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큰줄다리기 보존회 전수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대한 큰줄의 모습. 암줄과 숫줄의 고를 결합하고 비녀목을 질러 고정한 형태는 300여 년 동안 태인동 용지마을 주민들이 풍어와 김 풍작을 기원하며 끌어당겼던 대동(大同)의 역사를 단단히 증언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용지큰줄다리기 보존회 전수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대한 큰줄의 모습. 암줄과 숫줄의 고를 결합하고 비녀목을 질러 고정한 형태는 300여 년 동안 태인동 용지마을 주민들이 풍어와 김 풍작을 기원하며 끌어당겼던 대동(大同)의 역사를 단단히 증언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세계 최초 김 시배지의 자부심, 해학·웅혼함이 넘쳐나는 태인동의 민속 대동놀이

겨울 기운이 채 물러가지 않은 음력 정월, 전남 광양시 태인동 용지(龍池)마을 어귀에 서면 남해 바다의 짭조름한 갯내음과 함께 대지를 울리는 웅장한 꽹과리·징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섬진강 하구와 남해 바다가 교차하는 이 풍요롭고도 거친 터전에서 300여 년의 세월 동안 마을의 안녕을 지켜온 전통 무형유산이자 민속놀이, 바로 ‘용지큰줄다리기’의 현장이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볏짚으로 머리둘레 1~1.5m, 길이 30~40m에 달하는 거대한 줄을 꼬아 메고 나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장관을 이룬다. 수백 명의 마을 민초들이 줄에 몸을 싣고 지르는 함성과 웅혼한 줄소리는 단순한 승부 겨루기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척박한 바다 환경을 일궈낸 삶의 땀방울이자, 대지와 바다를 향해 올려 온 숭고한 생명과 풍요의 연가(戀歌)다.

오늘날 배알도수변공원을 비롯한 태인동 일대에서 시연되는 용지큰줄다리기는 단순한 옛놀이의 재현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김 양식에 성공한 역사의 자부심과, 풍수지리적 지혜, 그리고 주민들의 강렬한 공동체적 결속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광양 민속문화의 웅장한 결정체다.

광양 용지큰줄다리기 보존회관(전시관) 내부에 전시된 보존 물품과 행사 사진들. 중앙의 웅장한 큰줄과 곁줄을 중심으로 ‘김 풍작 기원’ 만장(깃발)과 역대 줄다리기 재현 현장을 담은 사진 액자, 안내 패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마을의 유구한 전통 유산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사진=문성식

터전과 유래 – 세계 최초 김 시배지(始培地)의 역사와 용지(龍池)의 전설

광양 용지큰줄다리기가 여타 지역의 줄다리기와 차별화되는 가장 독특한 지점은 바로 ‘바다의 김(海苔)’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643년(인조 21년), 용지마을의 김여익(金汝瀷) 선생은 갯벌에 밤나무와 버드나무 가지를 세워 해조류를 착생시키는 세계 최초의 김 양식법을 창안했다. 이 획기적인 발명으로 태인도는 우리나라 김 양식의 시배지(始培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김 양업은 태인동 주민들의 삶과 경제를 지탱하는 젖줄이었으며, 갯벌 일은 바다의 천후와 신의 뜻에 온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는 노동이었다. 이에 주민들은 음력 정월이 되면 김의 풍작과 바다 일의 안전, 풍어(豐漁)를 기원하기 위해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또한 마을 이름인 ‘용지(龍池)’ 역시 줄다리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 마을 앞에 용이 사는 연못이 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처럼, 주민들은 줄다리기의 거대한 두 줄을 용(龍)의 형상으로 여겼다. 줄다리기를 통해 잠자는 용을 깨우고 신령한 기운을 다독임으로써 마을의 액운을 막고 복을 부르고자 했던 민중의 신앙적 염원이 이 놀이의 바탕에 깃들어 있다.

용지큰줄다리기 보존회관 한쪽에 보존되어 있는 각종 깃발과 민속 의식 도구들. ‘용지마을 김 풍작 기원제’ 만장을 비롯해 ‘용지큰줄다리기’ 농기(용기)와 응원·행렬용 영기(令旗)들이 정갈하게 갖춰져 있어, 정월 대보름 마당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동 제례의 생생한 기운을 전해준다. 사진=문성식

풍수지리의 지혜 – ‘들말‘ 형국의 마을을 엮는 삼베 실, 줄다리기의 기원

용지큰줄다리기를 이해하는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다. 예부터 전해오는 마을의 형세는 삼베를 감을 때 사용하는 삼각형 모양의 나무틀인 ‘들말’ 형국이거나 옥녀가 머리를 풀어 헤친 ‘옥녀산발(玉女散髮)’ 형국이라고 전해진다.

풍수 관습에 따르면 ‘들말’ 형세를 지닌 마을이 번창하고 액운을 면하기 위해서는 나무틀인 들말에 지속적으로 삼베 실을 걸어 짜야만 했다. 주민들은 실을 뜻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웅장한 도구로 ‘줄(繩)’을 떠올렸다. 마을 지형의 기운을 완벽하게 다스리고 온 마을이 번영하기 위해서는 굵고 튼튼한 줄을 만들어 계속 당겨야 한다는 풍수적 조화의 지혜가 줄다리기라는 세시풍속으로 성행하게 된 배경이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마을은 자연스럽게 ‘안마을’과 ‘선창마을’ 두 편으로 나뉘었다. 안마을은 황룡(黃龍)을 상징하는 ‘암줄’을 만들었고, 바다와 접한 선창마을은 청룡(靑龍)을 상징하는 ‘숫줄’을 만들었다. 음양(陰陽)의 조화와 천지인(天地人)의 결합을 상징하는 두 용의 만남은 대지 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숭고한 민속적 행위였다.

“어이~ 싸게 올려라!” 높푸른 가을 하늘 아래 300년 전통의 용지큰줄다리기를 재현하는 주민들과 줄메기꾼들의 웅혼한 기세. 암줄(황룡)과 숫줄(청룡)이 만나 비녀목을 지르는 고걸이 순간, 온 마을 사람들의 함성과 신명이 하나로 모여 대동(大同)의 장관을 이룬다. 사진=문성식

준비와 참여 – 볏짚 모으기부터 150여 민초들의 대동(大同) 한마당

용지큰줄다리기는 정월 초사흘(음력 1월 3일)에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볏짚을 거두고 줄을 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큰줄의 둘레는 1~1.5m, 길이는 30~40m에 달하며, 줄의 본체에 사람들이 손으로 잡고 당길 수 있는 곁줄(손줄)을 촘촘히 달아매는 정교한 작업이 이어진다.

이 놀이에 참여하는 인원은 최소 150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른다.

소리꾼 (2명): 줄소리를 주도하며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흥을 이끄는 소리꾼

응원농악대 (25여 명): 꽹과리, 징, 장구, 북으로 웅장한 장단을 치는 농악대

줄메기꾼 (130여 명 이상): 암줄과 숫줄을 메고 현장을 누비는 건장한 청장년들

놀이의 과정에서 흥미로운 전통적 금기 중 하나는 ‘줄당기기 본행사 시 여성의 참여 배제’였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줄을 당기면 줄이 끊어지거나 액이 든다는 민속적 속신(俗信) 때문에 여성들은 줄을 직접 잡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두고 응원과 음식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비록 역할은 나뉘었으나, 온 마을 사람이 하나가 되어 정월 대보름의 밤을 밝히는 대동(大同)의 결속력은 용지마을을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었다.

광양 용지큰줄다리기 보존회관 전시실에 게시된 ‘큰줄다리기 제작 및 진행과정’ 안내 패널과 시연 사진들.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되는 줄 드리기 과정과 줄소리 사설, 그리고 ‘진잡이(줄어르기)’ 순서가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300년 전통 놀이의 구체적인 연희 양상을 잘 보여준다. 사진=문성식

의식과 과장 – 진잡이에서 고걸이, 용왕제, 그리고 치열한 줄당기기

용지큰줄다리기는 엄격하면서도 신명 나는 5단계의 과장(科場)을 거쳐 진행된다.

진잡이 (陣陣): 안마을(암줄)과 선창마을(숫줄)이 농악대를 앞세워 각각 진을 치고 상대의 기세를 탐색하는 기싸움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두 줄이 서로 주고받는 줄소리는 후렴구가 매우 발달해 있으며, 민초들의 웅혼한 기상과 패기가 넘쳐난다.

고걸이 (고 결합): 암줄의 고(고리)와 숫줄의 고를 하나로 결합하고 빗장목(비목)을 지르는 핵심 의식이다. 이때 소리꾼과 주민들이 부르는 줄소리는 음양의 결합과 성(性) 행위를 익살스럽고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현장을 웃음과 해학의 도가니로 만든다.

제례 (용왕제 / 고사): 본격적인 줄당기기에 앞서 바다의 신인 용왕(龍王)과 마을 신에게 고사를 올린다. 김 양식의 대풍작과 풍어, 주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엄숙한 제례 의식이다.

줄다리기: 고사가 끝나면 신호에 맞춰 수백 명이 일제히 줄을 당긴다. 승부는 20m 이상 줄을 끌어와야 결정되기 때문에 쉽게 나지 않는다. 보통 2~3시간 동안 팽팽한 힘겨루기가 지속되며, 때로는 밤새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패 없이 화합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뒤풀이 마당: 승패가 갈린 후에는 이긴 편과 진 편의 구분 없이 하나가 되어 술과 음식을 나누고 풍물을 치며 대동 춤판을 벌인다.

광양시 태인동 용지마을 건물 외벽에 그려진 ‘용지큰줄다리기’ 벽화 전경. ‘안몰(안마을)’과 ‘선창몰(선창마을)’ 주민들이 농악대와 함께 암줄과 숫줄을 매고 대동의 줄다리기를 펼치는 모습이 마을 일상 속에 친근하고 정겹게 입혀져 있다. 사진=문성식

해학의 미학 – 웅혼한 줄소리와 익살스러운 민중 문화

용지큰줄다리기가 가진 학술적·예술적 가치 중 으뜸은 단연 ‘줄소리’에 있다. 진잡이 과정에서 울려 퍼지는 웅혼하고 장엄한 소리는 마을 사람들의 단결력을 극대화하며, 고걸이 과정에서 연출되는 해학적인 소리는 삶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민중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거대한 볏짚 줄을 꼬고 결합하는 거친 노동의 순간에 해학적인 풍자와 성적 해학을 담은 노랫가락을 곁들임으로써, 민초들은 노동의 피로를 잊고 공동체의 친밀감을 극대화했다. 이는 억압된 일상에서 벗어나 정월 대보름이라는 신성한 시공간 속에서 마음껏 흥을 발산했던 우리 선조들의 탁월한 문화적 지혜였다.

섬진강 바닷물이 들러싸고 백운산 기운이 도달하는 태인동 용지마을의 한가롭고 정겨운 모습. 김 여익 선생의 김 양식 창시 터전이자 정월 대보름마다 대동의 줄다리기 함성이 울려 퍼지던 이곳 용지마을은 남도의 유구한 무형유산과 민초들의 체온을 묵묵히 간직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전승과 미래 – 미래무형유산 지정과 300년 계승의 남다른 자긍심

세월이 흘러 산업화와 함께 태인동 일대가 국가산업단지로 변모하고 갯벌이 메워지는 환경적 변화 속에서도, 용지큰줄다리기를 향한 주민들의 전승 의지와 자긍심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1993년 남도문화제에서 ‘우수작품발굴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지역 학교(진상종합고등학교 등)와 ‘용지 큰줄다리기 보존회’를 중심으로 청소년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전승 활동에 전념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미래무형유산’으로 선정되는 등 전라남도 무형유산 지정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

배알도수변공원에서 펼쳐지는 용지큰줄다리기 실연 행사는 이제 태인동 용지마을만의 자산을 넘어, 광양시민 전체가 공유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용지마을 광장과 마을회관의 정겨운 모습. 정월 대보름이면 온 마을 사람들의 함성과 징 소리가 가득했던 이곳 광장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광양 민초들의 거친 손길과 끈끈한 공동체 정신을 오늘날까지 묵묵히 품어 안고 있다. 사진=문성식

바다와 대지를 잇는 영원한 밧줄, 광양의 미래를 당기다

광양 태인동 용지큰줄다리기는 300여 년 전 세계 최초로 김 양식을 성공시켰던 용지마을 선조들의 불굴의 개척 정신과, 땅의 기운을 다스리고자 했던 풍수적 지혜가 빚어낸 위대한 민속 유산이다.

암줄과 숫줄이 하나로 엮여 대지를 울릴 때, 그 줄은 단순한 짚풀 뭉치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바다와 인간, 그리고 너와 나를 잇는 영원한 상생의 밧줄이 된다. 김 풍작을 염원하던 선조들의 뜨거운 숨결은 오늘날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학적인 줄소리와 웅혼한 기상이 남해 바다에 울려 퍼지는 한, 용지큰줄다리기는 앞으로도 광양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 찬란한 등불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58회에서는 세시풍속과 절기마다 펼쳐지던 광양 민속놀이의 또 다른 정수, ‘광양 버꾸놀이’의 신명 나는 춤사위와 가락을 찾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