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8년 당산나무 아래 ‘양로계‘로 출범… 광양 노인 복지 역사의 산실
북사정 정자터서 출발해 1928년 현 위치에 한옥 신축 이축… 향토문화유산 지정
100년 넘는 교유 문화 이어왔지만 운영난 가중… “역사적 자산 보존 지원 절실“
“吾儕之生 昇一世 幷一鄕 固浮生之一大幸 (오제지생 승일세 병일향 고부생지일대행)”
‘우리가 같은 시대에 태어나 한 고을(광양)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덧없는 인생의 큰 다행입니다.’
1918년(무오년) 가을, 광양의 어르신들이 모여 남긴 계서(契序)의 첫 문장은 108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광양읍 칠성리 수성당(壽星堂) 마당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지역 유림과 유지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집 한 채를 단장했다. 광양 지역 어르신 공동체의 기원이자 노인 복지 역사의 산실인 ‘광양 수성당’의 시작이었다.
지난달 8월 21일 찾아간 광양읍 읍성2길 32-3의 수성당. 솟을대문 위로 ‘光陽壽星堂(광양수성당)’ 현판이 당당히 걸려 있고, 돌담 너머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기와 한옥 건물이 오랜 세월의 무게를 안은 채 고즈넉이 서 있었다. 2008년 12월 24일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된 이곳은 단순한 노인 휴식 공간을 넘어 지역 지식인층의 지혜와 교유가 축적된 상징적 공간이다.
당산나무 아래서 시작된 108년 유풍… 활터 ‘북사정‘에서 현 위치 이축까지
수성당의 기원은 1907년경 광양읍성 북쪽 활터였던 ‘북사정(北射亭, 칠성리 호북마을)’ 자리로 올라간다. 1918년 3월 15일, 죽사 박정진 옹의 발기와 지역 유지들의 찬조로 양로계(養老契)가 구성되었고, 당시 어르신들은 마을을 지켜주던 거대한 당산나무 그늘 아래 모여 시를 읊고 시조를 부르며 학문과 정을 나누었다.
당시 수성당은 학식과 재력을 갖춘 지식인들이 모여 지역 어르신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행정 당국에 주민들의 뜻을 전달하는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1920년 ‘노인회’로 명칭을 변경한 뒤, 창립 10년 만인 1928년 지방 인사들의 뜻을 모아 북사정 자리의 건물을 철거하고 현 위치에 정면 5칸·측면 3칸 한옥을 신축 이축하여 지금의 둥지를 틀었다.
수성당 내부 대청마루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신일수(86세 . 역대 70代) 회장은 수성당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당시엔 광양에서 내로라하는 어르신들이 당산나무 아래 모여 지역 역사를 논하고 바둑을 두며 풍류를 즐겼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역대 회장만 70명에 달합니다. 수성당은 광양 노인 복지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향토사적 자산입니다.”
경내 마당 중앙에는 ‘수성당 창립 100주년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한편에는 세상을 떠난 회원 541명의 영령을 모신 위령탑이 서 있다. 수성당에서는 매년 4월 15일 위령제를 올리며 선현들의 뜻과 공동체의 의리를 이어오고 있다.
빛바랜 한옥에 드리운 현실… 광양시 “시설 훼손 시 보수 지원하나 인건비·운영비는 한계“
그러나 108년이라는 찬란한 역사 뒤편에는 엄혹한 현실적 어려움이 배어 있었다. 취재 당일, 툇마루와 정원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세월이 흐르며 고령의 회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 발길이 줄어든 데다, 일상 운영을 유지할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지원되는 일반 경로당 수준의 난방비나 쌀만으로는 한옥 목조 건물의 유지·보수와 일상 운영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어르신들이 함께 식사하는 공간임에도 식사를 준비해 줄 도우미조차 구하기 힘들어 끼니를 챙기는 것마저 과제가 되었다.
취재 도중 만난 수성당 사무장은 급히 서류 봉투를 챙겨 들고 광양시청 문화예술과로 향했다. 수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피력하고, 당면한 관리 예산과 ‘향토사적 상주 관리원 1명 배치’를 시청에 건의하기 위해서다.
신일수 회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경내를 둘러보며 소회를 전했다.
“옛날 당산나무 아래서 모이던 선비 정신과 공동체 의식은 여전한데, 현실적으로는 당장 한옥 건물 관리조차 힘겨운 상황입니다. 이 소중한 향토문화유산을 지켜내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인 예산 지원과 상주 관리원 배치가 시급합니다.”
이에 대해 광양시 관계자는 수성당의 향토사적 가치에는 깊이 공감하면서도, 현행 문화유산 관리 및 지원 정책상의 명확한 원칙과 한계를 설명했다.
“수성당은 광양시 향토문화유산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산이지만, 문화재 및 향토유산 관리 정책상 상주 관리원 인건비나 일상적인 관리비를 직접 지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시설물이 노후화되거나 훼손되어 보수가 필요한 경우 ‘시설물 보수 정비 사업’을 통한 지원은 가능합니다. 또한 경로당 운영비와 문화유산 관리 예산은 엄격히 분리되어 있어 현행 제도하에서는 상주 관리 인력 지원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국 문화유산 지정을 통한 ‘시설물 훼손 시 보수 정비 지원’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상주 관리원 인건비 및 일상 운영비 지원’ 사이의 제도적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향토문화유산 관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지자체 차원의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년 전 계서(契序)의 가치, 지역사회가 응답해야
1918년 작성된 계서(契序)의 마지막 대목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摘果以付 每年春秋一面 眞牽會之幸 (적과이부 매년 춘추 일면 진견회지행)”
‘열매를 맺어 후대에 전하려 합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만나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진실로 뜻깊은 모임의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108년 전, 당산나무 그늘 아래서 자발적인 공동체를 만들었던 선조들은 후대를 위해 역사와 유교적 기품이라는 열매를 남겼다. 그러나 그 역사적 전당이 지원 부족과 무관심 속에 방치된다면 이는 지역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을 잃는 것과 같다.
광양 노인 복지 역사의 출발점이자 향토문화유산인 수성당. 100년 전 어르신들이 맺은 인연의 열매가 시들지 않도록 이제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따뜻한 관심으로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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