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 당황하지 마세요. 제가 같이 해드릴게요.”
지난달 24일 오후 진월면사무소 무인민원발급기 앞에서 한 어르신이 화면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주민등록등본 한 장을 발급받으려 했지만 화면에 뜬 여러 메뉴와 본인 인증 절차 앞에서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연두색 조끼를 입은 광양시니어클럽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가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주민등록등본이시죠? 여기부터 천천히 누르시면 됩니다.“
안내사의 설명을 따라 버튼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발급기가 등본을 출력했다. 처음에는 긴장했던 어르신의 얼굴에도 금세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처럼 광양시청 민원실과 골약동·광영동 행정복지센터, 진월면·옥곡면사무소 민원실에서는 매일같이 따뜻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이름은 광양시니어클럽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
“디지털도 또래가 알려주니 어렵지 않네요”
광양시니어클럽(관장 반영승)이 운영하는 노인역량활동사업 ‘시니어일자리지원단’은 만 60세 이상 광양시 어르신 80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 12명은 광양시청 민원실과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배치돼 무인민원발급기 이용 안내, 정부24 서비스 안내, 민원서류 작성 지원, 디지털 행정서비스 이용을 돕고 있다. 근무는 오전·오후로 나뉘어 하루 3시간씩 진행된다.
이들의 역할은 단순히 버튼을 대신 눌러주는 것이 아니다. 민원인이 스스로 이용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하며 디지털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민원실 공백을 메우는 든든한 동반자
현장에서 만난 민원실 관계자는 참여자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들의 역할을 이렇게 평가했다.”예전에는 어르신들이 창구로 한꺼번에 몰려 민원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참여자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분들이 먼저 무인민원발급기 이용을 도와주시면서 민원 처리도 훨씬 원활해졌습니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파트너입니다.”
민원인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젊은 직원에게 물어보기보다 비슷한 연배의 안내사에게 질문하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어려웠어요.”
이 한마디가 어르신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또래만이 줄 수 있는 공감과 여유가 디지털 장벽을 자연스럽게 허물고 있었다.
단순 일자리에서 전문 사회서비스로
과거 노인일자리는 환경정비나 단순 공익활동 중심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광양시니어클럽의 시니어 일자리 지원단은 이러한 틀을 넘어 전문성을 갖춘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직무교육과 안전교육을 이수한 뒤 현장에 배치되며, 시민 응대와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까지 갖춘 지역사회 안내자로 활동한다. 현재 광양시니어클럽은 노인공익활동사업단, 노인역량활동사업단, 공동체사업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사회 곳곳을 지원하고 있다.
“다시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걸 느낍니다.”
한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는 활동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은퇴 후에는 사회에서 멀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민원실에서 어르신들을 도와드리다 보면 제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3시간이지만 가장 보람 있는 시간입니다.”
그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도움을 주는 사람도 모두 어르신이다. 이른바 ‘노노(老老) 케어’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선순환이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가장 따뜻한 방법
행정서비스는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무인민원발급기와 키오스크는 이제 일상이 됐지만, 여전히 많은 고령층에게는 높은 장벽으로 남아 있다. 광양시니어클럽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들은 그 틈을 메우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단 몇 분의 안내일 수 있지만, 그 몇 분이 어르신들에게는 행정서비스를 스스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고, 지역사회에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가장 따뜻한 복지가 되고 있다.
무인기계 앞에서 멈춰 선 시민에게 먼저 다가가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는 사람. 광양시청과 읍·면·동 민원실 곳곳에서 오늘도 묵묵히 시민 곁을 지키는 디지털 시니어 안내사들은 단순한 노인일자리 참여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디지털 길잡이이자 행정의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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