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황금동 벌판에서 고개를 숙이기시작한 벼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이경희
광양시 황금동 들녁의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를 보며 금년에 풍성한 수확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진에 담았다. 사진=이경희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의식주(衣食住)라고 하지만 그 근본에는 농업이 있다. 그래서 예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즉 농업은 천하의 근본이라고 했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의 지방 수령들이 지켜야 할 ‘수령칠사(守令七事)’에서도 농업을 장려하고 백성의 생업을 돌보는 일은 첫 번째로 중요한 책무였다. 그만큼 농업은 백성의 삶을 지탱하는 국가의 근본이었다.

우리 조상들에게 농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절기에 맞춰 논밭을 갈고, 때가 되면 씨앗을 뿌리고, 비와 햇볕을 기다리며 정성껏 농작물을 길렀기에 농사는 한 가정의 생업이자 대를 이어가는 삶의 방식이었다. 좋은 종자를 고르는 일 또한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어서 농민들은 종자를 가문의 혈통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겼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촌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힘들고 어려운 농업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고, 농촌에서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곳이 많아졌다. 농업을 이어갈 후계농이 부족해지는 현실은 우리 농촌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고 농업의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산업이 발전하고 첨단기술이 세상을 바꾸어도 사람이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은 농민들의 땀으로 차려진다. 농업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산업이다.

그러나 농민에게 날씨는 곧 생계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고, 비가 내리지 않아도 걱정이다. 올여름에는 7월부터 시작된 삼복더위가 8월까지 이어지면서 농작물은 물론 농민들의 마음까지 타들어 갔다. 가뭄이 심한 곳에서는 소방차 등을 이용해 논에 물을 대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러다 처서를 지나 전국에 비가 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중호우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가뭄에 시달리던 농촌에는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귀중한 단비가 되기도 했다. 농민들에게 비 한 방울, 햇볕 한 줄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여름이었다.

이제 추석을 앞두고 들녘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이삭을 내민 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풍요로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그러나 그 황금들녘의 풍경 뒤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논밭을 지켜온 농민들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문제는 풍년이 반드시 농민의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농민들은 수입 농산물과 경쟁해야 하고, 기후변화로 생산량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현실과도 싸워야 한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가격이 낮아지면 농민들의 소득이 줄어든다. 풍년을 이루고도 농민들이 웃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되는 것이다.

농민과 소비자가 같이 만족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농민에게는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고, 소비자는 안전하고 품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농민과 소비자는 서로 다른 편이 아니고 같은 밥상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이웃이다.

농업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농민을 돕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식탁을 지키고, 농촌의 미래를 지키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일이다.

올해 추석에는 풍년을 맞이하고도 한숨짓는 농민이 없었으면 좋겠다. 농산물 가격 때문에 장바구니를 걱정하는 서민도 없었으면 좋겠다. 농민은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리 농산물을 이용할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시 한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농업이 살아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우리의 미래 사회도 밝아진다. 이제 막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들녘이 풍요로운 결실로 이어져, 결실의 기쁨을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나누는 풍요로운 가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