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최대 규모의 선사 유적, 옥룡 산남리 남정 지석묘군”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솔숲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룹니다. 남정마을 일대에는 약 44기의 지석묘가 밀집해 있어 광양 지역 거석문화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닙니다. 기획 연재 10회를 마무리하며 짚어보는 '돌의 역사'는 광양이 단순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마을이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체계적인 문명과 질서를 갖춘 고장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 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선사(先史)의 돌, 영원을 향한 주춧돌을 놓다

광양 역사의 첫 페이지를 찾기 위해 봉강면 석사리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서석, 동석, 명암마을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지명에서부터 ‘돌(石)’의 기운이 완연합니다. 석사리는 청동기 고인돌이 발견된 유서 깊은 곳이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안내 표지판 하나 없는 농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어 들어가자, 매화나무 숲 사이로 거대한 덮개돌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3,000년 전 청동기인들이 세운 영혼의 안식처, 고인돌(支石墓)입니다. “우리 마을 논두렁에 있는 저 큰 돌맹이들이 그냥 돌이 아니지라. 아조 옛날 어른들이 정성껏 모셔놓은 집이라고들 했당께요. 근응께 함부로 건드리지도 않고 여태껏 지켜온 것이제. 요것이 우리 광양의 뼈대가 아니겄소?” 취재 중 만난 명암마을 주민 H씨의 말에서 이 거석들이 단순한 바위가 아닌, 대를 이어 지켜온 공동체의 상징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선사(先史)의 숨결 위에 세워진 현대의 일상, 석사리에서 본 광양” 굽이진 농로를 따라 평화롭게 자리 잡은 봉강면 석사리 명암마을의 전경입니다. 마을 너머 나지막한 산등성이 뒤로 멀리 보이는 광양읍내의 아파트 단지는 수천 년 전 이곳에 고인돌을 세웠던 선사인들의 삶터가 오늘날까지 어떻게 확장되고 변모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8,000년의 역사를 품은 이 들판은 광양이라는 도시의 뿌리이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역사의 맥입니다. 사진=문성식
“변하지 않는 바위에 새긴 광양의 맥(脈)” 봄을 준비하는 매실나무 가지 너머로 명암마을의 거대한 고인돌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철기조차 없던 시절, 오직 통나무와 밧줄에 의지해 이 거석을 옮겨 세웠을 선조들의 정성을 상상해 봅니다. 삶의 터전인 논두렁 곁에서 수천 년을 함께해 온 이 돌들은, 우리가 속도와 효율만을 쫓느라 놓치고 있었던 광양의 견고한 역사적 주춧돌입니다. 사진=문성식
“매화 향기에 갇힌 3,000년의 고독, 명암마을 고인돌의 현주소” 봉강면 석사리 명암마을 논 한복판, 거친 농로 곁으로 거대한 덮개돌들이 무심히 놓여 있습니다. 한때는 강력한 공동체의 상징이었을 이 거석들은 이제 매실나무 숲과 잡풀에 뒤엉킨 채, 역사적 존엄보다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훼손과 멸실의 위기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 돌들은 우리에게 ‘기억의 의무’가 무엇인지 소리 없이 묻고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방치된 유물, 무너져가는 기억의 울타리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명암마을 고인돌은 매실나무 숲에 갇혀 농산물 폐기물과 부자재로 뒤덮여 유물로서의 존엄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옥룡면 남정마을의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44기의 고인돌이 밀집한 광양 최대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묘지들이 고인돌을 밀어내듯 들어서 있고 묘지 빈 곳에는 두릅나무들이 심겨 있었습니다. 또한 소나무 숲은 병들어 죽어가고, 고인돌 주변에는 퇴비가 야적되어 있었습니다.

2022년 조사 결과, 광양의 고인돌은 몇 년 사이 40여 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우리 광양의 뼈대”라고 자부하던 주민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관리 소홀과 무관심 속에 우리의 뿌리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바위의 성질을 빌려 영원을 꿈꿨던 고대 광양인들의 정체성이 오늘날의 편의주의에 밀려 사라지는 현장은 시니어 기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광양 최대의 고인돌 44기가 있는 남정 고인돌 솔숲” 병들어가는 솔숲과 잠식당하는 고대 유적. 남정고인돌 솔숲의 소나무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고인돌이 딛고 선 땅은 작물 재배를 위한 경작지로 변해 유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사진=문성식
“퇴비 더미 아래 숨죽인 역사” 남정 고인돌 현장에는 농사용 퇴비가 야적되어 유물을 덮고 있으며, 주변은 경작지로 변해 고대 유적의 존엄이 훼손되고 있다. 사진=문성식
“기억의 숲을 걷다, 남정마을 어르신의 산책” 봄볕이 완연한 남정마을 길목, 어르신의 고요한 산책길 옆으로 고인돌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평생 이 땅을 일구고 자식들을 키워냈을 어르신의 굽은 등은, 비바람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온 고인돌의 질감과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광양의 역사는 거창한 기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마을 길 위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온 우리 부모님들의 발자국 속에 오롯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역사(歷史)의 성벽, 공존의 울타리를 치다

시간이 흘러 선사의 돌들이 품었던 결속력은 조선 시대 읍내리의 성벽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석사리의 고인돌이 개인과 가문의 안녕을 꿈꿨다면, 읍성의 성벽은 ‘우리’라는 도시 공동체의 질서를 꿈꿨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성벽은 헐려 나갔지만, 유당공원의 고목들과 굽이진 골목길은 광양이 치밀한 설계와 비보(裨補) 정신으로 빚어낸 ‘인문학적 도시’였음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걷는 넓은 길들이 사실은 무너진 성벽의 눈물 위에 세워진 셈입니다. 최근 광양시는 사라진 읍성의 흔적을 표시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돌벽을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장의 정체성이 시작된 그 경계선을 다시 확인하는 ‘역사적 환기’의 과정입니다.

시니어 기자의 사유, 바위의 ‘머무름’과 성벽의 ‘책임감’

현장을 누비는 기자로서 필자는 석사리의 고인돌과 읍성의 성터 사이를 걸으며 ‘기억의 의무’를 묵상합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돌과 성벽은 오늘날 속도와 효율만을 쫓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에는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역사적 주춧돌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고인돌은 우리에게 변치 말아야 할 ‘머무름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읍성은 이웃을 보호하고 질서를 세우는 ‘사회적 책임감’을 일깨워줍니다.

마치며, 제2부, ‘길 위의 사람들’을 향하여

이제 [제1부] ‘유물이 말을 걸다’를 마칩니다. 땅 위에 남겨진 돌과 성벽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문자로 다 적지 못한 뜨거운 삶의 기록이 담겨 있었습니다. 광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은, 수천 년 전 석사리에 돌을 세우던 손길과 읍성을 쌓던 그 마음이 지금 우리 혈관 속에도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이어질 [제2부] ‘글 읽고 사람을 키우던 고장, 광양’에서는 이 땅의 역사를 온몸으로 써 내려갔던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아가겠습니다. 성곽 안에서 공의를 실천했던 선비들, 의병의 깃발을 들었던 민초들, 그리고 광양의 빛을 지켜낸 선구자들의 서사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가장 무거운 돌은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무게다.’

※ 명암 고인돌군 위치: 봉강면 석사리 1014 일대 (명암마을 논 가운데)
※ 남정 지석묘군 위치: 옥룡면 산남리 산 11-1 (남정마을)


제1부를 마치며, 우리가 지켜온 ‘변치 않는 가치’에 대하여

지난 10회 동안 필자는 시니어 기자의 시선으로 광양의 산천에 흩어진 유물들을 길동무 삼아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때로는 고분이 건네는 내세의 인사를 들었고, 마로산성에 올라 공동체의 안녕을 보았으며, 옥룡사지 터를 밟으며 도선국사가 심은 동백 숲의 숨결을 들이마셨습니다. 이제 [제1부]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광양 역사의 두 기둥인 ‘돌(고인돌)’과 ‘성(읍성)’을 통해 우리 고장의 맥박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다음 회부터는 광양을 빛낸 인물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제2부 광양의 인물, 시대의 어둠을 밝히다] 편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