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하류와 남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진월면 선소마을의 아늑한 포구 전경. 잔잔한 수면 위로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고, 마을 뒤로는 낮은 산들이 함대를 감싸 안듯 병풍처럼 둘러진 모습이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 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붓을 던지고 바다를 지킨 숨은 영웅

그동안 우리는 봉강과 옥룡의 산자락을 돌며 선비들의 고고한 학문과 풍류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광양의 기개는 산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기꺼이 붓을 던지고 거친 바다로 뛰어든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임진왜란의 승리를 이끈 숨은 주역, 어영담(魚泳潭, 1532~1594) 장군입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그림자이자 전라도 바다의 ‘살아있는 지도’였던 어영담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조선의 전함을 만들고 수리하던 진월 선소(船所)로 발길을 옮겨봅니다.

선소마을 입구에 굳건히 세워진 ‘광양현감 어영담 추모비’와 ‘광양 선소 터’라고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의 모습. 비석 뒤로 무적섬 이 있고 앞에는 푸른 바다가 보여 장군의 호국 정신을 상징합니다. 사진=문성식
“과거의 기억이 미래의 이정표가 되는 곳, 선소기념관” 4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우뚝 선 기념관은 잊혀가는 영웅 어영담을 다시 불러냅니다. 섬진강의 물결이 멈추지 않듯, 이곳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장군의 기개는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 시니어 세대와 후대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북극성이 되어줍니다. 사진=문성식

전라도 바다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다

어영담 장군은 광양 현감으로, 이름부터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깊은 못’이라는 뜻을 지녔으니 바다와의 인연은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는 정식 무관 출신은 아니었지만, 전라도 해안의 물길과 섬, 암초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최고의 ‘물길 전문가’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어영담은 물길을 잘 알아 내가 몹시 신뢰했다”고 여러 차례 기록했을 정도입니다. 옥포해전, 당항포해전 등 이순신 장군의 눈부신 승리 뒤에는 항상 앞장서서 전함을 인도하고, 복잡한 물길을 이용해 적을 함정에 빠뜨렸던 어영담의 천재적인 전략이 있었습니다. 지형을 읽는 지혜가 곧 승리의 열쇠였던 셈입니다.

전함이 태어나고 숨 고르던 곳, 진월 선소

광양 진월면 선소마을은 이름 그대로 조선 시대에 배를 만들고 수리하던 ‘선소(船所)’가 있던 곳입니다.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이곳은 물살이 완만하고 지형이 아늑해 전함을 숨기거나 건조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요새였습니다.

광양현감으로 부임했던 어영담 장군은 이곳 선소에서 전선을 정비하고 군사들을 훈련하며 다가올 전란에 대비했습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어촌 마을의 풍경이지만, 430여 년 전 이곳은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고 구국의 결의가 뜨겁게 타오르던 조선 수군의 핵심 기지였습니다. 섬진강의 고운 모래 위로 전함을 끌어 올리며 승리를 다짐했을 장군과 민초들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역사의 성소(聖所)로, 다시 태어난 진월 선소기념관” 한때 면민들의 민원을 살피던 구 진월면사무소가 이제는 잊힌 영웅 어영담 장군의 기개를 전하는 역사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낡은 행정의 옷을 벗고 호국의 기억을 입은 이 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의 교훈을 길어 올리는 소중한 통로가 됩니다. 사진=문성식
“지혜의 갑판 위에 세운 구국의 방주, 판옥선” 2층 구조로 설계되어 격군(노 젓는 군인)은 아래층에서 안전하게 배를 움직이고, 사수와 포수는 위층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었던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 판옥선입니다. 어영담 장군이 이곳 진월 선소에서 백성들과 함께 땀 흘리며 정비했던 이 배는, 단순한 나무 구조물을 넘어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건져 올린 ‘구원의 방주’ 그 자체였습니다. 사진=문성식

시니어 기자의 시선, “나를 드러내지 않는 참된 공로

우리는 흔히 화려한 조명을 받는 1등만을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영담 장군의 삶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위대함은 ‘조력자의 자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물길에 대한 지식)을 오직 나라를 구하는 데 쏟았고, 이순신이라는 큰 거목이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도록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우리 시니어 세대도 그렇습니다. 자식들이나 후배들이 앞서 나갈 때, 우리가 닦아온 인생의 물길과 경험을 바탕으로 묵묵히 길을 안내해 주는 조력자가 된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등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어영담 장군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겸손의 지혜입니다.

마을 어르신의 한마디, “어영담 장군님은 우리 광양의 자부심이제

진월 선소 인근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장군에 대한 애정을 광양 사투리로 듬뿍 담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님은 다 알어도 어영담 장군님은 잘 몰라야. 근디 그 어른이 없었으믄 거북선이 물길을 어떻게 찾아갔겄소? 우리 동네가 바로 그 배를 맨들던 선소마을 아니요. 장군님이 요 앞바다 물때를 훤히 보고 왜놈들을 다 때려잡았당깨. 광양 사람이 바다를 그렇게 잘 알았다는 게 참말로 장하고 기분 좋은 일이제.“

“과거의 헌신과 오늘의 평화를 잇는 가교, 수군교” 전라좌수영의 요충지였던 선소와 군사들이 머물던 망덕을 잇는 이 다리는 단순한 통행로를 넘어 역사의 맥락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어영담 장군과 수많은 광양의 민초들이 전함을 이끌고 거침없이 오갔을 이 물길 위에 세워진 다리는, 단절되었던 과거의 호국 정신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으로 이어주는 ‘약속의 통로’와도 같습니다. 사진=문성식
“400년 전의 헌신을 이어가는 노년의 경건한 손길” 어영담 장군이 떠난 지 수백 년이 흘렀지만, 그가 사랑했던 진월의 땅은 오늘날 또 다른 ‘평화의 군사’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마을을 정비하는 시니어들의 굽은 등과 거친 손마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함대를 인도했던 어영담의 우직함을 닮아 있습니다. ‘어르신일자리’라는 이름의 이 소박한 수고는, 이 땅을 향한 그들의 지극한 사랑이자 삶으로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진=문성식
어영담 장군의 사망을 전해 듣고 이순신 장군이 애통해하며 남긴 난중일기의 기록 패널. “이 애통함을 어찌 다 말하랴 – 영웅이 영웅을 기리다”
1594년 4월 9일, 어영담 장군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이순신 장군은 붓을 들어 그 슬픔을 기록했습니다. 60회 이상 일기에 등장할 만큼 장군이 신뢰했던 어영담은 단순한 부하가 아닌, 전쟁을 함께 설계한 동지였습니다. 사진=문성식

섬진강 물결에 흐르는 호국의 혼

어영담 장군은 1594년 전염병으로 군중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전투 중에 전사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지켜낸 전라도의 물길은 조선을 구하는 생명선이 되었습니다. 진월 선소 앞을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는 오늘도 묵묵히 남해로 흘러갑니다. 그 흐름 속에 담긴 장군의 헌신과 광양 민초들의 호국 정신을 기억하며, 우리도 인생의 거친 물결을 헤쳐 나갈 용기를 얻어봅니다.

다음 제17회 예고,

장군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평범한 농민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거듭난 형제들을 찾아갑니다. 임진왜란 당시 광양의 산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형제들, 강희보·강희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참고 정보]

주요 지역:  광양시 진월면 선소중앙길 31  (선소마을, 선소기념관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어영담추모비) 관람시간은 매일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어영담 주요 공적:  광양현감, 옥포, 합포, 당항포 등 주요 해전에서 수로 향도(길잡이) 역할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