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천년의 동백숲과 ‘비보(裨補)’의 철학
상산과 중산이 안은 광양 옥룡면 ‘양산마을’을 찾아, 도선국사의 천년 비보(裨補) 철학과 깊은 물맛 너머 따스한 시골의 온기를 만나다.
한반도의 남단, 백운산의 장엄한 기운이 옥룡사지를 거쳐 낮은 구릉으로 흘러내리는 곳에 광양시 옥룡면 양산(兩山)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히 행정구역상의 한 단위를 넘어,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35년간 머물며 자신의 사상적 정수를 갈고닦았던 인문학적 성지다. 백운산의 형세가 포근히 감싸 안은 형국은 예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어 왔으며, 오늘날 이곳은 과거의 지혜를 현대적 치유로 승화시킨 ‘도선국사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마을의 지명은 그 자체로 역사의 부침을 증명한다. 본래 산 안쪽에 깊숙이 자리해 ‘산내(山內)’ 혹은 ‘살래마을’이라 불렸던 ‘상산(上山)마을’과, 내촌 지역의 중간 지점을 지켰던 ‘중산(中山)마을’이 합쳐지며 오늘날의 ‘양산마을’이 되었다. 1700년경 처음 터를 잡은 이래 수백 년간 지켜온 공동체의 이름은, 2002년 전통테마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도선국사’라는 거대한 브랜드와 결합했다. 이는 단순히 관광을 위한 개명이 아니라, 마을의 뿌리를 천년 전 선승의 철학에서 찾으려는 실존적 선언이기도 했다.
도선국사가 옥룡사지에 머물며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를 심은 행위는 단순한 식재(植栽)가 아니었다. 땅의 부족한 기운을 채워 국운을 다스리려 했던 ‘비보(裨補) 풍수’의 실천이었다. 그는 땅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돌보고 치유해야 할 유기체로 보았다. 척박한 땅의 결핍을 나무로 채우려 했던 선승의 ‘인문적 개입’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정서적 갈증을 채워주는 ‘상생의 숲’으로 재해석된다. 천년을 견뎌온 동백림의 짙은 녹음은 이제 현대적 비보가 되어, 도시의 속도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자연의 결핍을 채우려는 선조들의 철학은 마을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신비로운 샘물로 이어진다.


영혼의 갈증을 축이는 ‘사또약수터‘와 ‘옥녀탄금혈‘ 명당
마을의 생명줄인 약수는 단순한 식수를 넘어 지역 공동체를 결속하는 사회적 매개체다. 마을 위쪽에 자리한 ‘사또약수터’는 물맛이 변함없이 맑기로 정평이 나 있다. 예부터 광양현 원님들이 이 물만을 고집하며 전용 식수로 사용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해 ‘사또약수’, 혹은 힘차게 솟구치는 기운을 담아 속칭 ‘숫우물’이라 불려 왔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은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상인 ‘옥녀탄금혈(玉女彈琴穴)’의 명당이다. 이 신성한 지명은 주민들에게 땅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심어주었으며, 물맛을 보기 위해 지금도 인근 순천, 여수, 광양읍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흔히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한 칠순이 되어야 비로소 맹물의 진정한 단맛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사또약수터의 물 한 바가지는 피로와 번뇌로 찌든 영혼을 씻어내는 ‘생명의 정화수’와도 같다.
이 약수를 매개로 형성된 마을 반짝장터는 성(聖)스러운 물의 공간을 활기찬 속(俗)의 공간으로 연결한다. 일 년 내내 정성껏 말린 백운산 고사리와 텃밭에서 갓 따온 채소를 내놓는 마을 할머니들의 손길은 정겹기 그지없다. “손주들 과자 값이라도 보태야지”라며 웃으시는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은 이 마을이 품은 가장 따뜻한 풍경이다. 여기에 23년 전통의 가마솥 손두부와 시원한 동동주 한 사발은 등산객들에게 단순한 허기 채우기를 넘어, 삭막한 일상에서 벗어난 정서적 해방감을 선사한다.
땅의 기운이 빚어낸 물맛은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지극한 효심의 전설로 그 깊이를 더해간다.


참배나무 ‘일미리‘ 전설과 지극한 효심의 숨결
마을을 지탱하는 것은 지형뿐만이 아니다. 곳곳에 깃든 전설은 공동체의 윤리적 지표가 되어 흐른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350년에 달하는 느티나무, 팽나무, 서어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높이 15m의 이 장엄한 당산림은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의 상징이자, 자연에 대한 경외심의 발로다.
특히 도선국사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집집마다 심어주었다고 전해지는 ‘참배나무’ 설화는 이 마을이 간직한 인문학적 보물이다. 서리가 내릴 때 수확하여 땅속 깊이 묻어두었다가 조상의 제사나 자녀의 혼례 등 집안의 큰일에만 정성껏 올렸다는 이 배는, 그 맛과 향이 워낙 뛰어나 단 하나의 으뜸가는 맛이라는 뜻의 ‘일미리(一味梨)’라 불렸다. 비록 세월의 흐름 속에 옛 고목의 실체는 전설과 기록의 영역으로 남게 되었지만, 미물 하나에도 주민들을 향한 선승의 애정이 서려 있던 그날의 기억은 오늘날까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전해지고 있다.
자연의 신비는 전설을 넘어 치유로 이어진다. 마을 위쪽 삼밭골과 어름밭골의 폭포수는 피부병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전언이 전해져 내려와,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의 발길을 이끈다. 이러한 자연의 효험은 인간의 도리인 ‘효(孝)’의 서사와 맞닿아 완성된다. 옥룡면 추산리 출신인 효자 함동기(咸東奇)는 생후 7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부친상 후 금목산중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한 그의 지극한 효심에 감복하여 ‘모성공회’에서 찬양문을 내렸다는 기록은, 이 마을이 간직한 인문학적 품격을 대변한다.
전설 속의 효심과 선덕은 이제 현대인들의 오감을 깨우는 살아있는 체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지혜를 오감으로 빚어내는 으뜸촌 공동체
오늘날의 양산마을은 과거의 유산을 박제하지 않고, 주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명품 자치 공동체’로 거듭났다. 2012년 대한민국 경관대상 수상과 2018년 농촌관광 ‘으뜸촌’ 선정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마을은 이제 천년 전 도선국사의 일상을 현대인의 오감 체험으로 복원해 내고 있다.
주민들은 직접 야생 녹차 찻잎을 따고 다도를 가르치며, 도예와 천연염색, 손두부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는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니다. 도선국사가 즐겼던 차 한 잔의 여유를 복원하는 행위이자,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비보 풍수가 땅의 결핍을 채웠듯, 마을의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정서적 빈곤에 허덕이는 도시인들에게 ‘현대적 비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도선국사마을의 진정한 가치는 엄숙한 옥룡사지라는 ‘성(聖)’의 공간과, 가마솥 두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마을이라는 ‘속(俗)’의 공간이 경계 없이 공존한다는 데 있다. 옥룡사지의 침묵은 마을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연속성’을 완성한다. 진정한 명당은 땅의 형세가 아니라, 그 땅을 아끼고 이웃을 보살피며 전통의 가치를 이어나가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양산마을은 웅변하고 있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44회에서는 백운산의 또 다른 비경, 진상면 어치마을로 떠납니다. 7km에 이르는 원시림의 어치계곡과 산허리를 완만하게 감아 도는 ‘느린재(늘어진 고개 → 느재 → 어치)’의 여유, 그리고 그 깊은 골짜기에 서려 있는 항일 의병들의 뜨거운 숨결까지. 광양의 산촌이 간직한 강인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궤적을 다음 시간에 만나보십시오.
![[길 위의 광양사(史) 제5부 광양의 마을] ㊷ 다압면 섬진마을](https://gy-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8/섬진마을-1-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