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위 위에 뿌리내린 분홍빛 철쭉이 조화를 이룬 풍경. 자연의 생명력과 계절의 아름다움을 한 장면에 담아낸 작품이다. 사진=이영순


30여 년 카메라에 담아온 자연과 여행의 순간들…“우리네 인생도 곱게 물들어가길”
광양도서관(관장 서유경) 1층에 위치한 갤러리 희양에서 임재현 사진 작가의 10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이번 전시는 오는 16일까지 이어지며, 30여 년 동안 자연과 여행지를 누비며 카메라에 담아온 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2026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으로 마련됐다.
개막일 전시장을 찾으니 사진 한 장 한 장에 작가가 기다리고, 걸어가고, 다시 바라보며 마주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이 아니라, 한 순간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린 사람의 시선이 작품마다 살아 있었다.
임재현 작가는 광양사진동우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사진전 2회 입선을 비롯해 전라남도 사진전 특선 1회, 입선 5회, 한국사진공모전에 다수 입상하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사업을 하면서도, 광양공공도서관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카메라 장비를 챙겼다. 국내 곳곳은 물론 해외 여행길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을 만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30여 년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난히 시선을 붙잡는 작품 중 하나는 밤의 에펠탑을 담은 사진이다. 누구나 한 번쯤 낮의 에펠탑을 본 적이 있지만, 황금빛 조명을 온몸에 두른 채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에펠탑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빛과 어둠, 건축물과 밤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판타지의 한 장면처럼 황홀하다.
빅토리아 산정에서 내려다본 홍콩의 야경도 압권이다. 수많은 빛이 어둠을 수놓은 ‘100만 불 홍콩야경’은 도시의 화려함을 넘어 사진 예술이 만들어내는 깊이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무엇일까.
“작품 하나하나가 자식 같습니다.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오래 기다리고, 찾아다니고, 탐색해서 얻은 것이니까요.”
잠시 작품들을 바라보던 임 작가는 요즘에는 피아골의 단풍나무를 담은 사진에 특히 애착이 간다고 했다.
그리고 팔순을 앞둔 노작가는 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곱게 물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단풍으로 붉게 물든 나무에는 작가가 살아온 세월과 앞으로 걸어갈 시간이 함께 포개져 있는 듯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담은 작품에서도 임 작가의 ‘기다림’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안개가 내려앉은 숲 사이로 빛의 스펙트럼이 퍼지면서 신비로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한 장면은 우연히 카메라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작가는 좋은 빛과 안개, 풍경이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찰나를 놓치지 않고 셔터에 담았다. 사진은 순간을 기록하는 예술이지만, 그 순간을 만나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생도 적지 않았다. 한겨울 눈 덮인 덕유산의 일출을 담기 위해 하루 전날 오후 길을 나서 새벽녘 산에 올랐다. 동이 트는 순간의 풍경을 찍기 위해 추위와 싸우며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손끝은 시리고 콧망울에는 얼음이 얼 정도였다.
지리산 달궁과 뱀사골을 찾아 꽃을 담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산속 벼랑과 바위틈에 피어난 꽃을 찾아 멀리 있는 피사체의 초점을 맞추고, 돌과 바위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으며 셔터를 눌러야 했다.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 피어난 꽃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거센 바람과 추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작은 봉오리를 간직한 채 마침내 꽃을 피워낸 모습은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 임 작가는 그 꽃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만 담은 것이 아니라, 시련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삶의 힘을 함께 담아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낸 뒤 마침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것.’
사진 속 꽃 한 송이가 건네는 메시지에 마음이 울렁이는 이유다.
임재현 작가의 사진에는 자연이 있고, 여행이 있고, 무엇보다 기다림이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사계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 사람의 인생이 겹쳐진다.
초록이 가장 싱그러운 봄과 여름, 붉고 노랗게 물드는 가을, 모든 것을 비워낸 듯한 겨울.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삶의 계절을 읽어내는 것이 임 작가의 사진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전시장인 갤러리 희양에만 머물지 않는다. 광양도서관 곳곳의 벽면에서는 임 작가가 담아 기증한 인제 자작나무숲과 서천변 코스모스 사진도 만나볼 수 있다. 줄자를 세워놓은 듯 곧게 뻗은 자작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숲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초록으로 가득한 숲의 풍경과 가을빛으로 물든 숲은 같은 공간이면서도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서천변 코스모스 사진 역시 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게 계절의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딱딱한 흰 벽이나 차가운 유리벽 대신 싱그러운 자연의 풍경이 도서관 곳곳을 채우고 있으니 책을 읽기 전에도, 책을 덮은 뒤에도 잠시 머물러 바라보게 된다. 자연을 담은 사진이 도서관의 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쉼표를 찍어주는 셈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만든 이 공간은 책과 사진,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사진 속 곧게 뻗은 나무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의 꿈과 생각도 한 뼘씩 더 높이 자라나는 듯하다. 이 작품들은 임 작가가 2016년 광양도서관 신축 개관 당시 기증한 작품들이다.
서유경 광양도서관장은 임 작가의 이번 전시를 반가운 마음으로 맞았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임재현 선생님의 삶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10년 전 제가 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광양도서관 신축을 위해 누구보다 애써주셨던 임 선생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의 열정과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이제 제가 도서관장이 되어 다시 작품으로 만나게 되니 더욱 뜻깊고 반갑습니다.”
이어 “이번 전시의 작품들도 정말 멋지지만, 무엇보다 임 선생님께서 팔순이 되는 해에 다시 한 번 사진전을 열겠다고 하신 약속을 꼭 기다리고 싶다”며 “그때 임 선생님의 렌즈를 통해 만나게 될 세상이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늘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이어가시면서 행복하시기를 바란다”며 “이번 전시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작품 뿐만 아니라 사진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표현해오신 선생님의 열정과 삶을 깊이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카메라는 순간을 붙잡지만, 좋은 사진은 순간을 넘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임재현 작가가 30여 년 동안 기다리고 찾아다니며 담아온 풍경들은 이제 관람객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황금빛 에펠탑의 밤, 홍콩의 눈부신 야경, 안개 속 메타세쿼이아, 붉게 물든 피아골의 단풍, 벼랑 끝에서도 꽃을 피워낸 작은 생명까지.
그의 사진에는 자연의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면 만날 수 있는 순간, 어려움을 견디면 피어나는 아름다움, 그리고 인생이라는 긴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팔순을 앞둔 임재현 작가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마주할 다음 풍경은 무엇일까. 그가 말한 ‘팔순 사진전’의 약속처럼, 또 한 번의 기다림 끝에서 피어날 새로운 한 장의 사진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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