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사지터 "천 년 전의 주춧돌 위에 머무는 가족의 시선". 설 명절을 맞아 옥룡사지를 찾은 가족들이 도선국사가 머물던 법당 터를 둘러보고 있다. 부모에겐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고향의 자부심을, 자녀에겐 비워냄으로써 채워지는 역사의 지혜를 건네는 현장이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백계산 동백 숲이 품은 도선국사의 치유와 비보(裨補) 철학

백운산의 한 줄기인 백계산 자락,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호위하듯 둘러싼 곳에 ‘옥룡사지’가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은 공사가 한창인 주차장과 시설물들이 새로운 단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임시 안내소에서 만난 직원의 친절한 길 안내를 뒤로하고,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동백나무 언덕길을 오릅니다.

‘옥룡사지 입구와 동백나무 언덕길’. 옥룡사지로 향하는 완만한 언덕길.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며 방문객을 역사의 깊은 품으로 인도한다. 사진=문성식

숲의 아늑한 품을 지나 마침내 당도한 옥룡사지 터. 이곳은 한때 수백 명의 승려가 정진하던 남도 불교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화려한 단청도 거대한 불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어 있는 그 터 위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선명한 ‘뜻’을 만납니다. 땅의 상처를 보듬고 생명을 살리려 했던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숨결입니다.

비어 있음이 주는 충만함, 폐사지(廢寺址)의 미학

터에 올라 ‘소망의 샘’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입니다. 그 곁으로 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구경 온 모습이 보입니다. “광양에 평생 살면서도 여태 여기를 처음 와보네” 하시는 부모님의 말씀 속엔, 늘 가까이 있어 미처 몰랐던 보물에 대한 설렘이 묻어납니다.

성소(聖所)는 건물의 화려함에 있지 않고 그곳에 흐르는 정신에 있습니다. 옥룡사는 통일신라 8세기 초에 창건되어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오다 1878년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100년 넘게 폐사지로 남은 이곳은 이제 우리에게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숭배하는가, 아니면 그 안에 담긴 진리를 따르는가?” 옥룡사지는 비어 있기에 오히려 우주의 소리를 담아내는 거대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주춧돌만 남은 옥룡사지 중심 터 전경’. 화려한 법당은 사라지고 주춧돌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옥룡사지 터. 비어 있는 이 공간은 역설적으로 도선국사가 남긴 무언(無言)의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문성식
‘옥룡사지 중심 터에 가지런히 놓인 주춧돌들’. 도선국사가 35년간 머물며 마음의 명당을 일구었던 이곳에서, 주춧돌은 사라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가 된다. 비록 건물은 무너졌으나 땅의 상처를 보듬으려 했던 비보(裨補)의 뜻은 이 돌들 속에 고스란히 박혀 있다. 사진=문성식

도선국사와 비보(裨補), 땅의 상처를 치유하다

신라 말기의 고승 도선국사는 이곳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물며 자신의 사상을 완성했습니다. 그가 주창한 ‘비보(裨補)’ 사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삶의 통찰을 줍니다. 비보(裨補)란 모자란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억누르며, 상처 난 땅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보완이 아니라, 깨어진 세상을 회복시키려는 ‘치유의 철학’입니다. 도선은 복잡한 이론보다 마음속의 참된 나를 찾는 ‘선종(禪宗)’을 통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던 민초들의 고통을 어루만졌습니다.

동백나무 숲: 붉은 꽃으로 쓴 천 년의 시

도선국사는 옥룡사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지기가 약한 곳을 보강하기 위해 주변에 동백나무를 심었습니다. 오늘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7,000여 그루의 동백 숲은 한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천 년의 생태계로 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증거입니다.

산책로 한편에 선 ‘동백 아가씨’ 조형물을 지나며 곧 붉게 피어날 꽃망울을 상상해 봅니다. 척박한 땅을 귀한 명당으로 바꾸려 했던 도선의 자비심은 해마다 다시 피는 동백꽃을 닮았습니다. 주민 B씨는 “동백꽃 필 때 숲을 걸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며 도선국사가 남긴 선한 기운을 전합니다.

‘옥룡사지를 감싸고 있는 울창한 동백나무 숲’.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지는 동백나무 숲. 7,000여 그루의 나무가 자아내는 푸른 생명력은 그 자체로 거대한 비보(裨補)의 현장이다. 사진=문성식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길의 명물, 동백 아가씨상. 안내소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뒤로하고 언덕길을 오르면 울창한 동백 숲이 시작되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단순한 절터를 넘어, 꽃과 나무로 땅을 치유하려 했던 도선국사의 비보(裨補) 정신이 깃든 ‘치유의 숲’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문성식

발굴된 역사, 도선국사의 실체를 만나다

오랫동안 전설로만 내려오던 도선의 이야기는 1990년대 발굴 조사를 통해 역사적 실체로 증명되었습니다. 도선국사와 그의 수제자인 통진대사의 부도탑 자리가 확인되었고, 특히 도선국사의 유골이 담긴 석관이 발견되었을 때 세상은 경탄했습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소박한 기와와 토기 조각들은 ‘본래의 얼굴(본래면목)’을 강조했던 선종 사찰의 단아한 미학을 잘 보여줍니다.

‘도선국사 부도비와 탑’.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도선국사와 통진대사 경보의 흔적. 전설 속에 잠들어 있던 위대한 스승의 역사가 광양의 대지 위로 다시금 그 실체를 드러냈다. 사진=문성식
‘옥룡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낸 통진대사 경도 부도비’. 옥룡사지에 남겨진 비석과 부도탑은 신라 말 고승들의 수행과 입적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숲길을 따라 오르는 이들에게 천 년 전 광양의 정신적 위상을 나직이 들려준다. 사진=문성식

인문학적 사유: 결핍을 은혜로 바꾸는 지혜

도선의 비보 사상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부족한 부분은 어디입니까? 당신은 그 결핍을 원망하며 사십니까, 아니면 사랑의 동백나무를 심어 치유의 숲으로 바꾸고 계십니까?” 진정한 명당이란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해진 곳이 아닙니다. 땅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나무를 심어 그 결핍을 메웠던 도선의 마음처럼, 우리 역시 서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고 채워갈 때 우리 삶의 터전은 비로소 성지(聖地)가 됩니다.

마치며: 동백나무 그늘 아래서

절은 사라졌으나 그 이름은 남았고, 스님은 떠났으나 붉은 동백꽃은 해마다 다시 피어납니다. 옥룡사지는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겠습니까? 당신은 무너질 건물을 짓고 있습니까, 아니면 천 년을 이어갈 생명의 숲을 가꾸고 있습니까?” 빽빽한 동백나무 숲 사이를 거닐며, 마음의 명당을 일구는 법을 배워봅니다. 옥룡사지는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를 다독이는 영원한 스승입니다.

‘진정한 명당은 땅의 기운이 완벽한 곳이 아니라, 사람의 정성이 지극한 곳이다.’

※ 옥룡사지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백계1길 71

[다음 회 예고] 제6회: 도선국사, 백운산 기슭에 심은 비보(裨補)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