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도 징도 장구도 소리를 죽였다 보소 보소 버꾸소리 들어보소…” 버꾸소리의 웅장한 울림과 버꾸잽이의 생생한 몸짓을 목판 위에 각인한 광양버꾸놀이 서각. 징과 장구마저 잠재우고 억척스러운 북소리로 판을 휘잡던 광양 민초들의 신명과 남도 들녘의 생명력이 조각도 끝에서 살아 숨 쉰다. 사진=문성식
“쇠도 징도 장구도 소리를 죽였다 보소 보소 버꾸소리 들어보소…” 버꾸소리의 웅장한 울림과 버꾸잽이의 생생한 몸짓을 목판 위에 각인한 광양버꾸놀이 서각. 징과 장구마저 잠재우고 억척스러운 북소리로 판을 휘잡던 광양 민초들의 신명과 남도 들녘의 생명력이 조각도 끝에서 살아 숨 쉰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일터의 피로를 신명으로 바꾸어낸 민초들의 가슴속 북소리

지난 기사에서 본지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영·호남의 정서와 유연함이 교차하는 ‘광양의 언어와 정서’를 다루었다. 억척스러우면서도 따스하고 살가운 사투리가 광양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는 언어적 그릇이었다면, 들녘과 마당판에서 피어난 ‘민속놀이’는 삶의 피로를 신명으로 승화시키며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낸 가장 역동적인 무형의 유산이다.

‘광양의 문화’ 이번 제58회에서는, 남도 농악 가운데서도 독창적인 가락과 세련된 춤사위, 그리고 압도적인 에너지로 “앉은뱅이도 벌떡 일으킨다”는 찬사를 받아온 ‘광양버꾸놀이(광양북춤)’의 세계를 탐구한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광양의 들녘과 마을 마당은 단순한 노동의 공간이 아니었다. 정월 대보름의 지신밟기부터 여름철 고단한 논매기가 끝난 뒤 벌어지던 풍물판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선조들은 작고 단단한 북인 ‘버꾸’를 손에 쥐고 가락을 누벼치며 슬픔을 털어내고 희망을 노래했다. 백운산의 기개와 섬진강의 유연함이 북소리로 응축된 광양버꾸놀이의 인문학적·예술적 가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마을 마당을 가득 채우는 신명 나는 버꾸 소리와 연희자들의 경쾌한 발놀림. 굿거리에서 휘모리로 이어지는 가락 속에서 버꾸잽이들이 하나 되어 펼치는 춤사위는 억척스럽고도 유연하게 삶을 일궈온 광양 민초들의 대동(大同)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사진=농붙네텃밭도서관
  1. 버꾸란 무엇인가 — 자루 달린 작은 북, 대동(大同)의 미학을 담다

‘버꾸’는 벅구, 매구북, 소고(小鼓)라고도 불리며 주로 농악과 풍물굿에서 사용되는 혁부(革部)의 작은 북을 가리킨다. 호남과 남해안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이 타악기는 크기는 작지만 손잡이(자루)가 달려 있거나 끈으로 손목과 팔에 고정하여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버꾸’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흥미로운 설이 전해진다. 전라도 방언으로 ‘버꾸’는 ‘바보’ 또는 ‘장승’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는 마을 어디서나 누구든 부담 없이 칠 수 있는 ‘동네북’과 같은 친근함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한편으로는 사찰의 범패와 의식에서 쓰이던 ‘법고(法鼓)’에서 가락과 명칭이 유래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특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수군(水軍)이 많았던 광양 격전지에서 격군들의 노 젓는 박자를 맞추던 북소리가 들녘의 농악과 접목되어 오늘날의 버꾸가락으로 녹아들었을 것이라는 추론은 광양 해양 역사와의 깊은 연관성을 잘 보여준다.

다른 지역에서 버꾸놀이가 풍물패 구성원 개인의 단조로운 소고춤이나 조연급 개인놀이에 머무는 것과 달리, 광양에서는 ‘광양 풍물굿 = 광양 버꾸놀이’로 통용될 만큼 그 비중과 지위가 절대적이다. 10여 명에 달하는 버꾸잽이들이 판의 중심에 서서 장대한 북소리의 앙상블을 이끌어내는 풍경은 오직 광양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야외 잔디광장에서 열린 ‘2026 광양시 농악 한마당’ 시연 현장 전경. 광양읍 풍물단을 비롯한 농악대원들이 화려한 농기와 깃발을 앞세우고 고깔을 쓴 채 흥겨운 풍물굿과 판놀음을 펼치며 지역 민속예술의 생생한 현장감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광양시
  1. 소리와 춤, 삼위일체의 예술 — 광양버꾸놀이의 독창적 연희 구조

광양버꾸놀이는 호남 동부의 좌도농악(左道農樂)이 지닌 치밀하고 힘 있는 가락과, 경상도와 접목된 남성적인 호전성이 결합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문화재로 지정된 진도의 쌍북이나 대구 날뫼북이 춤사위는 뛰어나나 가락이 비교적 단조로운 반면, 광양버꾸놀이는 소리, 가락, 춤사위의 삼위일체가 극치를 이룬다.

광양버꾸놀이의 연희 구조와 예술적 특징

광양버꾸놀이는 개인의 재기 발랄한 기교를 넘어 풍물굿 판 전체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다. 정교하게 짜인 [다스름 ──► 늦은버꾸 ──► 자진버꾸 ──► 진풀이 ──► 된버꾸]의 5단계 흐름을 통해 호흡의 조율에서 대동의 절정까지 다채로운 서사를 완성해 낸다.

광양버꾸놀이의 5단계 연희 진행 구조

① 다스름 (호흡 조율): 본격적인 장단과 놀이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고 판 전체의 기운을 차분히 모으는 단계.

② 늦은버꾸 (서정적 춤사위): 굿거리장단을 바탕으로 무용적 요소가 짙고 우아한 춤사위가 펼쳐지는 서정적 국면.

③ 자진버꾸 (현란한 기교): 자진모리장단의 빠른 템포에 맞춰 버꾸잽이들의 현란한 춤사위와 발놀림, 정교한 기교가 돋보이는 단계.

④ 진풀이 (진형 변화): 장단의 고조 속에서 상쇠의 신호에 따라 다채로운 진형(陣形)을 짜고 풀어내며 판의 기세를 가다듬는 단계.

⑤ 된버꾸 (억척스러운 마무리): 휘모리장단에 가까운 폭발적인 속도 속에서 징·장구·소리마저 잠재우고, 오직 버꾸잽이들만의 격정적인 북소리와 몸짓으로 대동의 절정을 완성하는 단계.

광양버꾸놀이의 독창적 예술성

  • 테두리를 누벼치는 독보적인 북 연주 기법 (털어치기·누베치기):

북가죽 복판만을 두드리는 데 그치지 않고, 북채로 가죽을 때리는 동시에 나무 테두리를 ‘딱’ 소리 나게 울리며 긁거나 위아래로 촘촘히 누벼치는 잔가락 기법을 사용한다. 쇠(꽹과리)나 장구가 연주하는 섬세한 가락을 북 하나로 재현해 내며, 맑고 견고한 나무 소리와 웅장한 가죽 소리가 어우러져 강렬한 울림을 만든다.

  • 땅바닥을 기듯 엎드리는 독창적 신체 동작:

북 끈을 팔꿈치 위쪽에 탄탄히 고정하고 허리를 깊숙이 굽힌 채, 마치 땅바닥을 기듯이 납작 엎드려 굴러가며 북을 치는 동작은 광양 버꾸만의 전매특허다. 부들상모(개꼬리상모)를 격렬히 돌리면서도 남도의 강인한 생명력을 몸짓으로 표현해 낸다.

  • 자연과 삶을 닮은 독보적 춤사위:

황소걸음사위: 묵직하고 우직하게 땅을 딛는 남성적 기개와 황소의 걸음걸이를 닮은 동작.

용솟음사위 & 팽이사위: 공중으로 솟구치거나 격정적으로 회전하며 관객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는 역동성.

학다리사위 & 실타래사위: 학과 봉황이 날아오르듯 어깻죽지를 추켜올리고, 실을 자아내듯 유연하고 애절하게 가락을 풀어내는 남도 서정의 미학.

거울사위: 서로 마주 보고 거울을 보듯 호흡을 맞추며 완성하는 대동(大同)의 호흡.

광양시 사곡리 본정마을(사곡로 149)에 자리한 광양버꾸농악 전수회관 입구 전경. 붉은 벽돌 대문 기둥에 걸린 ‘광양버꾸농악’ 현판이 지역 대표 전통 무형유산의 맥을 잇고 가꿔가는 전수 터전의 소박하고 정겨운 멋을 전해준다. 사진=문성식
  1. 민초들의 삶 속 한마당 — 백중날의 풍물 접전과 세시풍속

역사적으로 광양버꾸놀이는 농경사회의 노동 및 세시풍속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마을 주민들은 한지를 곱게 물들여 고깔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정월 세배가 끝나면 상쇠와 버꾸잽이를 앞세운 풍물패가 당산굿과 동네 새미굿을 시작으로 집집마다 돌며 정짓굿(키친), 조왕굿, 장끄방굿(장독대), 헛간굿, 마당밟기굿을 벌였다. 부잣집에서는 쌀과 돈을 내놓고 가난한 집에서도 정성을 보태어 동네 기금을 마련하고 풍물을 장만했다.

특히 여름철 백중(百中) 무렵, 마지막 논매기(아시매기·타시매기)가 끝난 뒤 벌어지던 풍물굿 접전은 광양 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승부근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매기를 마친 마을 농군들은 농악패로 변신하여 마을의 자존심을 걸고 겨루었다. 양편이 용기(덕석기)와 영기를 세우고 나발을 불며 진을 치고 들어서는 이 접전은, “고춧가루 서 말을 먹고 똥구멍으로 30리를 긴다”는 광양 사람들의 호전성과 유쾌한 해학이 작렬하는 신명의 한마당이었다.

잡색(각시, 할미, 꼽새, 중)들의 익살스러운 재담과 춤사위가 어우러지고, 징과 쇠 소리를 모두 죽인 채 버꾸잽이들만 남아 귀가 먹먹할 듯 고요한 소리에서 폭풍처럼 거대한 소리를 터뜨릴 때, 마을 온 주민과 강아지까지 굿판을 핑핑 돌며 삶의 시름을 말끔히 씻어냈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북소리와 신명을 가슴에 품고 마당 한가운데 선 양향진 전수자. 삼색띠를 두르고 버꾸채를 쥔 그의 미소 속에는 광양 민초들의 삶과 해학이 서린 전통 무형유산을 묵묵히 이어가는 예인(藝人)의 깊은 집념이 흘러넘친다. 사진=농부네텃밭도서관
  1. 맥을 잇는 사람들 — 양일주 옹과 양향진 명인의 장인 정신

이처럼 빛나는 광양버꾸놀이가 오늘날 소멸하지 않고 전승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일생을 버꾸에 바쳐온 명인들의 피땀 어린 헌신이 있었다.

① 70년 버꾸잽이의 인생 — 고(故) 양일주 옹

광양읍 목성리의 양일주(1930년대 출생) 옹은 여남은 살 어린 시절 용강리에서 어른들을 따라 매구를 치기 시작한 이래 70여 년이 넘도록 북채를 놓지 않은 광양버꾸놀이의 터줏대감이었다. 팔순의 나이에도 북을 잡으면 한겨울에 땀이 뻐석뻐석 나도록 사층 계단을 드르륵 올라갈 만큼 기력을 토했던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광양버꾸는 잔가락이 많아서 에롭당게. 딴 데서 뚱뚱뚱 때리는 거야 애기들도 허지만, 나무 테두리를 긁고 가죽을 때림시로 장단을 맹그는 광양 가락을 끊어먹으면 안 되제. 나는 그저 북 치는 사람이어.”

엄격했던 옛 스승들에게 틀릴 때마다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북을 보듬고 바닥을 굴러 배우던 그의 손끝에서 광양버꾸의 정통 가락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② 학술적 성취와 대중화의 선봉 — 양향진 명인

양일주 옹의 뜻을 이어 아들 양향진(광양버꾸놀이보존협회 이사장, 전 명신대 교수) 명인은 광양버꾸놀이의 이론적 체계화와 대중적 확산에 평생을 바쳤다. 5세 때부터 마을 매구판을 기웃거리며 가락을 익힌 그는 대학 시절 탈춤·풍물 운동에 투입되었고, 1997년 최연소 ‘한국농악명인’으로 지정되며 실력을 입증받았다.

양향진 명인은 1991년 광양버꾸놀이보존회를 창립하고 12개 읍·면·동에 농악단을 구성하여 광양제철소 부덕사, 여성문화센터 등에서 연인원 7만여 명에게 버꾸놀이를 전수했다. 또한 목포대학교 대학원에서 「광양버꾸농악의 전승운동에 관한 연구」로 민속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광양북춤의 우수성을 학술적으로 세계에 알렸다.

웅장한 버꾸 소리와 현란한 춤사위가 태동하는 사곡리 본정마을 전수회관의 소박한 마당과 연습장 전경. 화려한 무대 뒤편, 날마다 쇠소리와 북소리로 땀방울을 적시며 다음 세대로 남도 민초들의 신명을 이어가는 광양버꾸농악의 전승 현장이다. 사진=문성식
  1. 인문학적 가치와 무형유산 지정을 향한 과제

광양버꾸놀이는 필봉농악, 이리농악, 밀양백중놀이 등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타 지역 풍물에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우수성과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 광양버꾸놀이의 4대 인문학적·예술적 가치 ]

[1. 음악적 독창성] ──► 북 테두리를 누벼치는 섬세한 잔가락과 웅장한 가죽 소리의 조화

[2. 연희적 역동성] ──► 바닥을 기듯 납작 엎드려 구르는 독특하고 남성적인 춤사위

[3. 영·호남 접목] ──► 전라도의 다채로운 가락과 경상도의 강렬한 힘이 결합된 접경지 유산

[4. 대동 공동체성] ──► 농경·어촌 노동의 피로를 신명으로 전환시킨 민초들의 삶의 에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양버꾸놀이는 전국 민속예술제 참가 등 초기 학술·행정적 선점이 늦어 아직 국가나 도 지정 무형유산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보존회 회원 200여 명이 사곡리의 사설 전수관에서 전승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과 전용 전수관 건립, 그리고 지역 무대에의 상설 공연 기회 확대가 시급한 실정이다.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K-컬처가 세계를 뒤흔드는 오늘날, 앉은뱅이도 일으키는 광양버꾸놀이의 압도적인 흥과 신명은 광양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할 문화 콘텐츠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따스한 햇살이 차분히 내리쬐는 사곡리 본정마을 전수회관과 마당의 호젓한 모습. 쇠소리와 억척스러운 버꾸 장단이 울려 퍼지는 이 작은 배움터는, 남도 민초들이 일궈온 유구한 무형유산의 맥을 잇고 새로운 신명을 계속해서 피워낼 광양버꾸놀이의 영원한 고향이다. 사진=문성식

이 땅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울려 퍼질 북소리

광양불고기가 온기를 전하고, 장도의 정절과 전어잡이 소리가 시대를 증언하며, 사투리가 마음을 이어주었다면, 김시식지의 용지큰줄다리기 놀이와 광양버꾸놀이는 이 땅을 일구어온 민초들의 가슴속에 잠자던 야성과 생명력을 깨우는 뜨거운 울림이다.

북채가 가죽과 나무 테두리를 가로지를 때 터져 나오는 타악의 쾌감, 그리고 온 몸을 던져 판을 구르는 연희자들의 땀방울 속에는 시련에 굴하지 않았던 광양 사람들의 굳센 기개가 흐르고 있다. 이 빛나는 무형의 보석이 소멸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온전히 이어지도록, 이제 온 시민과 지역사회가 함께 북채를 쥐어주어야 할 때다.

[다음 회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6부 광양의 문화] 제59회: 백운산의 기상과 섬진강의 유연함이 빚어낸 문학의 숲- ‘광양문학’  다음 회에서는 남도의 유유한 자연과 역사의 숨결 속에서 피어난 ‘광양의 문학사(文學史)’를 찾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