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호남정맥의 종착지, 바다를 품은 봉우리
섬진강의 푸른 물길이 남해의 거친 파도와 몸을 섞는 곳, 광양만의 중심에 우뚝 솟은 구봉산(해발 473m)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의 목격자다. 마이산과 내장산, 무등산을 거쳐 숨차게 달려온 호남정맥의 주능선이 남녘 바다로 뛰어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힘차게 솟구쳐 올린 산줄기가 바로 이 구봉산이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흡사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며 웅비하는 형상을 띠고 있다. 산자락 아래 동네가 ‘용이 감싸 안은 골짜기’라는 뜻의 ‘용장골’이라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웅장한 지세에서 유래했다.
구봉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광양만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로 불야성을 이루는 POSCO 광양제철소와 세계로 뻗어가는 광양항 국제부두가 웅장하게 펼쳐지고, 바다 건너 여수국가산업단지와 하동화력발전소, 순천만, 그리고 남해의 망운산까지 5개 시·군의 풍경이 거대한 수묵화처럼 안겨 온다. 왜 이 작고도 높은 정점이 예부터 남해안을 호령하던 지리적 요충지였는지를 단박에 깨닫게 하는 압도적인 풍경이다.


‘건대산’에서 ‘구봉산’까지, 연기와 횃불의 역사
오늘날 우리는 이 산을 ‘구봉산’이라 부르지만, 조선시대 고문헌과 고지도 속 이 장소의 본이름은 ‘건대산(件大山)’이었다. 광양지역사연구회 ‘마로희양’의 고지도 분석에 따르면, 17세기 후반 제작된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부터 1872년 《광양현지방지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지도들은 이 산을 한결같이 ‘건대산’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정상에 봉수가 존재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지금의 지명은 일제강점기(1918년) 지도를 거치며 변화한 세월의 덧칠이다.
흔히 ‘구봉산’이라는 이름 때문에 아홉 개의 아름다운 봉우리가 굽이치는 산으로 오해하곤 하지만, 실상 지역민들 사이에서 이 산은 ‘옛적에 봉화를 올렸던 산’이라는 뜻의 ‘구봉화산(舊烽火山)’ 혹은 ‘구봉산’으로 오랫동안 이해되고 불려 왔다. 기록에 따르면 광양에는 두 개의 봉수대가 전해지는데, 구봉산 봉수대는 지리지에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반면, 광양읍 초남리의 봉화산(사곡 점동마을 뒷산) 봉수대는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 흔적을 찾기 어렵다. 본래 주민들에게 익숙하던 구봉화산이라는 지명은 행정 명칭 정비 등을 거쳐 지난 2011년에 지금의 ‘구봉산’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건대산 정상의 봉수대는 남해안의 위급한 군사 상황을 한양까지 전달하던 국가 기간 통신망의 핵심 거점이었다. 여수 돌산과 진례산 봉수에서 피어오른 횃불과 연기를 받아 순천 관아(순천도호부)로 전달하는 릴레이의 중심축이었던 것이다. 낮에는 자욱한 연기(燧)로, 밤에는 번뜩이는 횃불(烽)로 국경의 위급함을 알리던 이 긴박한 신호는 멈추지 않고 달려 12시간 만에 한양 목멱산(남산)에 닿았다.
수백 년간 광양만을 지키던 건대산 봉수는 1895년 갑오개혁과 함께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비로소 긴 잠에 들었다. 1899년 발간된 《광양군읍지》에 ‘봉수폐지’라는 네 글자가 서글프게 새겨진 이후, 옛 봉화가 있던 자리에는 지름 8m, 높이 1.2m의 기단부와 흩어진 돌무더기만이 남겨져 이곳이 뜨거운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묵묵히 증언해 왔다.
메탈아트 봉수대의 퇴장, 그리고 보존과 개발의 숙제
시간이 흘러 지난 2013년 12월, 광양시는 구봉산을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사업을 통해 정상에 전망대를 완공하고, 옛 봉수대 터 맞은편에 아주 특별한 조형물을 세웠다. 광양(光陽)이라는 지명을 최초로 사용한 해인 940년(고려 태조 23년)을 기념하여 정확히 940cm(9.4m) 높이로 제작된 ‘철(鐵)아트 디지털 매화봉수대’였다. 광양을 상징하는 빛, 철, 매화꽃을 융합한 이 조형물은 특수강판과 화려한 LED 조명으로 피어나는 매화의 생명력을 표현해 오랜 시간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역사 교육의 장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이 매화봉수대가 역사 속으로 철거되면서 지역 사회에 작지 않은 파문과 사유의 숙제를 던졌다. 광양시가 구봉산 정상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탈바꿈하기 위해 포스코와 손잡고 새로운 체험형 조형물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기존 봉수대를 철거·이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재 예전의 봉수대 조형물은 광양만을 바라보는 공원 한편에 ‘약속의 기억’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이전된 상태다.
현장을 지켜본 이들은 “구봉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봉수대의 역사성을 상징하는데, 개발이란 명목으로 흔적을 쉽게 지워버리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며 개탄 섞인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물론 시 관계자는 “완전한 소멸이 아닌 다른 장소로의 이전이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문화의 진화”라고 해명했지만, 이번 사안은 우리에게 ‘도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뿌리 깊은 역사적 자산의 보존’과 ‘미래를 위한 관광 개발’ 사이에서 무엇을 우선하고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무거운 철학적 질문을 남긴다.


운해 속에 감춰진 은빛 곡선, ‘광양판 스페이스워크’
기자가 구봉산을 찾은 날은 마침 대지를 적시는 장막 같은 장마철 기간이었다. 용장마을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거슬러 오르니 정상부는 온통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해돋이 공원 주차장에는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쉼 없이 움직이며 공사가 한창이었고, 안전을 위해 통행이 금지되어 새로 설치되는 조형물의 심장부까지는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장마 끄트머리의 궂은 날씨 속에 다행히 비는 멎었으나, 짙은 운해가 밀물처럼 밀려와 정상부를 두껍게 가리고 있었다. 바람이 이 자욱한 운해를 말끔히 몰아내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를 간절히 기다려 보았지만, 베일에 싸인 은빛 구조물은 끝내 제 민낯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운해 사이로 아스라이, 그리도 아련하게 실루엣만 비추는 신비로운 모습을 카메라에 간신히 담아내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비록 기후는 눈을 가렸을지언정 그곳에 세워질 미래는 명고했다. 봉수대가 떠난 자리에는 포스코가 지역 상생을 위해 180억 원을 전액 투자하고,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누엘 몬테세린(Manuel Álvarez-Monteserín)이 디자인한 ‘체험형 공공조형물’이 들어선다.
이미 포항 환호공원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한 ‘스페이스워크’의 성공 신화가 이곳에서 더욱 진화된다. 광양의 조형물은 높이 23.5m, 총 길이 300m에 달하는 미래지향적 은빛 나선형 램프를 따라 무장애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포용적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2026년 중반인 지금, 공정률을 넘어서며 막바지 준공을 향해 순항 중인 이 조형물은 웅장한 곡선으로 구봉산 정상부를 감싸 안고 있다. 완공되면 방문객들은 나선형 길을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광양만의 하늘과 바다, 산업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입체적으로 체험하며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사유의 여정’을 누리게 될 것이다.


과거의 불꽃이 미래의 빛이 되기를
과거 구봉산(건대산) 정상의 불꽃이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며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던 ‘생존의 빛’이었다면, 이제 새롭게 들어설 은빛 체험형 조형물은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상생과 도약의 빛’이다.
역사적 상징물을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의 기저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뿌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광양시는 봉수대가 가졌던 고유의 역사적 가치를 스페이스워크라는 거대한 예술품 속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녹여내고 기억하게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 보존과 개발의 숨 가쁜 대화가 이어지는 구봉산 정상에서, 하늘과 바다를 잇는 은빛 랜드마크가 광양의 미래를 향해 찬란한 봉화를 올릴 날이 머지않았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 제4부 광양의 자연, 제36회에서는 섬진강 굽이치는 물길을 따라 해마다 하얀 꽃구름을 피워내며 봄의 전령 역할을 해온 ‘섬진강 매화마을’의 역사와 자연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