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폐선 부지에서 전남 문화·예술 거점으로
지난 제27회에서 민초들의 삶이 요동치던 광양 오일장을 둘러봤다면, 이번 제28회는 근대 광양의 인적·물적 자원이 모여들던 교통과 산업의 대동맥, ‘구 광양역(舊 光陽驛)’ 부지로 향한다. 한때 무거운 석탄과 철강, 보따리를 짊어진 민초들의 애환을 실어 나르던 옛 광양역은, 이제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복합 문화와 시각 예술의 중심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철길이 걷힌 자리에 들어선 세련된 통유리 외관의 전남도립미술관과, 낡은 폐창고의 목재 트러스를 품은 채 시민들의 온실이 되어준 광양예술창고가 그 주인공이다. 차갑고 거칠었던 근대 산업유산이 어떻게 도민의 심미적 갈증을 채우는 문화의 심장부로 부활했는지, 그 반전의 궤적을 복원해 본다.


경전선 보통역에서 국가 산업 물류의 거점으로
옛 광양역은 1967년 2월 9일,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광양읍 인동리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광양역은 개역 당시 소박한 지방 역이었으나, 순천과 목포, 영남 지역을 연결하는 남부 교통의 요충지로 급부상했다.
1987년 9월에는 늘어나는 화물과 여객을 수용하고자 역사를 대대적으로 증개축했다. 특히 광양제철소의 가동과 맞물려 광양제철선(광양역~태금역)이 완공되면서 위상이 급격히 격상되었다. 역 내부에는 거대한 화물 홈과 야적장이 들어섰고, 철강 제품과 원자재를 실은 화물 열차가 쉴 새 없이 선로를 오갔다. 당시 발행된 광양역 공식 기념 스탬프 속 광양제철소 실루엣은 이 역이 대한민국 중화학 공업화의 중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심장이었음을 직관적으로 증명한다.


신 광양역으로의 이전과 시니어 일자리의 온기
경전선 복선화 사업과 도심 물동량 증가는 광양역의 운명을 바꾸었다. 소음 문제와 지역 단절을 해소하고 효율적인 물류 수송을 위해 외곽 이전이 결정되면서, 2011년 5월 광양역은 광양읍 해광로(도월리)의 신축 역사로 거처를 옮겼다.
새롭게 문을 연 신 광양역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정겨운 풍경이 있다. 바로 연두색 조끼를 입고 여행객을 맞이하는 광양시니어클럽 일자리 참여자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낯선 길을 찾는 이들에게 기차 시간과 디지털 키오스크 사용법을 친절히 안내하며 역사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계신다. 청춘 시절 열차에 몸을 싣고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향했던 시니어 세대가, 이제는 백발의 미소로 고향의 관문을 지키며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는 모습은 신 광양역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편, 중심지에서 밀려난 옛 인동리 역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채 단층 역사가 철거되고 플랫폼에는 잡풀이 무성해졌다. 반세기 가까이 민초들의 웃음과 눈물을 버텨내던 철길이 끊겼을 때 많은 시민은 쓸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고독한 부지는 완전히 소멸하는 대신, 문화라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품기 위해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전남도립미술관과 광양예술창고, 예술로 피어난 산업유산
지방자치단체의 창의적인 도시재생 안목 덕분에 옛 광양역 부지는 2021년 3월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폐역 터 위에 건립된 전남도립미술관은 서남권 최고의 시각예술 거점으로 우뚝 섰다. 과거 기차가 승객들을 실어나르던 자리에 이제는 예술 작품들이 들어서 사람들의 영혼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고 수준의 설비를 갖춘 전시장 내부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등 국내외 유명 거장들의 전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으며,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은 과거 차가운 철강이 지배하던 공간을 온화한 예술의 정취로 가득 채우고 있다.
미술관 바로 곁에는 옛 광양역의 역사를 날것 그대로 보존한 ‘광양예술창고’가 있다. 1967년 건립되어 양곡과 화물을 보관하던 폐창고를 리모델링해 아늑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한 곳이다. 이곳의 가장 큰 가치는 건축물의 뼈대인 목재 트러스 구조를 그대로 노출시켜 60여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했다는 점이다. 내부에는 미디어아트 영상실, 카페테리아, 문화 강좌실 등이 알차게 갖춰져 있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가 옛 창고의 나무 기둥을 만지며 과거와 미래가 교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시니어 기자의 시선, 철길은 걷혔어도 정신은 달린다
잡풀만 무성하던 옛 역전 터가 찬란한 예술의 전당으로 부활한 모습을 보며 기자는 우리 시니어 세대가 걸어온 격동의 세월을 반추해 본다. 우리에게 기차역은 단순히 차를 타는 곳이 아니었다. 가난했던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무작정 상경하던 눈물의 플랫폼이었고, 군 입대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통곡하던 이별의 광장이었으며, 산업화의 역군들이 공장으로 향하던 삶의 시발점이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철길은 철거되었지만, 그 자리에 들어선 미술관과 예술창고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 오히려 1967년의 목재 트러스를 당당히 드러내며 과거의 노동과 오늘날의 예술을 하나의 궤도로 연결해 놓았다. 차가운 철강을 실어 나르던 철길 위에서 이제는 마음을 치유하는 예술의 에너지가 달린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음을 미술관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증명해 준다.
마치며, 은은한 묵향(墨香)으로 피어난 철길의 기억
1967년 첫 기적 소리를 울렸던 옛 광양역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매캐한 연기 대신 은은한 문화의 묵향을 뿜어내는 안식처로 귀환했다. 쓸모를 다해 버려진 폐선 부지를 문화예술의 심장부로 되살려낸 대전환은 대한민국 도시재생의 위대한 이정표다. 철길은 걷혔어도 그들이 달렸던 소통과 연결의 정신은 이제 예술이라는 이름의 전동차가 되어 미래 세대의 영혼을 향해 끝없이 달려갈 것이다.
[다음 제29회 예고]
다음 제29회에서 우리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 인재 양성의 요람이자 근대 교육의 살아있는 출발점이 되어준 ‘광양서초등학교’를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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