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마을의 삶터에서 문화의 품격으로, 광양의 숨결을 잇다
지난 회차까지 본지는 [길 위의 광양사(史)] 제5부 ‘광양의 마을’ 시리즈를 통해 광양읍 교촌마을부터 섬진강 변 섬진마을, 옥룡 양산마을, 진상 어치마을, 태인 장내마을, 중마동 마흘마을, 진월 차동마을, 그리고 봉강면 지곡리 지실마을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고을고을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터와 정겨운 마을 서사를 충실히 담아왔다. 수백 년 보호수 아래서 피어난 당산제와 마동저수지의 옛 추억, 선비 정신이 스며든 전통 한옥과 한지 빚던 골목길마다 새겨진 우리 이웃들의 생생한 숨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적 자산이었다.
이제 그 깊고 풍성했던 마을 탐방의 여정을 넘어, 새롭게 제6부 ‘광양의 문화’의 첫 문을 연다. 광양의 문화 편을 열며 본지가 가장 먼저 조명하고자 하는 자산은 바로 이 땅의 대표적인 맛이자 독보적인 식문화 기호인 ‘광양불고기’이다.
흔히 음식이라 하면 허기를 채우는 생계의 수단이나 일상의 식도락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광양불고기는 단순한 맛집의 별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광양이라는 도시의 기후와 토양, 참숯을 구워내던 산자락의 지혜, 그리고 유배객마저 따뜻하게 품어 안았던 호남의 넉넉한 인심이 겹겹이 쌓여 완성된 훌륭한 ‘인문(人文)의 유산’이다. 붉게 피어오르는 참숯불과 가느다란 구리 석쇠를 사이에 두고 피어난 광양불고기의 역사적 궤적과 문화적 깊이를 함께 짚어본다.

붉은 빛깔의 신선한 소고기를 얇게 여며 즉석에서 양념한 광양불고기를 참숯 화로 위 구이판에 올리기 직전의 모습. 백운산 참숯의 강한 화력과 구릿빛 석쇠 위에서 구워내는 광양불고기 특유의 전통 조리 방식이 돋보인다. 사진=문성식
- ‘마로화적(馬老火炙)’—선비의 외로움을 녹여낸 보은의 온기
광양불고기의 유래를 찾아 역사적 문헌과 구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시대 남도 끝자락에 위치했던 광양(옛 지명 마로·희양)의 깊은 서정과 마주하게 된다. 수려한 백운산과 맑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광양은 예로부터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단골 유배지 중 하나였다. 정쟁에서 밀려나 고단한 유배길에 올랐던 선비들에게 타향에서의 삶은 외롭고 쓸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선비들은 광양읍성 밖의 어린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고 학문을 전하며 시름을 달랬다.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유래에 따르면, 글을 배우던 성밖 아이들의 부모가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마을의 연한 암소를 잡았다. 놋화로에 백운산 참나무로 만든 참숯을 피우고 구리 석쇠 위에 얇게 저민 소고기를 살짝 구워 선비에게 대접했다.
훗날 귀양이 풀려 관직에 복귀하여 한양으로 돌아간 선비는 대궐의 성대한 연회 자리에서도 그때 광양에서 맛보았던 불고기 맛을 잊지 못해 한탄하듯 탄성을 내뱉었다고 전해진다.
“天下一味 馬老火炙 (천하일미 마로화적)”
‘이 세상 최고의 맛은 광양(마로)의 숯불고기로다.’
이 문장은 단순한 식도락의 평가를 넘어선다. 절망적이었던 유배지에서 백성들이 전해준 참된 인정(人情)과 보은의 온기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이처럼 광양불고기는 시작부터 타인을 향한 따스한 배려와 스승과 제자 사이에 흐르던 온화한 남도의 정서가 녹아 있는 문화적 산물이었다.

광양읍 서천변 광양불고기특화거리 입구에 설치된 황소 동상. 늠름한 자태의 황소 조형물 뒤로 서천변의 수목과 붉은 튤립 형태의 상징탑, 푸른 가을하늘이 어우러져 광양의 대표 식문화 거리를 선명하게 상징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 전통의 직화(直火) 철학—한국 불고기 지형도 속 광양의 독창성
한국의 불고기 역사는 고구려의 ‘맥적(貊炙)’에서 시작하여 고려의 ‘설야멱(雪夜覓)’, 조선 궁중의 ‘너비아니’로 이어지는 오랜 맥락을 계승하고 있다. 현대 한식 문화에서 소불고기는 크게 서울식, 언양식, 광양식의 세 가지 고유한 형태로 정립되었다. 이들 중 광양불고기는 조리 철학과 미학적 관점에서 가장 전통적인 직화구이의 원형을 바르게 보존하고 있다.
∙ 서울식 불고기: 볼록한 전골판 위에서 고기와 버섯, 당면 등을 육수와 함께 자작하게 끓여내듯 익히는 형태다. 1960년대 이후 스키야키 조리법의 영향과 결합해 대중화된 육수 불고기다.
∙ 언양식 불고기: 고기와 양념, 채소를 잘게 썰거나 치대어 떡갈비처럼 납작한 형태로 다듬은 뒤 석쇠 사이에서 덩어리째 바짝 구워내는 형태다.
∙ 광양식 불고기: 국물이나 부재료를 일절 첨가하지 않고 오직 소고기 본연의 텍스처에 집중한다. 손님이 주문하는 그 순간 얇고 넓적하게 저민 생고기에 간장, 소금, 참기름, 마늘 등의 최소한의 양념을 가볍게 무쳐내어 숯불 직화로 구워낸다.
광양불고기가 갖는 결정적 차별성은 바로 ‘미리 재워두지 않는다’는 즉석 조리 방식에 있다. 고기를 양념에 오래 재워두면 수분과 육즙이 빠져나가 고기 고유의 식감이 물러지고 양념 맛만 강해지기 마련이다. 반면 광양 방식은 주문 직후 얇게 썰어 즉석에서 양념을 가볍게 입힌다. 이는 원재료인 소고기의 신선도와 질감에 대한 완벽한 자부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기술이다.
불 위에 올라가는 순간, 얇은 살코기 사이로 스며드는 최소한의 양념과 백운산 참숯의 은은한 향이 결합하여 씹을 필요도 없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육질의 미학을 완성한다.

은은한 조명이 켜진 해질녘 광양읍 서천변 불고기특화거리의 모습. ‘삼대광양불고기집’ 등 수십 년 전통을 이어온 전문 상가들이 밀집해 있으며, 광양불고기의 깊은 맛을 즐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방문객과 식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문성식
- 백운산 참숯, 놋화로, 구리 석쇠—불과 열을 다루는 향토 기물의 연금술
광양불고기가 완성되는 조리 과정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남도의 풍토와 전통 공예가 어우러진 정교한 기물(器物)의 조합이다. 광양 사람들은 불과 열을 다루는 데 있어 매우 섬세한 지혜를 발전시켜 왔다.
| 향토 기물 | 문화적·물리적 연동 역할 |
| 백운산 참나무 숯 | 광양의 모산(母山)인 백운산 자락 참나무로 구워낸 참숯은 화력이 일정하고 잡내가 없어 깊고 은은한 참숯 향을 고기에 자연스럽게 훈연시킨다. |
| 놋쇠(황동) 화로 | 열전도율과 열보존율이 뛰어난 전통 놋화로는 참숯의 열기가 외부로 불필요하게 방출되는 것을 막아 숯불의 잔열까지 일정하게 모아준다. |
| 구리 석쇠 | 가느다란 구리선으로 엮어 만든 석쇠는 구리의 탁월한 열전도성을 활용해 얇은 고기가 닿는 순간 겉면을 빠르게 익혀 내부 육즙을 완벽히 가둔다. |
이 세 가지 요소는 화로 위에서 완벽하게 상호작용한다. 얇게 저민 고기를 구리 석쇠 위에 펼쳐놓으면, 열기가 고기 표면의 양념을 순간적으로 코팅하면서 육즙을 안에 꽉 묶어둔다. 고기를 자주 뒤집지 않고 붉은 핏기만 가실 무렵 살짝 익혀 먹는 방식은 숯불을 다루어 온 광양 사람들의 오랜 생활 노하우가 빚어낸 결실이다.
- 장터의 숯불에서 도시의 아이콘으로—대중화와 환대의 식문화
조선 시대 설화로 전해지던 ‘마로화적’이 현대적 대중문화로 형태를 갖춘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광양 오일장 주변이었다. 장터 한쪽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팔던 선각자들의 손길을 거치며 광양불고기는 장터 사람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6·25 전쟁 이후 식량이 부족했던 1950~60년대에는 광양 시내 정육점 주변으로 모여든 이들이 비교적 저렴한 부위를 얇게 썰어 참숯불에 구워 나누어 먹던 공동체적 나눔의 매개체이기도 했다.
이후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광양불고기는 본격적인 전문 식당의 메뉴로 정립되었고, 정부의 관광 자원화 정책 및 도로망 확충과 맞물려 외지인들과 해외 관광객들에게까지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1980년대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건립과 광양항 개항으로 도시가 비약적으로 도약하면서, 광양불고기는 광양을 찾아오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최상위 환대(Hospitality) 문화로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오늘날 광양 사람들에게 불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선다. 기쁜 일이 있거나 먼 곳에서 소중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화로 둘레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석쇠 위 고기를 올리고 익어가는 시간을 함께 나누는 ‘소통과 환대의 의식’인 것이다.

불고기를 모두 구워 먹은 뒤 남은 참숯 화로 위에 양은냄비를 올려 자작하게 끓여내는 광양 특유의 후식국. 남은 고기와 반찬, 파절이, 마늘 등을 넣고 밥과 함께 끓여내어 고소하면서도 칼칼한 감칠맛으로 깔끔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사진=문성식
- ‘빨간국’—비움 끝에 찾아오는 나눔과 절정의 식문화
광양불고기 문화의 진면목은 고기를 다 구워 먹은 뒤에 시작되는 마지막 수순, 이른바 ‘빨간국’에서 완성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고기를 먹은 후 식사로 냉면이나 일반 된장찌개를 곁들이지만, 광양에서는 숯불이 잔잔하게 남은 놋화로 위에 작은 냄비를 올린다. 그리고 석쇠 위에 남은 불고기 몇 점과 차림상에 차려졌던 파절이, 남은 마늘, 청양고추, 김치를 냄비에 한데 넣고 잘 익은 김치 국물을 부어 즉석에서 팔팔 끓여낸다.
| 광양불고기 식문화의 서사적 흐름 | ||
| [1. 참숯·놋화로 준비] 백운산 참숯의 온기 | [2. 즉석 양념 & 구리석쇠 구이] 육즙을 가두는 직화의 미학 | [3. 화로 위 ‘빨간국‘ 완성] 남김없이 아우르는 나눔의 식문화 |
이 ‘빨간국’은 단순한 후식 찌개가 아니다. 고기의 기름진 맛을 시원하고 칼칼하게 잡아주는 기능적 역할은 물론, 식탁 위에 남은 재료들을 하나로 아울러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남도 음식문화의 지혜가 담겨 있다. 잔불의 온기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빨간국을 나눠 먹으며 손님과 주인은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식사를 마치게 된다. 남김없이 아우르고 나누는 이 고유의 피날레는 광양불고기가 가진 인문학적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푸른 잔디밭과 산책로가 시원하게 펼쳐진 서천변 공원과 우측의 광양불고기특화거리 상징 조형물이 어우러진 풍경. 매년 가을 이곳 서천변 일원에서는 지역 대표 축제인 ‘광양숯불구이축제’가 열려 수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숯불구이의 맛과 남도의 문화를 함께 즐긴다. 사진=문성식
도시의 유산, 미래를 향해 피어나는 숯불 향기
오늘날 광양읍 서천 변을 따라 길게 조성된 ‘광양불고기 특화거리’에는 밤마다 나지막하게 피어오르는 참숯 연기와 구수한 불고기 향이 거리를 메운다. 매년 열리는 ‘광양전통숯불구이축제’ 역시 지역 주민과 전국의 방문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광양의 대표적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과거 유배객의 쓸쓸함을 달래주던 시골 마을 부부의 따뜻한 보은에서 시작된 조그만 화로 불빛은, 시대를 거쳐 장터의 활기가 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미식 문화유산으로 피어났다.
광양불고기는 단순한 맛의 영역을 넘어선 도시의 자산이다. 백운산이 품어낸 자연의 산물과 불을 다루어 온 민초들의 지혜, 그리고 타인을 따뜻하게 대접하고자 했던 광양 사람들의 마음이 오랜 시간 겹겹이 쌓여 완성된 ‘광양의 정체성이자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붉은 열기 속에는, 오늘도 변함없이 따스하게 흐르는 광양의 시간이 깊게 숨 쉬고 있다.
[다음 52회 예고]
‘광양의 문화’ 두 번째 이야기인 제52회에서는 광양의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광양의 전통주’를 조명합니다.
백운산의 맑은 옥수와 전국 최고 품질의 광양 매실, 우리 쌀이 어우러진 광양의 술은 이 땅의 풍토를 담아낸 예술입니다. 청정한 대나무술부터 매화 향을 머금은 매실 막걸리와 복분자주, 토종 쌀·누룩의 남도 탁주, 그리고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전통 증류주까지—장인의 정성으로 피어난 광양 전통주의 깊은 맛과 인문학적 이야기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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