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 복판으로 달리는 말(馬) 중마동, 그 심장에 살아 숨 쉬는 ‘마흘마을‘을 가다
옛 골약면의 으뜸 마을에서 광양의 중심축으로,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마흘마을
전라남도 광양시의 지도를 펼쳐 들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웅장하게 솟아오른 가야산 아래, 푸른 광양만 바다를 마주하고 뻗어 나간 현대적 빌딩 숲, 바로 광양시 행정과 경제의 심장부인 ‘중마동(中馬洞)’이다. 오늘날 중마동은 광양시청을 비롯한 주요 관공서와 대단지 아파트, 상업시설이 밀집한 전남 지역 최대의 행정동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불과 4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한적한 어촌이자 갯벌, 평화로운 농촌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골약면’의 일부였다. 1980년대 후반 광양제철소 건설과 컨테이너 부두 개발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곳은 ‘폭풍 성장’을 거듭했고, 옛 중동(中洞)과 마동(馬洞)의 앞 글자를 따 오늘날의 ‘중마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직역하자면 ‘한복판으로 달리는 말’이라는 뜻을 가진 이 지명은, 놀랍게도 오늘날 광양의 중심고을로서 날로 번창하는 도시의 운명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높고 화려한 고층 아파트 단지들 사이, 세련된 도심 한구석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흙내음과 옛 선조들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마을이 나타난다. 바로 마동의 뿌리이자 지명의 시작점이 된 ‘마흘(馬屹)마을’이다. 콘크리트 빌딩 숲속에 은신하듯 자리 잡은 마흘마을을 중심으로, 중마동의 옛 기억과 뜨거운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옛 역사와 형성된 마을들의 유래, ‘마리’에서 ‘마흘’로, 그리고 ‘중마’로
중마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연부락들의 유래와 만나게 된다. 본래 이곳은 조선시대 광양현 칠골약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중촌, 길호, 불로, 오류, 마흘, 와우, 사동 등이 있었는데, 저마다의 지형적 특징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중동’은 자연마을이었던 중촌(中村)이 용소마을과 길도마을의 딱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는 지형적 여건에서 유래했다. 반면 ‘마동’은 이 지역에서 가장 번성했던 두 마을인 ‘마흘(馬屹)’과 ‘사동(寺洞)’의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 기사의 주인공인 마흘마을은 옛 마동 지역에서도 단연 ‘가장 으뜸이 되는 마을’로 통했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30여 년 전인 1590년경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전란의 불길을 피해 신안 주씨(新安 朱氏) 일가가 가야산 아래 자락에 은거하며 터를 잡은 것이 부락의 시초가 되었다.
마을 이름에 대한 유래는 참으로 흥미롭다. 마을 근처 산정(山頂)의 모습이 마치 늠름한 말(馬)의 형국을 닮았다 하여 처음에는 ‘말의 마을’이라는 뜻의 ‘마리(馬里)’라고 불렀다. 이것이 세월이 흐르며 음이 변하고 근세에 이르러 ‘말이 우뚝 솟아 있다’는 뜻의 ‘마흘(馬屹)’로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화와 전통, 그리고 설화, 당산나무와 ‘몰바구’, 도깨비의 이야기
오랜 역사를 지닌 마흘마을에는 도심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짙은 문화적 전통과 은은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가장 큰 전통은 바로 ‘당산제(堂山祭)’이다. 매년 정월이 되면 마흘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당산나무 아래에서 정성스레 제를 올렸다. 옛날에는 대동회 회장이 제주를 맡아 온 동네의 염원을 담아 엄숙하게 제를 주관했으며, 제사가 끝난 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의 정을 다졌다.
마흘마을의 지명 유래와 관련된 또 다른 설화는 마을의 오랜 정자나무 밑에 있는 커다란 바위, 일명 ‘몰바구(말바위)’에 얽혀 있다.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 바위의 생김새가 신기하게도 꼭 말의 형상을 빼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은 산의 모양뿐만 아니라 이 ‘몰바구’ 때문에 마을 이름이 마흘이 된 것이라 믿기도 했다. 이 바위는 수백 년 동안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한여름 농사일에 지친 주민들이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며 땀을 식히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또한 마흘마을 인근에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도깨비 도로’와 ‘도깨비 도시숲’이 자리하고 있다. 광양시청에서 마흘마을로 향하는 길은 육안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가파른 오르막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차를 세워두거나 물병을 놓으면 내리막길처럼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가야산 도깨비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라 부르며 신비해했다. 이 설화 같은 풍경은 오늘날 도심 속 이색적인 명소로 가꾸어져,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옛 사람들의 생활모습, 바다와 논밭을 오가던 치열하고 평화로웠던 삶
도시개발이 본격화되기 전, 중마동과 마흘마을 사람들의 삶은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중동간척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마흘마을의 바로 앞마당까지 푸른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주민들은 가야산 남쪽 자락의 기름진 땅에서 쌀과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인 동시에, 썰물 때면 마을 앞 갯벌로 나가 조개와 낙지를 잡고 고기를 낚던 어부이기도 했다. 아침에는 논과 밭으로 나가 가래질과 호미질을 하고, 저녁에는 바다로 나가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던 역동적인 삶의 터전이었던 셈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마흘저수지(현 마동저수지)가 있어 가뭄 때마다 주민들의 든든한 꿀줄기가 되어주었다. 봄이면 모내기를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를 하며 소리를 높였고,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에서 벼를 베며 풍년가를 불렀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했으나, 가야산의 정기를 받으며 이웃 사촌 간에 허물없이 막걸리 잔을 건네던 그 시절의 생활 모습은 마흘마을 노년층의 기억 속에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현재의 도심 모습과 생활, 시청의 불빛과 마흘마을의 공존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마흘마을의 풍경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1988년 동광양시청(현 광양시청)이 중마동 벌판에 건립되면서 본격적인 대개발의 서막이 올랐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와 상업시설, 병원 등이 밀집하면서 완연한 현대식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광양시청을 중심으로 한 중마동의 도심은 밤낮없이 활기차다. 세련된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하고, 주민들은 잘 정돈된 중동근린공원이나 이순신대교가 바라보이는 수변공원에서 여가를 즐긴다.
이러한 화려한 도심의 불빛 바로 옆에 마흘마을이 있다. 현재 마흘마을은 대단지 고층 아파트들과 마동저수지 생태공원 사이에 포근히 안긴 형태로 존재한다. 과거 70~80여 가구에 달했던 마을 규모는 도심 개발 과정에서 부지가 편입되며 현재는 35가구 남짓한 주민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현재 이곳의 생활 모습은 묘한 매력을 풍긴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벽화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오래된 주택 마당에는 고추와 상추가 자란다. 주민들은 아침이면 마을 정자나 노인복지센터에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도, 걸어서 5분만 나가면 시청과 대형마트 등 최고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누린다. ‘도심 속의 농촌’이라는 말 그대로, 현대적 편리함과 농촌의 정겨움이 기묘하면서도 아름답게 공존하는 삶이다.

미래를 향한 시선,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상생의 가치
마흘마을은 지금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주변 지역이 계속해서 재개발되고 주거 구역이 확장됨에 따라, 오래된 자연부락으로서의 마흘마을 역시 서서히 이전을 준비하거나 현대적인 형태로 변화할 유인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을 내부의 많은 주택이 이전을 준비하는 등 오랜 터전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많은 주민과 향토 사학자들은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마흘마을의 미래가 단순히 ‘사라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을의 경계는 허물어질지언정, 마흘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은 중마동의 미래 비전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고 있다. 마을의 탯줄과 같았던 마흘저수지는 이제 광양시민 전체의 사랑을 받는 ‘마동저수지 생태공원’과 명품 유원지로 거듭나, 음악분수와 맨발 걷기 코스 등을 갖춘 도심 속 거대한 힐링 허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마을 부지 내에 건립된 광양 커뮤니티센터와 국궁사격장, 명문 중마고등학교 등은 마흘마을의 터가 여전히 광양의 미래 인재를 키우고 문화를 생산하는 명당임을 증명한다.
나아가 중마동은 광양와우지구 도시개발을 통해 신흥 주거 도심을 확장하는 한편, 이순신대교 해변관광 테마거리인 ‘광양해비치로’ 조성을 통해 해양 관광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양공원에서 금호대교, 이순신대교로 이어지는 9.4km 해안도로에는 해오름육교와 달빛해변, 바다감상존, 키네틱 아트광장 등 25개 감성 콘텐츠가 차곡차곡 들어서며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는 중이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친환경 스마트 도시로 도약하는 거대한 발전의 흐름 속에서도, 마흘마을의 유래비와 몰바구의 전설, 그리고 ‘날로 번창하는 고을의 으뜸’이라는 마흘의 정신은 박제된 과거가 아닌 중마동의 위대한 자부심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달리는 말은 멈추지 않는다
마흘마을 입구에 서서 고개를 들면, 수백 년 전 선조들이 바라보았던 가야산의 푸른 능선과 오늘날 광양의 번영을 이끄는 높은 빌딩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1590년 주씨 일가가 이 땅에 은거하며 심었던 희망의 씨앗은, 세월을 지나 광양시 최고의 중심지라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났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농촌과 도시가 악수하며,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곳. ‘복판으로 달리는 말’의 심장과도 같았던 마흘마을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중마동이 써 내려갈 찬란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첫 페이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다음 회차 예고]
섬진강 푸른 물길이 감싸 안은 예향의 터전, 진월면 차동마을로 여정을 이어갑니다.
강바람 따라 피어나는 들녘의 옛 이야기와 따스한 사람들의 숨결을 차근차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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