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 이순신 탄신 481주년(4월 28일)을 앞두고 광양시가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지역 역사문화 관광지를 소개했다.
광양만은 복잡한 수로와 크고 작은 섬이 어우러진 지형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핵심 해상 거점이자 왜군의 북상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역사적 의미를 상징하는 시설이 바로 이순신대교다. 광양과 여수를 잇는 총연장 2226m, 왕복 4차선 규모의 현수교로 100% 국내 기술로 건설돼 2013년 완공 당시 국내 최초·최장·최고 기록을 동시에 세웠다. 주탑 간 거리는 1545m로, 이순신 장군의 탄생 연도인 1545년의 의미를 담았다.
진월면 선소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둔지이자 전선을 건조하던 선소가 있던 곳이다. 조선 수군의 전선이 이곳에서 만들어져 광양만으로 출전했다. 2024년 개관한 진월 조선 수군지 선소기념관은 해전의 흐름과 광양만의 전략적 역할을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성됐으며, 관련 시각 자료와 선박 모형, 체험형 콘텐츠를 갖추고 있다.
기념관 인근 선소에는 광양선소터 표지석과 광양현감 어영담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어영담은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60차례 이상 언급한 인물로, 당시 광양현감이자 조선 수군의 주요 지휘관이었다. 옥포·합포·사천·당항포 등 주요 해전에 참여했으며, 광양만 일대의 지형과 수로에 밝아 수군의 항해와 작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한산대첩에서는 학익진 전술 운용 과정에서 선봉에 나서 적을 유인하며 전투를 이끌었다.
이순신 장군은 장계에서 “호남이 이제까지 보전하게 된 것은 어영담의 힘에 의지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함양이 본관인 어영담은 1591년 3월부터 1593년 10월까지 광양현감을 지내며 연임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해변에서 성장해 선박에 익숙하고 경상도·전라도의 수로 사정과 도서의 형세를 두루 꿰뚫었으며, 임진년 해전에서 매번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그는 1594년 4월 9일 전장에서 얻은 병으로 생을 마감했고, 이순신 장군은 같은 날 ‘난중일기’에 그의 죽음을 기록하며 깊은 슬픔을 남겼다.
광양시 관계자는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은 위인의 삶뿐 아니라 함께 싸운 인물들을 돌아보는 계기”라며 “광양에는 교과서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역사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순신대교와 선소기념관, 어영담 추모비를 차례로 둘러보며 광양의 역사적 가치를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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