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흙냄새 품은 미꾸라지에서 서민의 보양식으로… 추어탕에 담긴 고향과 세월
10월,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지만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다. 들판에는 황금빛 벼가 고개를 숙이고, 논둑과 개울가에는 가을의 기운이 내려앉는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주말 취재길에 추어탕집을 만났다.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이 생각나는 날씨였다. 문득 어린 시절 고향의 논두렁과 개울가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식당에서 돈을 내고 먹는 음식이지만, 예전 농촌에서는 계절과 노동, 이웃의 정이 함께 끓어오르던 음식이었다.
추어탕 한 그릇에는 미꾸라지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을걷이를 하던 농부들의 땀과 흙 묻은 손, 논물 빠진 자리에 남은 작은 생명, 그리고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지혜롭게 꾸려가던 어머니들의 손맛이 함께 담겨 있다.

논두렁에서 건져 올린 가을의 맛
전라도 시골 농부의 아들로 자란 사람에게 미꾸라지는 낯선 물고기가 아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논고랑과 도랑, 개울가에는 미꾸라지가 흔했다. 논에 물을 빼고 바닥이 드러나면 진흙 속에 몸을 숨긴 미꾸라지를 찾아 나섰다. 작은 소쿠리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일이었다.
한 소쿠리 가득 미꾸라지를 잡아오면 곧장 솥에 넣는 것이 아니었다. 호박잎과 소금을 이용해 미끈거리는 몸을 씻어내고 흙내와 이물질을 제거했다. 살아 있는 미꾸라지들이 소쿠리 안에서 몸부림치던 모습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어머니는 그 사이 무청 시래기를 삶고, 마늘과 고추를 다지고, 솥을 준비했다.
미꾸라지가 푹 익어 뼈와 살이 부드러워지면 체에 내리거나 으깨 국물에 풀었다. 여기에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오래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들깨가루를 넣으면 국물이 한층 걸쭉해지고 고소해졌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집에서는 땡초를 송송 썰어 넣었다. 마지막에 부추나 제피가루를 더하면 향긋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살아났다.
밥상에 오른 추어탕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고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진흙 속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가 든든한 한 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논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이 특별한 체험이겠지만,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일상의 일부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개울가를 뒤지고, 친구들과 누가 더 많이 잡았는지 자랑했다. 미꾸라지와 미꾸리의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지를 놓고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여름철 소나기가 쏟아지고 나면 비포장 신작로에 큼직한 미꾸라지가 나타나기도 했다. 어린 눈에는 어찌나 크고 신기했던지, 저수지에서 살던 미꾸라지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려다 비가 그치는 바람에 길 위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믿기도 했다. 노랗고 붉은빛을 띤 큰 미꾸라지는 왠지 신령스럽게 느껴져 함부로 먹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의 상상력이 만든 이야기였지만, 그만큼 당시의 자연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이야기의 창고였다. 논과 도랑, 웅덩이와 개울에는 물고기가 살았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배웠다.
그러나 농약 사용이 늘고 농촌의 환경이 달라지면서 논에서 미꾸라지를 만나는 일은 점차 어려워졌다. 볏짚을 쌓아 미꾸라지가 숨을 곳을 만들어주던 양식장과 둠벙도 예전만큼 흔하지 않다. 한때 발에 밟힐 만큼 가까웠던 생명이 이제는 시장이나 식당에서 만나야 하는 식재료가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논두렁에서 미꾸라지를 잡고, 어머니가 끓여주던 국을 먹었던 기억은 추어탕을 단순한 음식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추어’라는 이름에 담긴 오래된 음식문화
추어탕은 언제부터 우리 밥상에 올랐을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넣고 양념해 얼큰하게 끓인 국이다. 조선시대 조리서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추어탕의 기록을 쉽게 찾기 어렵지만, 조선 후기 문헌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미꾸라지와 두부를 이용한 ‘추두부탕’이 등장한다. 미꾸라지를 식재료로 활용한 음식문화가 오랜 세월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미꾸라지를 뜻하는 한자에는 ‘추(鰍)’가 있다. 물고기를 뜻하는 ‘어(魚)’와 가을을 뜻하는 ‘추(秋)’가 결합한 글자다. 가을철 미꾸라지가 살이 오르고 맛이 좋아진다는 설명과 연결되지만, 한자의 어원과 음식 이름의 유래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예부터 가을의 미꾸라지가 농촌 사람들에게 반가운 먹거리였다는 사실이다.
농사와 추어탕의 관계는 각별했다. 추분을 지나 벼를 거두고 논의 물을 빼면 미꾸라지를 잡기 쉬워졌다. 농민들은 논바닥과 도랑을 살피며 미꾸라지를 잡았고, 이를 끓여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을 어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풍습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수고한 이들을 대접하고, 마을의 정을 확인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추어탕은 귀한 재료를 사다가 차린 음식이라기보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먹거리를 알뜰하게 활용한 음식이었다. 쌀을 수확하는 논에서 미꾸라지를 얻고, 밭에서 거둔 시래기와 채소를 넣었다. 된장과 들깨로 맛을 보태니 소박한 재료들이 모여 깊고 든든한 국물이 완성됐다.
오늘날 추어탕은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지역마다 조리법과 맛에는 차이가 있다.

남원식은 걸쭉하고, 경상도식은 구수하다
전라도의 추어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남원이다. 남원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푹 삶아 뼈와 살을 으깨거나 곱게 갈아 국물에 풀고, 시래기와 된장, 들깨 등을 넣어 끓이는 방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물이 걸쭉하고 고소해 미꾸라지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처음 먹는 사람도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유다.
경상도식은 지역과 식당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배추 우거지와 토란대 등 채소를 넣고 된장으로 구수한 맛을 내는 방식이 특징으로 꼽힌다. 특히 경남 지역에서는 방아잎을 넣어 독특한 향을 더하기도 한다. 산초나 제피가루를 곁들이면 알싸한 향이 살아나면서 미꾸라지 특유의 냄새를 한결 덜 느끼게 해준다.
서울에서는 추어탕과 비슷한 음식인 ‘추탕’이 발달했다. 소고기나 곱창 등을 우린 국물에 두부와 유부, 버섯, 채소 등을 넣고 끓이기도 하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거나 갈아서 넣는 등 조리법이 다양하다. 강원도 원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도 통미꾸라지를 넣는 방식과 갈아 넣는 방식이 함께 이어져 왔다. 다만 오늘날에는 식당마다 조리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지역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추어탕의 맛을 완성하는 데는 향신료도 한몫한다. 제피와 산초는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서로 다른 식물에서 얻는 향신료다. 지역과 가정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나 사용하는 재료가 혼용되기도 한다. 톡 쏘는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듬뿍 넣고, 처음 먹는 사람은 조금씩 넣어가며 입맛에 맞춘다.
들깨가루를 넣으면 국물은 부드럽고 고소해지고, 풋고추를 넣으면 칼칼한 맛이 살아난다. 부추를 얹으면 향긋함이 더해진다. 같은 미꾸라지로 끓여도 어떤 채소를 넣고 무엇으로 간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추어탕은 한 가지 맛으로 고정된 음식이 아니다. 지역의 기후와 식재료, 집집마다 이어온 손맛이 만들어낸 여러 맛의 기록이다.

몸을 보하는 음식, 그러나 약처럼 생각하지는 말아야
추어탕은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사랑받아 왔다. 여름내 더위 속에서 일한 농부들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기운을 보충하거나, 추운 날 따뜻한 국물로 몸을 데우는 데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그렇다면 추어탕에는 어떤 영양적 가치가 있을까.
주재료인 미꾸라지는 단백질을 공급하는 민물고기다. 칼슘과 인, 철 등 무기질과 비타민류도 함유하고 있다. 특히 미꾸라지를 통째로 갈아 넣는 방식은 뼈까지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시래기와 우거지 같은 채소를 더하면 식이섬유와 여러 비타민·무기질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
시니어에게는 나이가 들수록 단백질과 칼슘을 비롯한 영양소를 꾸준히 섭취하는 일이 중요하다. 추어탕은 생선의 단백질과 채소를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어 균형 있는 식사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뜨거운 국물과 부드러운 재료는 입맛이 떨어진 날에도 비교적 먹기 편하다.
물론 추어탕 한 그릇이 특정 질병을 치료하거나 기력을 즉시 회복시켜 주는 만능 보약은 아니다. 실제 영양 섭취는 조리법과 양념, 먹는 양에 따라 달라진다. 된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세게 하면 나트륨 섭취가 많아질 수 있으므로 혈압 관리가 필요한 사람은 국물을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럼에도 추어탕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까닭은 이해할 만하다.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에 채소를 더해 따뜻하고 든든한 한 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값비싼 재료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몸을 돌보는 음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어탕은 우리 전통 밥상의 지혜를 보여준다.

사라져가는 논두렁의 풍경, 오래 남는 한 그릇
요즘 추어탕을 먹으면서 어린 시절 논두렁을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때는 미꾸라지를 잡으러 나가는 일이 특별한 행사가 아니었다. 논에서 물을 빼고 나면 아이들은 소쿠리를 들고 나섰다. 비가 온 뒤 신작로에 물고기가 나타나면 신기해하며 친구들을 불렀다.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잡아온 미꾸라지를 손질하고 솥을 걸었다.
음식은 그렇게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농약 사용과 농촌 환경의 변화, 논의 구조와 농사 방식의 변화로 예전처럼 미꾸라지를 흔하게 만나기 어려워졌다. 미꾸라지가 살던 논과 도랑은 줄어들었고, 아이들이 맨발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던 개울도 기억 속 풍경이 되어간다.
음식의 변화는 단순히 입맛의 변화만은 아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어디에서 살았는지, 어떻게 일했는지, 누구와 함께했는지를 보여준다. 추어탕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고향의 논과 어머니의 부엌을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꾸라지에는 흙냄새가 배어 있었고, 추어탕에는 된장과 들깨의 구수함이 녹아 있었다. 땡초의 매운맛과 제피의 알싸한 향이 더해지면 코끝이 찡해졌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먹다가 이마에 땀이 맺히면, 옆에 놓인 김치 한 조각으로 입맛을 다시 다잡았다.
그런 밥상에는 특별한 장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둘러앉아 먹는 사람이 있었고, 한 솥 끓인 음식을 나누는 마음이 있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은 미꾸라지를 좋지 않은 존재에 빗대지만, 우리 밥상에서 미꾸라지는 오히려 여러 사람을 든든하게 먹여온 고마운 식재료였다. 작은 물고기가 농촌의 살림과 만나 보양식이 되었고, 세대를 거쳐 지역의 음식문화로 이어졌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들판의 벼가 익어가듯 기억 속 음식도 세월 속에서 깊어진다.
취재길에서 만난 추어탕 한 그릇은 배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논두렁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어린 날, 어머니가 시래기를 넣고 국을 끓이던 부엌, 함께 밥을 먹던 가족과 이웃의 얼굴을 다시 불러냈다.
이제는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는 대신 식당에서 추어탕을 주문하지만, 뜨거운 국물 속에 담긴 정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추어탕은 흙탕물 속 작은 생명이 차려낸 가을 밥상이다. 그 한 그릇에는 농부의 수고와 어머니의 손맛, 함께 먹고 나누던 사람들의 정이 오래도록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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