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 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바다가 시작되고 역사가 들어온 관문
광양의 지도를 펼쳐보면 섬진강의 굽이진 물줄기가 남해의 푸른 바다와 몸을 섞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망덕포구입니다. 이곳은 예부터 강과 바다를 잇는 천혜의 포구이자,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던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과거 하동, 노량, 부산을 오가던 화물선과 사람들의 통로였으며, 섬진강을 거슬러 구례와 곡성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할 근대의 망덕포구는 그저 평화로운 어촌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제3부 ‘근대의 기억들’의 첫 여정으로 망덕포구를 선택한 이유는 이곳이 광양에서 근대라는 낯설고도 아픈 파도가 가장 먼저 밀려들었던 ‘역사의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비릿한 바다 내음 속에 숨겨진 수탈의 상흔과 그 파고를 온몸으로 막아섰던 항일의 기록들을 따라가 봅니다.

수탈의 전초기지, 빼앗긴 풍요의 현장
일제강점기, 망덕포구는 일제에게 아주 매력적인 ‘수탈의 거점’이었습니다. 광양 전역에서 거두어들인 곡물과 초남 등지에서 채굴된 금과 철이 이곳 망덕포구를 통해 일본으로 실려 나갔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포구 주변에 대규모 정미소와 창고를 세우고, 우리 민초들의 땀방울이 서린 결실들을 배에 실었습니다.
특히 망덕포구는 섬진강의 풍부한 수산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전진기지였습니다. 일제는 섬진강 하구의 태인도와 금호도 갯벌에 수산시험장을 설치하고, 선진 양식 기술을 보급한다는 명목 하에 해태(김) 양식을 장려하여 이를 일본으로 대거 반출했습니다. 구마모토와 히로시마 등지에서 건너온 일본 어선들은 뱀장어, 농어, 가오리, 대합 등을 무분별하게 포획하여 가져가는 수탈의 통로로 이곳을 이용했습니다.
풍요로워야 할 포구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민족의 배고픔이 시작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포구 곳곳에 남아있는 적산가옥과 근대 건축의 흔적들은 당시의 화려했던 상업 중심지로서의 모습 뒤에 가려진, 빼앗긴 자들의 깊은 한숨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항일의 파도가 치던 저항의 바다
그러나 망덕포구는 단순히 당하고만 있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수탈이 거세질수록 그에 맞서는 저항의 불꽃도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포구의 지형적 특성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은신처이자 외부와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병학 의병부대의 투쟁입니다. 1908년 여름, 황병학(1876~1931)은 농민과 산포수 등 200여 명을 모집하여 백운산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망덕에 이주하여 한국의 어장을 침탈한 일본 어민과 잡화상 등을 공격하여 처단하였습니다. 특히 1908년 9월의 망덕포전투는 일본의 경제적 침탈을 저지하기 위한 의병부대의 대표적인 항일 투쟁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망덕포구는 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공간이기도 합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육필 원고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이곳 정병욱 가옥 마루 밑 항아리에 보관되었습니다. 이는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저항하여 우리 문학의 정수를 지켜낸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뱃길이 역설적으로 독립을 향한 희망의 통로가 되었던 셈입니다.

시니어 기자의 시선, 포구에 남겨진 ‘기억의 닻‘을 올리며
망덕포구의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화려하게 정비된 횟집 거리와 관광객들의 활기 속에 문득문득 멈춰 선 시간들이 보입니다. 오래된 창고의 벽면과 낡은 부두의 잔해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곳이 어떤 눈물을 머금고 있는지 기억하느냐”고 말입니다.
우리 시니어들에게 망덕은 어린 시절 전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던 추억의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이면 전어 축제가 열리고, 벚꽃 필 무렵이면 벚굴의 달큰한 풍미가 입맛을 돋우는 이곳은 늘 정겨운 고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자로서 다시 본 망덕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근대사의 ‘첫 페이지’였습니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역사만이 미래를 향해 항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망덕포구는 과거의 상흔을 넘어, ‘윤동주 별빛 아일랜드’ 조성 사업이나 ‘아트케이션 관광스테이’ 등 새로운 문화 관광 명소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망덕포구에 내린 ‘수탈의 닻’은 거두고, 이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닻’을 올려야 할 때입니다.
진월면의 바람 속에 섞여오는 선조들의 치열했던 숨결을 느끼며 비로소 근대의 문을 열어젖힙니다.

마치며,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망덕포구의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출렁입니다. 수탈의 배가 떠난 자리에 이제는 평화로운 어선들이 머물고 있지만, 그 물결 아래 잠긴 근대의 기억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망덕포구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 위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현재라고 말입니다.
[다음 제22회 예고]
망덕포구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나지막한 가옥 한 채가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시인 윤동주의 유고를 목숨 걸고 지켜낸 아름다운 우정의 공간, ‘정병욱 가옥’에서 우리 문학사의 가장 찬란한 유산을 만나봅니다.
[망덕포구 주변]
망덕포구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171
볼거리: 윤동주 유고 보존가옥, 배알도 수변공원, 짐라인 체험, 진월 조선수군지 선소기념관,
먹거리: 전어 요리, 재첩 요리, 강굴(벚굴), 도다리 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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