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매화보다 깊은 역사, 섬진강보다 푸른 생명의 마을
광양의 역사와 사람, 그리고 오래된 마을의 기억을 찾아 걷는 「길 위의 광양사」 제5부 ‘광양의 마을’ 두 번째 여정은 다압면 섬진마을이다.
봄이면 하얀 매화가 산과 들을 뒤덮으며 수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곳. 그러나 꽃이 지고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진 뒤에도 섬진마을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섬진강을 건너 장을 보러 다니던 사람들의 기억이 있고, 밤나무를 가꾸며 생계를 이어가던 농민들의 땀이 있으며, 나라의 국경을 지키던 수군의 역사가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두꺼비와 습지를 지키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매화는 섬진마을을 아름답게 보여주지만, 마을의 깊이를 설명해 주는 것은 그 꽃 아래 켜켜이 쌓인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시작되는 마을 이야기
섬진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역시 섬진강이다.
백운산 자락을 따라 흘러온 강물이 마을 앞에서 넓게 굽이치며 흐른다. 강 건너는 경남 하동이다. 지금은 다리와 도로가 사람과 물자를 빠르게 연결하지만, 다리가 없던 시절 이 강은 주민들에게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강은 때로 길이었고, 때로 생계의 터전이었으며, 때로 삶을 가로막는 경계였다.
옛 주민들은 나룻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 하동 장터를 오갔다. 장을 보러 가기도 했고, 물건을 내다 팔기도 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람들이 오가면서 서로 다른 생활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였다.
그래서 섬진마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매화밭보다 먼저 섬진강의 물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강은 풍경이기 이전에 삶이었다.

‘밤산마을’에서 ‘매화마을’로
오늘날 섬진마을을 대표하는 것은 단연 매화다.
봄이 되면 산비탈과 들판을 따라 매화가 피어나고, 섬진강과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매화마을 이전의 섬진마을도 분명히 존재한다.
1960~1980년대 섬진마을은 산비탈에 밤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밤산마을’로 불릴 만큼 밤 생산이 활발했던 곳이다. 가을이면 밤을 수확하는 일손으로 마을이 분주했고, 산은 주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농업환경과 소득 작목이 변화했고, 밤나무가 있던 산과 밭에는 매화나무가 하나둘 자리 잡았다.
그렇게 섬진마을의 풍경도 바뀌었다.
밤나무 숲이 사라진 자리에는 매화가 피었다. 그러나 작목이 바뀌었다고 해서 주민들의 삶이 달라진 것만은 아니다. 가파른 산비탈을 일구고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했던 수고와 인내는 그대로 이어졌다.
오늘날 사람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매화 풍경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농민들의 오랜 노동이 만든 삶의 풍경이다.

문헌 속에 남은 오래된 나루
섬진마을의 역사는 주민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1451년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에는 ‘섬진(蟾津)’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섬진이라는 이름이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섬진이라는 이름에는 두꺼비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려시대 왜구가 침입했을 때 수많은 두꺼비가 나타나 울어 왜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 자신을 구해준 처녀를 홍수에서 살리고 죽었다는 두꺼비 설화도 전해진다.
역사적 사실과 설화가 오랜 세월 함께 전승되면서 섬진이라는 지명에는 강과 두꺼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연결하는 고유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섬진마을을 찾으면 수월정 주변에서 돌두꺼비 형상의 석물을 만날 수 있다. 이 돌두꺼비들은 조선시대 섬진진 별장들의 공적비를 받치던 석물로 알려져 있다.
투박하지만 해학적인 표정의 돌두꺼비를 바라보면 옛사람들이 돌이라는 재료에 단순히 기능만 부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과 정서까지 새겨 넣었음을 느끼게 된다.

섬진강을 지키던 섬진진
섬진마을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섬진진(蟾津鎭)을 만난다.
섬진강 하구와 상류를 연결하는 이곳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나루였다. 조선시대에는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1603년 이곳에 도청이 설치됐고, 1705년에는 삼도수군통제영 직할의 진으로 승격됐다.
섬진진에는 수군이 주둔했고 병선도 배치됐다. 오랫동안 섬진강 일대의 방어를 담당하는 군사적 거점이었다.
오늘날 섬진강을 바라보면 평화롭기만 하다.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매화는 바람에 흔들린다. 그러나 수백 년 전 이 강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강을 건너는 배 한 척,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 하나에도 나라의 안위가 걸려 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라보는 강변은 한때 나라를 지키던 군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전쟁의 기억도 강물과 함께 흐른다
섬진마을이 지닌 역사적 의미에는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지리적 길목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지만, 전쟁 때에는 군사들의 이동로가 되기도 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섬진강 일대 역시 전란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난중일기』를 비롯한 기록에서도 섬진 일대와 관련한 전황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책에 기록된 장수와 군사들의 이름 뒤에는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백성의 삶이 있었다.
집을 떠나 피란해야 했던 사람들, 농사를 중단해야 했던 농민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다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을의 역사를 취재할 때는 전쟁의 큰 사건만 기록할 수는 없다.
“그때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질문을 던져야 비로소 역사가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주민 스스로 지키는 매화 풍경
오늘의 섬진마을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모습은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이다.
매화가 유명해지면서 섬진마을에는 해마다 많은 방문객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늘면서 마을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불편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가꾸어 온 마을의 풍경을 지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이 마을의 경관을 스스로 관리하고 보전하려는 움직임은 섬진마을의 중요한 자산이다.
꽃을 보기 좋게 가꾸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매화가 피는 산과 들, 섬진강을 바라보는 풍경, 마을의 길과 농촌의 생활환경까지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지켜가려는 것이다.
관광을 위해 마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살아가는 마을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방문객과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이는 오늘날 농촌마을이 고민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매화보다 작은 두꺼비를 지키는 사람들
섬진마을의 또 다른 얼굴은 생태마을이다.
매화가 섬진마을의 봄을 대표한다면, 두꺼비는 이 마을의 생태환경을 상징한다.
두꺼비는 피부로 호흡하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민감한 생물이다. 특히 번식기에 습지와 물길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서식환경이 훼손되면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 수 있다.
섬진마을에서는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두꺼비의 이동과 산란지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습지를 복원하고 수로를 정비하는 한편, 두꺼비 구조활동도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다압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두꺼비는 책 속에서만 만나는 생물이 아니다.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서 직접 관찰하고 보호해야 할 생명이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큰 교육이 될 수 있다.
마을의 역사와 생태가 아이들의 손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꽃이 진 뒤에도 남아야 할 마을
섬진마을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매화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마을을 취재하는 사람의 눈에는 꽃이 지고 난 뒤의 풍경도 중요하다.
매화가 진 산에는 다시 푸른 잎이 돋고, 농민들은 밭으로 돌아간다. 섬진강은 계절과 관계없이 흐른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주민들은 일상을 이어간다.
그때 비로소 섬진마을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관광지는 계절이 바뀌면 사람도 떠나지만, 마을은 계절이 바뀌어도 삶을 이어간다.
섬진마을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매화라는 아름다운 경관 뒤에 밤산마을의 기억이 있고, 섬진나루를 오가던 사람들의 삶이 있다. 섬진진을 지키던 수군의 역사가 있고, 전쟁의 상흔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두꺼비와 습지를 지키는 주민과 아이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매화보다 깊고, 섬진강보다 긴 이야기
해 질 무렵 수월정에 다시 오른다.
낮 동안 바라보았던 섬진강이 저녁빛을 받아 조금 더 깊어진다. 봄이면 이 강변을 따라 하얀 매화가 피겠지만, 오늘은 꽃보다 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강은 아무 말 없이 흐른다.
그 물길을 따라 사람들은 장을 보러 오갔고, 군사들은 나라를 지켰으며,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그리고 지금은 주민들이 매화와 습지를 지키며 마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섬진마을은 이제 단순히 ‘매화가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고문헌에 기록된 오래된 나루, 전란의 기억을 품은 섬진진, 밤산마을의 농업사, 매화농업의 변화, 주민들의 공동체 정신, 그리고 두꺼비와 습지를 지키는 생태적 노력.
이 모든 것이 섬진마을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 들어 있다.
꽃은 피었다가 진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은 다음 계절에도 남는다.
매화보다 깊은 역사와 섬진강보다 긴 생명의 이야기가 흐르는 곳.
그곳이 오늘 길 위에서 만난 다압면 섬진마을이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43회에서는 백운산 자락의 옥룡면으로 발걸음을 옮겨, 도선국사의 흔적과 옥룡사지 동백숲을 품은 마을을 찾아갑니다. 천년의 역사와 동백나무 숲, 그리고 산촌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살펴보며 광양의 또 다른 오래된 마을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