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자연휴양림 입구 전경. 거대한 표석 너머로 울창하게 펼쳐진 초록빛 숲길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백두대간의 원시림, 피로한 영혼을 품는 생명의 요람

백운산 자락에 깃든 초록빛 치유의 성지

호남정맥의 최고봉이자 광양의 거대한 젖줄인 백운산(1,218m). 그 울창하고 묵직한 품속에 자리 잡은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문명의 소음을 잠재우고 오롯이 자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생명의 요람이다.

억척스러운 삶을 일구어온 민초들의 땀방울이 당산나무 아래 쉼터를 이루었듯, 현대의 고단한 삶과 세파에 지친 이들에게 백운산 휴양림은 거대한 초록빛 안식처가 되어 준다. 120ha가 넘는 광활한 산림 속에 삼나무와 편백나무, 소나무와 참나무 등 온갖 기목(奇木)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서 내뿜는 피톤치드는 가슴 깊은 곳까지 맑게 씻어내린다.

이 숲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휴양지가 아니다. 백운산의 깊은 골짜기가 품어낸 수많은 수종과 생태계는, 태고의 자연을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생과 생명의 존엄성을 무언으로 일깨워주는 거대한 인문학적 공간이다.

취재를 위해 찾은 7월 하순의 폭염 속에서도 숲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흐르던 땀방울이 단숨에 식어내렸다. 관리 출입구를 지나 느린 걸음으로 경내에 들어서니, 천년의 세월을 벼러온 청정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일상의 번뇌를 까마득히 잊게 만들었다. 연간 15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찾아와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이유를 비로소 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광양 백운산 자연휴양림 주요 개요 

• 위치 및 입지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백계로 337 (해발 500m 지점)
• 주요 수종편백나무, 삼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사계절 초화류 등
• 문화·생태적 성격국가지정 산림치유 및 생태휴양 공간, 옥룡사지와 연계된 역사·생태 거점
• 핵심 인프라숲속의 집, 캐빈하우스, 치유의 숲 센터, 황톳길, 목재문화체험장, 캠핑장
• 이용 정보입장료 무료 (주차료 소형 3,000원), 문의: 061-797-2655
백운산 자연휴양림 산림박물관 전경. 다양한 산림 생태 자료를 전시 중인 박물관 앞으로 어린이 견학 버스가 들어서며 생태 학습장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울창하게 우거진 백운산 자연휴양림 삼나무·편백나무 숲.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고목들이 짙은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방문객들에게 쉼과 치유를 선사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폭염을 뚫고 거닌 초록빛 쉼터의 현장 이모저모

기자는 이번 ‘길 위의 광양사’ 취재를 위해 7월 하순의 매서운 폭염 속에서 백운산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경내를 둘러보았다. 한여름의 가마솥더위로 몸은 다소 고되었으나, 오랜만에 자연과 호흡하며 운동 삼아 즐거운 마음으로 숲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산림박물관과 식물생태숲이었다. 친절한 직원 안내를 받아 내부 전시물을 관람하는데, 마침 인근 유치원에서 온 어린 원아들과 부모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견학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우며 생기를 더했다. 63만㎡ 규모의 식물생태숲은 백운산 자생식물을 관람하는 생태체험관과 영상체험관, 생태연못을 갖추고 있어 자라나는 세대에게 훌륭한 산교육장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전에 개인적으로 숙박했던 ‘숲속의 집’ 단지로 발길을 옮겼다. 최근 깔끔하게 리모델링을 마친 하우스들은 현대적 쾌적함을 갖추어 단장되어 있었고, 숙박 광장 한쪽에는 이용객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무인 도서관까지 다정하게 갖춰져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전문 산림치유지도사가 운영하는 ‘치유 숲 프로그램’을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야생화 단지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푸근함이 감돌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노랗게 얼굴을 빼꼼 내민 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유지하며 방문객을 반겼다. 이어 야영 캠핑장으로 들어서니 깔끔하게 개보수된 데크 시설과 고급스러운 카라반, 멋진 캠핑카들이 숲속 소나무 그늘 아래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어 캠핑족들의 낙원이라 불릴 만했다.

목재문화체험장에 이르자 나무 향이 그윽하게 감돌았다. 아이들을 위한 매화공방부터 초등학생과 성인을 위한 동백공방, 전문적인 백운공방까지 갖추어 직접 톱질과 망치질을 하며 목공예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취재의 마지막 코스로 휴양림의 자랑인 ‘맨발 걷기 황톳길’ 체험에 나섰다. 신발을 벗고 촉촉하고 붉은 황토에 발을 내딛는 순간, 발끝에서부터 서늘하고 신선한 땅의 기운이 온몸으로 올라왔다.

길을 걷다 보니 먼발치에서 시니어 남성 4~6명이 소나무 그늘 아래서 웃옷을 벗은 채 풍욕(風浴)을 즐기고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 속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숲의 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코스를 완주한 그들은, 길 끝에 마련된 세족장에서 어린 시절 개울가로 돌아간 듯 서로의 등에 시원한 약수를 부어주며 ‘등목’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숲 전체에 번져 나가며, 자연과 완벽히 하나 된 시니어들의 진정한 휴식과 건강한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 내 ‘숲속의 집’ 단독 숙소 전경.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새롭게 리모델링된 통나무집이 방문객들에게 편안하고 아늑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들어서 있는 ‘숲속의 집’ 숙박동. 키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정갈한 목조 숙소들이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정겨운 휴식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문성식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건네는 치유, 그리고 세대 상생의 인프라

백운산 자연휴양림의 백미는 단연 하늘을 가릴 듯 곧게 뻗어 올라간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길이다. 봄과 여름, 숲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서면 코끝을 감도는 짙은 목향(木香)이 머리를 맑게 깨운다. 나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피톤치드는 역설적이게도 숲을 찾는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따스한 천연 처방약이 된다.

특히 백운산 치유의 숲 센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6개 코스(총 10km)의 ‘치유의 숲길’은 이 휴양림만의 독보적인 자랑거리다. 지역의 삼정기(봉황, 돼지, 여우) 전설을 품은 ‘돼지꿈길’, ‘봉황돋움길’, ‘숯가마옛길’ 등은 걷는 재미와 함께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을 선사한다. 곳곳에 조성된 풍욕쉼터와 편백 명상터, 그리고 족욕장과 아로마테라피실은 노년기 신체 면역력을 높이고 신경계의 휴식을 돕는 데 최선의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광양시가 여름 성수기 동안 운영하는 ‘광양시민 우선 예약제’는 지역 주민들에게 자연의 혜택을 먼저 나누는 상생 행정의 귀감이 되고 있다. 숲속의 집, 캐빈하우스, 종합숙박동, 산림문화휴양관, 카라반 등 다양한 형태의 객실은 홀로 찾아온 명상객부터 3대가 함께하는 대가족 여행객까지 모두를 보듬어 안는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의 주요 인프라 및 치유 가치

• 삼나무·편백 군락천연 피톤치드로 면역력 증진 및 스트레스 완화
• 맨발 황톳길(1~2km)발 지압 효과, 원적외선 방출을 통한 피로 해소
• 치유의 숲 센터족욕, 아로마테라피, 명상·요가 등 맞춤형 프로그램
• 목재문화체험장삼대(三代)가 함께 즐기는 손수 제작 목공 체험
• 다양한 숙박 시설숲속의 집, 캐빈하우스, 카라반, 오토캠핑장 데크

 

백운산 치유의 숲 내 ‘미스트 치유계단’ 입구 아치. 시원한 미스트 분사로 더위를 식혀주는 치유 계단 너머로 푸른 숲과 관리광장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있다. 사진=문성식
백운산 치유의 숲 센터 건물 전경. 다양한 산림치유 프로그램과 맞춤형 웰니스 체험을 제공하는 치유 센터가 백운산 청정 자연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진=문성식

숲을 가꿔온 손길, 보존과 상생이 만든 천년의 유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백운산 자연휴양림의 웅장한 그늘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진 자연의 우연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숲을 지키고 가꾸어 온 광양 민초들과 산림인들의 땀방울이 겹겹이 쌓인 숭고한 결실이다.

휴양림 바로 인근에는 신라 시대 도선국사가 35년간 머물며 풍수지리를 집대성하고 동백나무 숲을 조성했던 옥룡사지(사적 제407호)가 자리하고 있다. 옥룡사지의 동백나무가 불타버린 사찰의 빈터를 지키며 대를 이어왔듯이, 백운산의 삼나무와 편백나무들 역시 광양 사람들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뿌리를 내렸다.

2000년 6월 첫 개장 이후 지속적인 보존과 가꿈을 거쳐 오늘날 전남을 대표하는 생태 거점으로 거듭난 백운산 휴양림. 나무를 심고 가꾼 선대들의 지혜와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푸르른 초록의 바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휴양림을 거니는 일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 숲이 들려주는 보존과 상생의 역사를 되새기는 일이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숲이 인간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그늘과 숨결을 내어주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우리는 삶의 정직한 진리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광양목재문화체험장 입구 표석과 한옥 외경.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하게 서 있는 전통 한옥 양식의 체험장 건물과 표석이 고즈넉하고 멋스러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사진=문성식
황톳길과 등목 시설(세족장) 풍경. 황톳길 산책을 마친 방문객들이 맑은 물로 발을 씻고 윗옷을 벗은 채 시원하게 등목을 하며 폭염 속 피서를 즐기고 있다. 사진=문성식

시니어 시대의 사명, 숲처럼 깊어지는 삶의 푸른 그늘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곧게 자라나는 편백나무를 바라보며, 시니어 기자는 나이 듦의 참된 의미를 숲에서 찾는다. 황톳길에서 웃옷을 벗어 던지고 서로의 등에 물을 끼얹어주며 아이처럼 웃던 시니어들의 모습은, 인생의 매서운 더위와 비바람을 견뎌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이자 여유였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그늘을 넓혀가는 고목처럼, 시니어의 삶 또한 후대를 감싸 안는 넉넉한 숲이 되어야 한다. 젊은 날의 열정이 수평으로 퍼져나가는 파도였다면, 노년의 삶은 수직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는 삼나무의 정직함을 닮아야 한다.

‘길 위의 광양사’를 통해 광양의 자연과 역사를 기록해 온 이 여정은, 결국 우리가 어떤 숲을 가꾸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맞닿아 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의 바람 소리는 오늘도 우리에게 속삭인다.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대로 숲처럼 푸르게, 그리고 숲처럼 깊게 살아가라고. 그 조용한 가르침을 품고, 우리는 또 다른 광양의 역사와 자연을 찾아 길을 이어간다.

[다음 회차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5부 광양의 마을, 제41회에서는 광양의 역사와 민초들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랜 마을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