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 옥녀의 베틀 소리너머, 골짜기마다 향토 문화의 숨결이 깃든 옛 터전
12실(室)의 으뜸, 백운산 기운이 모인 비단의 골짜기
예부터 광양 땅에는 풍수와 경관의 빼어남을 일컬어 전해오는 ‘10경(景) 8포(浦) 12실(室)’의 명승지 유래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열두 골짜기를 뜻하는 ‘12실’의 첫 번째(第一室)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사라실’입니다. 백운산의 우람한 기운이 남쪽으로 유유히 뻗어 내려 형성된 마로산성 아래, 사곡리(沙谷里)와 죽곡리(竹谷里) 일대의 아늑한 골짜기를 통틀어 예부터 정겨운 이름으로 ‘사라실’이라 불러왔습니다.
‘사라실(紗羅室)’이라는 아름다운 지명은 마로산성 동쪽, 옥녀봉 아래 자리 잡은 형세에서 유래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옥녀봉의 선녀(옥녀)가 하강하여 베틀에 앉아 은하수 같은 비단을 짜던 작업실이 바로 이곳이었다 하여 ‘비단 사(紗)’ 자와 ‘비단 라(羅)’ 자를 써서 사라실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사라실은 크게 억만, 본정, 점동 등 유서 깊은 마을들을 품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본정(本亭)마을은 사라실의 뿌리이자 중심을 이루는 터전입니다. 깊은 골짜기에 포근히 감싸여 있으면서도 따스한 볕이 온종일 감도는 본정마을로 인문학적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마로산성의 호국 영령과 본정마을의 역사적 궤적
본정마을은 사라실 골짜기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대표적인 마을입니다. 본래 조선시대 광양현 동면 사곡리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정·억만·점동 등을 병합하여 사곡리가 되었습니다. ‘본정’이라는 지명은 사라실의 중심이 되는 유서 깊은 정자(亭子)나 정자나무가 있던 터전이라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마을을 등지고 서 있는 마로산성(馬老山城)은 백제 시대에 축조되어 통일신라 시대까지 사용된 국가 지정 사적이자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마로산성 아래 둥지를 튼 본정마을 사람들은 삼국시대부터 고대의 역사적 숨결을 함께 호흡하며 삶의 터전을 일궈왔습니다.
마을 입구와 중심에는 수백 년 세월을 버텨온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팽나무 당산목이 서 있습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렸습니다. “당산나무가 싱그럽게 잎을 틔우면 풍년이 들고, 시름시름 앓으면 궂은일이 생긴다”는 전언은 단순한 풍습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공동체로 호흡해 온 깊은 연대의 증표였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도 사라실은 ‘유선봉조형(遊仙鳳朝形, 신선이 놀고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 또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의 명당으로 꼽힙니다. 이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대대로 순박하고 경건하게 삶을 이어왔습니다.


흙과 금, 땀방울로 일군 공동체의 연대
과거 본정마을 사람들의 삶은 거친 산자락을 일구는 끈기와 이웃 간의 두터운 정으로 요약됩니다.
골짜기 지형의 특성상 평야가 넓지 않았기에 주민들은 산비탈을 개간해 계단식 논밭을 만들었습니다. 마로산성과 옥녀봉 골짜기에서 내리는 맑은 샘물로 벼를 심고 나물을 뜯으며 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사라실의 근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광산(鑛山)의 기억’입니다. 인근 점동마을과 본정마을 경계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규모를 자랑하던 ‘광양광산(금광)’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금과 은, 구리를 캐내던 시절, 조용하던 산골 마을에는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광부들의 곡괭이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막과 장터는 활기를 띘습니다.
위험이 따르는 갱도 속 작업과 고단한 농사일 속에서 주민들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품앗이와 두레를 통해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한식구처럼 나누던 모범적인 공동체 문화는 본정마을이 간직한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폐교에서 피어난 문화예술, 보랏빛 향기로 물드는 오늘
세월이 흘러 광산이 폐광되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사곡초등학교는 1990년대 후반 폐교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본정마을은 절망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마로산성, 억만, 본정, 점동마을을 아우르는 사라실의 역사적 중심지에 방치되었던 옛 사곡초등학교를 매만져 ‘광양시사라실예술촌’으로 화려하게 재탄생시켰습니다. 과거 선녀가 비단을 짜던 신비로운 예술적 DNA가 현대에 이르러 지역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오늘날 옛 교실과 운동장은 작가들의 창작 공간이자 도예, 회화, 한지공예 등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누리는 열린 배움터가 되었습니다. 잔디밭마다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실 골짜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마을 논밭에 넓게 조성된 ‘라벤더 단지’는 본정마을의 또 다른 명물입니다. 매년 초여름이 되면 고즈넉한 시골 마을 전체가 온통 보랏빛 물결로 물들고, 은은한 향기가 산바람을 타고 진동합니다. 옛것을 부수지 않고 고유한 역사와 자연에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힌 본정마을은 전국 농촌 재생의 으뜸가는 모범 답안이 되고 있습니다.


비단 자락처럼 영원히 흐를 사라실의 미래
광양의 12실 중 첫 번째 으뜸 골짜기인 사라실 본정마을. 옥녀의 비단 전설에서 출발해 광산의 역동적인 근대사를 거쳐, 이제는 마을 전체가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문화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수백 년 전 당산나무 아래서 마을의 안녕을 빌던 조상들의 간절한 마음은, 오늘날 예술촌을 찾는 여행자들의 행복한 미소와 보랏빛 라벤더 향기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옥녀의 베틀에서 끝없이 자아내던 은하수 같은 비단 자락처럼, 본정마을이 품은 따스한 이야기와 문화의 숨결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갈 것입니다.
[다음 회차 예고]
철강 산업의 활력 속에 옛 마을의 정겨운 온기를 그대로 간직한 중마동 마흘마을로 떠납니다. 도시의 눈부신 발전 뒤편, 고즈넉이 숨 쉬는 마흘의 옛 자취와 주민들의 삶 이야기를 차근차근 담아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 ⑪ 앵두나무집 닭탕](https://gy-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9/닭탕1-1-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