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던 구봉산 전망대에는 지금은 정보화 시대의 첨단 장비에 밀려 봉수 유적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옛사람들이 이곳에 봉수대를 만든 이유만은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옛 봉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 시대의 디지털 봉수와 방송사 기지국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사진=박분옥
‘구봉산 명소화(체험형 조형물) 사업’은 광양시와 포스코가 함께 추진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 180억 원을 투입해 구봉산 정상에서 폭 13~21m, 높이 23.5m, 램프 길이 300m 규모의 체험형 조형물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오는 2026년 8월 준공 예정으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조형물은 역삼각형 철제 경사로를 따라 정상까지 일곱 바퀴를 돌며 오르는 구조로, 광양제철소와 이순신대교는 물론 순천·여수·남해까지 남해안의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우리 지역의 대표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광양시
2013년부터 구봉산을 지키던 전망대의 옛 모습이다. 지금은 철거되고 전망대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체험형 조형물 공사가 오는 8월 개장을 위해 한창 진행 중이다. 건너편에는 이순신대교를 이어주는 여수 묘도와 이순신대교, 광양항, 그리고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박분옥
구봉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이다. 저 멀리 남해 바다와 제철소, 그리고 중마동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체험형 조형물이 완공되면 우리 고장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과 시민들의 높은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박분옥

휴대폰이 일상적 통신 수단이 된 초스피드 시대에 첨단의 통신 수단인 봉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봉화산·기지국을 쳐보면, 옛 봉수가 있었던 전국의 수많은 봉화산 정상에 이동통신 회사와 지상파 방송사의 기지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속의 봉수가 현대의 최첨단 기지국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실제로 이동통신 회사가 기지국을 세울 때 옛 봉수 제도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광양에도 컨테이너 부두 북쪽에 구봉산(견대산)이 있다. 그리고 그 산 정상에 모든 방송사의 기지국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광양에서 출발한 봉수가 여수의 진례산 봉수와 돌산도 봉수 등 60여 개의 남·서해안 봉수를 거쳐 서울 목멱산(남산) 봉수에 전달되는 데는 약 12시간 정도 소요됐으니, 봉수를 휴대폰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렇게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 봉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휴대폰과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봉수와 휴대폰은 둘 다 디지털 전송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은 정보를 0과 1이라는 숫자로 바꾸어 전달하는 방식이다. 봉수는 야간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변경의 군사정보를 중앙에 신속히 알려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군사통신 네트워크였다. 이때 변경의 상황을 봉수의 숫자로 표시했다. 즉 평상시에는 1개, 적이 출현하면 2개, 국경에 접근하면 3개,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접전하면 5개를 올리도록 했다. 이를 ‘5 거화법’이라 하는데, 정보를 숫자로 전환하는 디지털 방식을 채용한 것이다. 조선시대 인편이나 역마를 이용하는 아날로그 통신 방법에 비하면 봉수는 아주 효율적이고 빠른 디지털 통신 수단이었다.

휴대폰과 봉수를 이용한 정보 전달의 성공 여부는 사용자의 자세에 달려 있다. 아무리 성능 좋은 휴대폰이라도 사용자가 전원을 꺼두면 무용지물이듯이, 봉수도 봉수군이 도망가거나 교대 근무를 하지 않아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조선 전기 태조와 선조 연간에 34건 정도 적의 침입이 있었음에도 4건을 제외하고는 봉수가 전달되지 않았다. 모두 봉수군의 태만 내지는 실수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조선의 봉수망은 직봉과 간봉으로 나누어 조직했다. 직봉은 봉수의 주요 간선으로서 동북방 지역은 두만강변의 경흥 우암, 동남방 지역은 경상도 해변의 동래 응봉, 서북방 지역은 압록강변의 강계 여든 대와 의주 고정주, 서남방 지역은 전라도 해변의 순천 돌산포 등 5개 처를 기점으로 하여 모두 서울의 목멱산 봉수대로 연결됐다. 그리고 간봉은 보조선으로서 22개 노선이 설치됐다. 광양의 구봉산 봉수는 돌산도의 봉수와 진례산의 봉수에서 전달된 상황을 순천 성황당 봉수로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간봉에 해당됐다.

지난 2013년 건립된 구봉산의 디지털 봉수는 광양을 상징하는 빛·철·매화 등을 소재로 활용했다. 빛은 최첨단의 LED 조명을 활용했고, 소재는 철강도시의 이미지를 담아 특수 강철을 사용했으며, 이미지는 매화가 피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매화 꽃잎은 광양시의 12개 읍·면·동을 상징한다. 봉수대의 높이는 광양이라는 지명을 최초로 사용한 고려 태조 23년, 즉 940년의 의미를 담아 940cm로 건립했다.

휴대폰 사용 시 음질의 깨끗함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휴대폰의 음질에 해당되는 것이 봉수에서는 연기의 ‘꼿꼿함’이다. 멀리서도 잘 볼 수 있도록 연기를 위로 꼿꼿하게 올리는 기술이 봉수 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연기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이리나 여우 똥을 땔감이나 숯에 섞어 불을 피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구하기 어려워 그 대신 말똥이나 소똥을 사용했다. 봉수 거화 재료의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2011년 ‘구봉화산’은 ‘구봉산’으로 개명됐다. ‘구봉화산’이란 이름은 1961년 봉화를 올리던 산이라는 의미로 국가지명위원회에 등록되어 사용돼 왔으나, ‘광양시지’와 교과서 등에는 ‘구봉산’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에 광양시는 국가지명위원회에 지역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구봉산’으로 변경을 요청했고,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구봉산으로 변경 고시했다.

한편 광양시에서는 구봉산 정상에 전망대를 준공하고, 세계 최초의 메탈 아트 디지털 봉수대를 건립했다.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구봉산 전망대에 올라보면 탁 트이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정보화 시대의 첨단 장비에 밀려 봉수 유적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옛 사람들이 이곳에 봉수대를 만든 이유만은 분명히 깨닫게 된다. 옛 봉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 시대의 디지털 봉수와 모 방송사 기지국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