돌보는 보건 복지의 등불이었고, 1994년 수어천을 가로질러 놓인 어치교(길이 30m)는 물리적 고립을 풀고 세상과 연결한 생존의 가교였다. 이러한 인프라는 산촌 공동체가 안녕을 지켜온 소중한 삶의 궤적이다.

오늘날 주민들은 산비탈의 기운을 받아 밤과 감 농사를 짓고 축산에 종사하며 정직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 봄기운이 번지는 경칩 무렵이면 백운산 깊은 곳에서 뼈를 이롭게 한다는 고로쇠 약수를 채취하고, 이어 3~4월에는 산자락을 누비며 알찬 고사리를 꺾는 등 계절의 변화에 맞춰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실천한다.

비극적인 현대사의 아픔을 품어 안고 일궈낸 이들의 일상은 이제 치유와 휴식을 선사하는 농촌 공동체로 피어나고 있다. ‘느린재’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속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미학과 정서적 안식처를 제공하는 어치마을. 억불봉의 호국 역사와 원시림의 생명력, 그리고 자연의 시간표대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정겨운 삶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하는 광양의 소중한 인문학적 보물이다.

[다음 회차 예고]

다음 시간에는 섬진강 푸른 물줄기가 남해 바다와 조우하며 수려한 풍광과 아련한 역사를 함께 품어낸 포구, 섬진강 망덕포구 외망마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