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억불봉의 웅장한 기세 아래 정겹게 자리 잡은 진상면 황죽리 구황마을과 신황마을의 초입 전경. 영험한 산세를 배경으로 나란히 선 두 마을의 모습이 조화롭다. 사진=이호선
구황마을 클린하우스 주변을 내 집 앞마당처럼 정돈하고, 배출된 생활 쓰레기를 꼼꼼하게 분리수거하며 청정 마을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참여자들의 아름다운 손길. 사진=이호선
이웃들의 건강한 일상을 위해 신황마을회관 옆 야외 운동기구를 구석구석 정성스럽게 살피고 청결하게 닦아내는 참여자들의 활기찬 활동 모습. 사진=이호선
새로 지어진 신황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마을이장(맨좌측)과 부녀회장(맨우측), 우리동네방역환경봉사단 참여자들이 잠시 땀을 식히며 정다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사진=이호선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백운산의 영험한 정맥이 힘차게 휘돌아 뻗어내린 곳, 전남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의 구황(舊黃)마을과 신황(新黃)마을을 찾았다. 영적 조류인 학을 품에 안은 형세의 억불봉(1008m)이 위쪽에서 포근하게 감싸 안은 이 고을은 문헌을 들여다볼수록 단순한 농촌 그 이상의 깊은 역사와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본 기자는 지난달 17일, 광양시니어클럽(관장 반영승)의 대표적인 노인공익활동사업인 ‘우리동네 방역환경봉사단’의 생생한 활동상을 취재하기 위해 진상면 황죽리를 찾았다. 주황색 안전조끼를 맞춰 입고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고향을 지키는 참여자들을 만나 마을의 찬란한 역사와 오늘날 피어나는 봉사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동행 취재를 진행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기치 아래 가난의 아픔을 극복하고, 몰라보게 달라진 풍요로운 마을을 일구어낸 구황·신황마을 주민들은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고향을 물려주기 위해 2004년 ‘구황마을 유래지맥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후대에 물려주는데 한치의 부끄러움도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이 비석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이 선조들의 다짐과 고향 사랑을 2026년 현재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광양시니어클럽 ‘우리동네방역환경봉사단’이다. 현재 광양시니어클럽은 참여자들의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동네 방역환경봉사단’은 광양시 관내 81개 읍면동 마을에서 총 340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사업단으로, 지역 사회의 든든한 보건·환경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마을은 마을회관 옆에 마련된 ‘클린하우스’를 중심으로 각기 특색 있는 정화 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70~80대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신황마을 참여자들은 주민들의 이용이 잦은 회관 주변의 야외 운동기구를 손수 소독하고 청결하게 닦아내며 ‘생활 보건 환경 정화’에 정성을 쏟았고, 구황마을 참여자들은 클린하우스 배출 시설 주변의 미관을 저해하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수거하고 분리배출 상태를 정비하는 등 ‘마을 환경 미화’에 집중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날 잠시 신축 신황마을회관 앞 정자에 모인 이장과 부녀회장, 그리고 우리동네방역봉사단 참여자들은 정다운 담소를 이어갔다. 마을 이장은 “우리 동네 70~80대 참여자들이 주축이 되어 매주 운동기구를 위생적으로 관리해 주시고, 클린하우스 주변 쓰레기들을 자식 일처럼 말끔히 청소해 주시니 마을 책임자로서 고마움과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광양시니어클럽 반영승 관장은 “참여자들이 고령화된 농촌 마을의 환경과 보건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시다”며, “앞으로도 참여자들께는 보람찬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사회에는 깨끗한 환경을 선물하는 내실 있는 공익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운산의 정기와 황룡의 전설, 그리고 의병의 호국 정신이 도도히 흐르는 진상면 황죽리. 선조들이 피땀으로 지켜온 위대한 땅을, 이제는 70~80대의 연세를 잊고 ‘인생 3막’을 당당하고 아름답게 열어가는 340명의 시니어 파수꾼들이 뜨거운 땀방울로 더욱 청정하게 꽃피우고 있다. 이들의 주황색 조끼가 들녘을 환하게 비추는 한, 광양의 고향 길은 언제나 맑고 건강하게 빛날 것이다.


[구황·신황마을은…] 

진상면 향토지 문헌 자료에 따르면, 구황마을은 무려 540여 년 전인 1480년쯤 남평문씨(南平文氏)가 처음 입촌하여 터를 잡으며 역사가 시작되었다. 마을의 중심에는 백운산 계곡에서 발원한 맑은 물줄기인 ‘성두천(星斗川)’이 흐르고 있다. 이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옛날 ‘성두촌(星斗村)’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두촌에는 흥미로운 예언이 있었다. ‘말(斗) 자가 마을 이름에 들어간 탓에 되로 생각되면 10되, 즉 1말이 넘으면 넘치듯, 마을이 10호가 넘으면 쇠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신비로운 성두촌은 또 다른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마을이 소개(疏開)되면서 주민들이 구황마을 안의 독가촌이나 사랑채로 이주해 들어와 한 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방역 장비를 메고 성두천 변을 정비하던 한 어르신은 “어릴 적 성두촌에서 내려온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았던 기억이 선하다”며, “우리 조상들과 이웃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이 맑은 물길을 우리 손으로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환하게 웃었다.

황룡이 배를 떠받치는 명당우물을 파지 않던 금기와 300년 느티나무

구황과 신황마을의 이름 뒤에는 신비로운 전설이 숨어있다. 옛날 이곳 아래에 신라 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거찰 ‘황룡사(黃龍寺)’가 있었는데, 그 절에 누런 용이 살았다고 하여 마을 이름도 ‘노룡이’, ‘누런이’, 한문식으로 ‘황리(黃里)’라 불렸다. 1789년 문헌인 《호구총수》에도 ‘황리’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유서 깊은 지명이다.

특히 일설에 의하면 이 지역은 ‘황룡부주(黃龍浮舟)’의 명당, 즉 ‘황룡이 배를 떠밀고 띄우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배에 구멍을 내면 배가 가라앉듯이, 마을에 우물을 파면 명당의 기운이 깨지고 마을이 가라앉는다는 풍수적 믿음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주민들은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는 엄격한 금기를 지키며 살기도 했다. 이후 황리 남쪽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나 ‘신황(新黃)’이라 불자, 원래 있던 곳은 자연스럽게 ‘구황(舊黃)’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신황마을 입구에 서자 수령 300년이 넘은 거대한 느티나무 보호수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마을의 흥망성쇠와 주민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봐 온 이 느티나무와 새로 지어진 마을회관들은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마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의병의 호국 정신이 깃든 생쇠골, 이제는 광양제철소의 생명수원으로

마을 위쪽 해발 450m 고지대에는 ‘생쇠골 야철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908년 전후 광양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으고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운 황순모·황병학 의병부대가 은거하며 철제 무기를 제조했던 호국의 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 쇠를 벼리며 일어났던 선조들의 뜨거운 의병 정신이 이 마을의 깊은 유전자(DNA)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산자수명한 깊은 계곡의 성두천 맑은 물은 하류로 흘러 1974년에 계획된 수어호에 합수되었다. 그리고 이 물은 1981년 광양만에 입지를 확정한 세계 최대 규모의 광양제철소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주변 시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의 근원지’가 되었다. 과거 의병들이 무기를 만들던 철(鐵)의 고을이, 이제는 대한민국 산업의 쌀을 만드는 광양제철소의 든든한 탯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