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진상면 신전마을 안길에서 한 어르신이 철제 일반 그레이팅(배수로 덮개) 위를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위태롭게 내려오고 있다. 굽이진 경사로에 설치된 매끄러운 철판은 고령 주민들의 통행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지적돼 왔다. 이에 대해 광양시 관계자는 "올해 우기 전까지 주요 지점의 그레이팅을 논슬립 제품으로 교체하고, 나머지 구간은 복개하여 보행 환경을 개선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진=신전마을 이장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 신전마을 안길. 굽이진 경사로를 따라 설치된 폭 80cm의 철제 그레이팅(배수로 덮개)은 지난 2003년 태풍 ‘매미’와 2004년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발생한 산사태 이후, 2005년 대대적인 수해 복구 사업을 통해 마련된 시설이다. 당시 산사태 방지를 위해 물길을 잡는 데는 성과를 거두었을지 모르나, 20년이 흐른 지금 이 미끄러운 철제 구조물은 고령 어르신들의 보행권을 위태롭게 위협하는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현장에서 마주한 어르신들의 이동은 아슬아슬함의 연속으로 보였다. 보행 보조기(유모차)를 꽉 쥔 어르신들은 경사로 그레이팅 위에서 바퀴가 헛돌거나 미끄러질 때마다 큰 불안감을 호소했다. “비라도 오는 날엔 집 밖으로 나올 엄두가 안 난다”는 탄식은 주민들에겐 이미 일상화된 고통이다. 안전관리의 ‘하인리히 법칙(1:29:300)’에 비추어 볼 때, 주민들이 매일 겪는 수많은 미끄러짐과 불안은 사고 직전 엄중한 경고등이나 다름없다. 행정이 주민들의 작은 불안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2005년 당시 공사는 오로지 ‘배수 효율’에만 치중했다. 경사로를 상시 통행하는 ‘사람의 보행 안전’에 대한 위험성 평가가 충분치 못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더욱이 마을 간 사업 순번이나 예산 우선순위 등에 밀려 신전마을의 시급한 위험 요소가 그간 행정의 사각지대에서 외면받았다.

본 기자의 취재와 주민들의 호소가 이어지자 광양시 해당 부서는 즉각적인 현장 점검에 나섰다. 광양시 관계자는 “빗물 집수정 역할을 하는 주요 지점은 ‘논슬립 그레이팅’으로 교체하고, 그 외 구간은 복개하여 도로와 평탄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3월 말 민원 접수 이후 사안의 시급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시와 면의 예산을 병행 검토하여 가용 재원을 확보하고, 올해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주민들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정비를 마무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단순한 시설 보수를 넘어 ‘불필요 구간 복개’라는 전향적인 대안을 제시한 광양시의 태도는 고무적이다. 이는 행정이 시민의 목소리에서 실질적인 해법을 찾으려 노력한 바람직한 변화로 평가할 만하다.

이제 남은 것은 신속하고 꼼꼼한 이행이다. 안전은 예산의 순번이 아니라 위험의 시급성에 따라야 한다. 20년 전 산사태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신전마을 어르신들에게 이번 정비는 단순한 공사를 넘어 ‘안전한 일상’을 되찾아 주는 일이다. 다가올 우기 전, 어르신들이 보행보조차를 끌고 웃으며 마실 나갈 수 있는 안길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