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유당공원의 연지를 채운 수련 잎 위로 한가로이 자리한 정자와 울창한 녹음. 500년 전 광양읍성을 보호하고 화기를 누르기 위해 조성된 이 숲과 연못은, 숱한 역사의 비극과 민초들의 애환을 안은 채 오늘날 시민들의 단아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바닷바람과 왜구를 막아선 500년 초록 울타리

광양 원도심의 나지막한 품에 자리 잡은 유당공원(柳塘公園). 녹음이 짙어가는 수풀 사이로 맑은 연못이 둥글게 펼쳐지고,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고목들이 푸른 그늘을 드리운다.

유당공원의 역사는 조선 중종 때인 1548년(혹은 1547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광양현감 박세후(朴世煦)는 잦은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광양읍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 남쪽의 늪지에 연못을 파고 버드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이팝나무 등을 심어 거대한 숲을 조성했다. 멀리 바다 쪽에서 왜구의 눈에 읍성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안림(保安林)이자, 섬진강과 남해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닷바람과 염해, 모래 날림을 막아주는 방풍림이었다.

동시에 이 숲은 풍수지리적 지혜가 투영된 비보림(裨補林)이었다. 광양읍의 남쪽 기운이 허하다는 풍수적 결함을 나무와 연못으로 채워 지역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조성된 광양읍수(光陽邑藪)는 세월을 넘어 오늘날 천연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유당공원 내에 설치된 광양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가 고(故) 이경모 선생의 옛 사진 안내판. 해방 전후 유당공원 500년 고목 아래서 한복을 입고 여가를 즐기던 민초들의 소박한 일상과 풍경이 흑백 사진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문성식
유당공원(광양읍수)을 조성한 광양현감 박세후와 호남 사람의 선구자 신재 최산두 선생 등의 위패를 모신 봉양사 전경. 파란 하늘 아래 정갈하게 자리 잡은 사당은 500년 전 읍성을 지키는 초록 울타리를 일구었던 선현들의 애향 정신과 광양의 인문학적 뿌리를 무언으로 증언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배고픈 시절의 서글픈 환영, 이팝나무 꽃이 건네는 위로

유당공원의 상징은 단연 이팝나무다. 높이 18m, 가슴둘레 3.4m에 달하는 이 거목은 한국에 남아있는 이팝나무 중에서도 가장 균형 잡힌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해 왔다.

초여름에 접어드는 입하(立夏) 무릇, 이팝나무 가지마다 순백의 꽃이 구름처럼 소복하게 피어난다. ‘입하목(立夏木)’이 변해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보릿고개를 넘기던 가난한 민초들에게 이 하얀 꽃송이는 매년 가슴을 적시는 눈물겨운 환영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바라본 나무 위에는 보슬보슬하게 잘 지어진 흰 쌀밥(이밥)이 가득 열려 있는 것만 같았다.

민초들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그해에 풍년이 들 것이라 믿으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었다. 굶주림의 슬픈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팝나무는 500년 동안 말없이 민초들의 허기진 영혼을 다독여준 따스한 어머니의 품이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광양 유당공원(광양읍수)의 울창한 고목들과 한쪽에 늘어선 비석군. 조선 시대 광양을 거쳐 간 관찰사와 현감들의 공덕비부터 동학농민혁명과 근현대사의 아픔을 목도한 고목에 이르기까지, 푸른 잔디밭 위로 광양의 뜨거운 역사가 조용히 흘러간다.사진=문성식
광양 유당공원 한쪽에 세워진 6·25참전유공자 기념탑. 1894년 동학농민군 200여 명이 처형당한 비극의 현장이자 한국전쟁의 아픔을 목도한 유당공원이 오늘날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문성식

격변의 근현대사, 민초들의 피와 땀이 아로새겨진 자리

평화로워 보이는 유당공원의 연못과 고목 아래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프고 격정적인 서사가 깊게 패어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평등 세상을 부르짖으며 봉기했던 광양과 순천의 농민군들은 이 숲에 모여들었다. 영호도회소의 대접주 김인배를 비롯한 농민군은 섬진강을 건너 하동과 진주까지 진격하며 기세를 높였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무자비한 반격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1894년 음력 12월, 김인배 장군이 참수당한 뒤 수접주 유하덕과 한군협을 비롯한 200여 명의 농민군이 바로 이곳 유당공원 현장에서 총살당하거나 화형에 처해지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후로도 유당공원은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저항, 여순사건, 그리고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한자리에서 모두 목도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씨름판이 열리고 씨름꾼과 궁사들이 모여들던 삶의 터전이었으며, 백일장과 사생대회가 열리던 문화의 장이었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는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넋이 모이는 통곡의 자리가 되었다.

공원 한편에 세워진 충혼탑과 참전유공자 기념비, 그리고 관찰사와 현감들의 공덕을 기리는 16기의 비석군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초들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무언으로 증언하고 있다.

유당공원 산책로 입구에 서 있는 ‘광양읍수와 이팝나무’ 안내판과 500년 세월을 견뎌낸 고목. 조선 시대 읍성을 보호하던 초록 울타리는 숱한 애환을 품은 채, 오늘날 비움과 채움의 지혜를 전하며 지친 현대인들의 영혼을 다독여주는 생태·문화적 휴식처로 피어나고 있다. 사진=문성식
유당공원에서 가장 먼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주변 고목들까지 ‘광양읍수’로 품어 안게 한 500년 이팝나무. 세월의 무게로 노후된 몸을 이끌고 몇 안 남은 가지 끝에서 해마다 숭고한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이 고목은, 숱한 세파를 견뎌낸 광양 민초들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시니어 시대의 사명, 지워져 가는 기억을 숲에 묻고 길을 묻다

세월이 흘러 유당공원의 이팝나무도 세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부러지고 줄기가 말라가는 고초를 겪고 있다. 나무가 늙어가듯, 이곳에서 아이처럼 팽나무를 타오르고 씨름판에 환호했던 어르신들의 기억 역시 하나둘 지워져 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지는 법이다. 시니어 기자인 필자가 ‘길 위의 광양사’를 통해 오래된 고목의 나이테를 더듬고 유당공원의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빠름과 효율만을 좇는 현대사회에서, 유당공원이 간직한 500년의 켜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정체성이자 삶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연못 위로 수련이 단아하게 고개를 들고, 푸른 그늘 아래 어르신들이 나란히 앉아 오월의 투명한 바람을 맞는다. 주린 배를 채워주던 이팝나무의 하얀 쌀밥 꽃은 이제 지쳤던 마음을 채워주는 인문학적 위로가 되어 다시 피어난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4부 광양의 자연, 제38회에서는 천년의 세월 동안 붉은 눈물을 흘리며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선비의 지조,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의 역사와 상생의 서사’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동행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