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강이 바다에 엎드려 숨을 고르는 곳
오백 리를 숨 가쁘게 달려온 섬진강 물길이 남해의 너른 품에 안기기 직전, 그 물길이 잠시 숨을 고르는 지점에 문지기처럼 오뚝 서 있는 작은 바위섬 하나가 있습니다. 면적 0.9㏊, 최고 높이 해발 약 25m의 아담한 규모를 가진 전라남도 광양시 유일의 섬, ‘배알도(拜謁島)’입니다.
배알도는 ‘시작’과 ‘끝’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 섬은 550리(216㎞)를 달려온 섬진강이 긴 여정을 마치는 마침표의 공간인 동시에, 남해의 푸른 바다가 비로소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민물과 썰물이 교차하고, 영남의 지리산 자락과 호남의 백운산 자락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 경계의 중심에서, 배알도는 오랜 세월 동안 광양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백성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봐 왔습니다.
배알도의 이름에 담긴 인문학과 겸비의 미학
본래 배알도는 오래된 대동여지도 등의 문헌에 뱀이 기어가는 모양을 닮았다 하여 ‘사도(蛇島)’라는 투박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작은 섬이 ‘배알(拜謁)’이라는 깊은 인문학적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흥미로운 풍수지리설이 전해집니다.
섬 맞은편 망덕리 외망마을 정면에 솟은 망덕산(望德山)의 정상이 마치 임금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는 ‘천자배알형(天子拜謁形)’의 명당인데, 강 하구에 홀로 선 이 작은 섬이 마치 그 망덕산을 향해 조아리며 임금을 알현하는 신하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알’이란 신하가 임금을 뵙거나 낮은 이가 높은 이를 찾아가 예를 표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도드라지게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품어준 큰 산과 거대한 바다를 향해 먼저 고개를 숙이는 이 섬의 형태는 동양적 겸손과 겸비(兼備)의 미학이 무엇인지 침묵으로 웅변합니다.
풍류를 즐기던 옛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머물던 이 섬의 정상에 오르면 1940년대 당시 진월면장이었던 안상선 선생이 건립한 정자인 ‘해운정(海雲亭)’을 만나게 됩니다. 사방으로 뜨고 지는 해와 강물을 품을 수 있는 이곳에는 과거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쓴 친필 휘호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1959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사라호’로 인해 정자가 무너지면서 현판은 소실되었지만, 나라를 사랑했던 큰 정치가의 발자취와 역사적 사연은 여전히 이 고즈넉한 정자 주변을 깊게 감싸고 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수변공원으로- ‘치유의 섬’
배알도는 광양 사람들에게 가슴 시린 추억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1940년대 해운정이 세겨진 이후 주민들이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망덕리 해수욕장’으로 불렸고, 이후 백사장이 줄어들어 1970년에 잠시 폐장했다가 1990년 ‘배알도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은빛 모래사장은 한때 광양 시민들의 여름을 책임지던 가장 화려한 휴양지였습니다.
그러나 광양제철소 건설과 주변 해안선의 지형 변화로 인해 고운 모래가 점차 유실되면서 배알도는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한때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이 용도를 잃어버리고 외로운 무인도로 남겨지는 ‘상실의 시기’를 통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광양시는 이 상처 입은 섬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자연이 준 상처를 다정한 인공의 지혜로 보듬어,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진 ‘배알도 수변공원’과 섬 전체를 아우르는 친환경 ‘배알도 섬 정원’으로 멋지게 탈바꿈시켰습니다. 154㎞에 달하는 국토종주 섬진강 자전거길의 종착점이자 시작점, 그리고 자동차 야영장이 들어서며 전국 여행객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이 섬에 수변공원과 배알도를 잇는 ‘해맞이다리(길이 295m)’와 배알도에서 망덕포구를 연결하는 ‘별헤는다리(길이 275m)’가 차례로 놓이면서, 이제는 누구나 두 발로 강과 바다 위를 걸어 부드럽게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린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독립을 지켜낸 역사의 무대, 망덕포구와 윤동주의 별빛
배알도 섬 정원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바위 곳곳에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독특한 지형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닷바람과 염분이 오랜 시간 바위를 깎아내 만든 해안 침식 지형, 즉 ‘타포니(Tafoni)’입니다. 이 신비로운 바위들을 지나 해상보도교인 ‘별헤는다리’를 건너면 섬진강 물길이 전라좌수영의 주둔지이자 배를 만들던 선소(船所)였던 역사 공간, ‘망덕포구’로 이어집니다.
망덕포구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숨결이 서린 절개와 문학의 공간입니다. 다리에서 내려 10분 남짓 걸어가면 국가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된 ‘정병욱 가옥’에 닿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윤동주 시인이 주옥같은 시들을 쓰고도 끝내 출간하지 못한 채 일본으로 떠나며 친한 친구인 정병욱 선생에게 맡겼던 친필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바로 이곳 마루 밑 옹기 항아리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정병욱 선생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지켜낸 이 원고 덕분에, 윤동주의 시 정신은 마침내 해방 후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배알도와 망덕포구는 윤동주와 정병욱의 100년 우정을 기리는 거대한 문학의 정원이 되었습니다. 밤이 되면 매일 밤 11시까지 배알도와 다리를 밝히는 1,605개의 은은한 조명이 마치 윤동주의 시 구절처럼 밤바다 위로 별빛처럼 흐릅니다. 가옥 인근의 ‘윤동주 시 정원’에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을 비롯한 유고집 수록 시 31편 전편이 시비로 세워져 있어, 시니어 독자들에게 학창 시절의 낭만과 뜨거운 애국의 역사를 동시에 전해줍니다.


다시 서는 섬, 다시 피어나는 우리네 삶
배알도는 이제 더 이상 수영복을 입고 뛰어들던 시끄러운 옛날의 유원지가 아닙니다. 사방으로 탁 트인 보도교를 걸으며 강과 바다의 숨소리를 듣고, 폭신한 낙엽과 야생화가 철 따라 피어나는 둘레길을 걸으며 사유하는 ‘명상과 치유의 공간’입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고, 전라도 광양과 경상도 하동이 눈앞에서 다정하게 어우러지는 통합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망덕포구 횟집거리에 들러 거친 물살을 이겨내 육질이 탄탄한 고소한 가을 전어회나 담백한 재첩국 한 그릇으로 여정을 마무리하다 보면 문득 깊은 위로가 찾아옵니다. 모래를 잃어버렸던 상실의 상처를 푸른 소나무의 정원과 아름다운 곡선의 다리로 치유해 낸 배알도의 모습은, 격동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상실을 경험하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일구어온 우리 시니어 세대의 삶과 참 많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비로소 더 깊은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지혜를 섬은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배알도 다리 위에서 광양제철소의 불빛을 배경으로 고기잡이배가 통통 떠다니는 고즈넉한 일몰을라보며, 우리 마음속에 아직 내려놓지 못한 오만이 있다면 저 망덕산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여봅니다. 강이 자신을 비워 바다가 되듯, 그렇게 우리 안의 푸른 여정도 깊어갑니다.
다음 회에는 배알도 앞바다를 지나,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숨결이 서린 역사적 해전의 무대이자 오늘날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는 ‘광양만과 이순신대교의 웅장한 이야기’ 가 이어집니다.

![[길 위의 광양사(史) 제4부 광양의 자연] ㉜ 섬진강, 우리네 삶 키워낸 푸른 젖줄](https://gy-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6/선진강-두꺼비-1-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