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순사건 간직한 여수, 가슴 아프고 슬픈 역사

사건 당시 14연대 주둔지였던 신월리. 사진 오른쪽 터널이 보인다. 사진=이경희
‘손가락 총’을 썼다는 서국민학교. 사진=이경희

여∙순 사건이란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ㆍ3사건’ 진압 파병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것으로, 6년여에 걸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생은 여수지만 순천, 광양, 구례, 남원을 포함한 전라남북도, 그리고 경상남도에 이르기까지 지리산과 백운산자락에 살던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그 가운데 여수는 임진왜란을 극복한 이충무공의 얼이 담긴 호국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항구도시로 해양엑스포를 유치한 아름다운 도시지만, 여순사건의 출발지다. 그 여수를 두 번째로, 지난 26일 답사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안내서도 읽고, 가는 곳마다 최광철 해설사의 안내도 받았다.

여수에는 오동도가 있고, 그곳에도 ‘여순사건 기념관’이 있다. 여수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여∙순사건을 알리기 위한 곳이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여∙순사건 발생지인 신월리 14연대 주둔지를 들렀다. 14연대 주둔지라는 안내판 옆에 일제 강점기 팠던 땅굴 내부도 관람했다.

다음에는 진압군 사령부가 여수시민을 집결시켜 협력자를 색출한 곳이라는 서국민학교에 들렀다. 진압군이 우익청년단과 경찰의 협조를 얻어 협력자 색출을 위해 인간 터널을 통과하도록 했다고 한다. 터널을 통과할 때 누구라도 손가락질을 당하면 협력자로 분류돼 처형 당했다. 이를 이른바 ‘손가락 총’이라 했다는 전언이다.

중앙동 인민대회 장소 안내판. 현재는 이순신 광장이다. 사진=이경희
여수 만성리에 자리한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사진=이경희
여수 만성리 형제묘 안내판. 사진=이경희

서국민학교에서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듣고, 현재의 이순신광장으로 이동했다.

이순신광장은 1948년 10월 20일 오후 3시에 인민대회장으로 사용되면서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38선이 무너졌다” “제주 출병을 거부한다”는 연설을 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이어 여수경찰서를 지나 만성리 학살지와 형제묘. 만성리 학살지는 부역 혐의자들을 학살하고 암매장하던 곳으로 수백 명의 시신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 형제 묘는 1949년 1월 125명이 총살되어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 불태워진 곳으로 3일간이나 불에 타고, 한 달이 넘도록 독한 냄새가 계속됐던 곳이라고 한다. 죽어서라도 친하게 지내라는 뜻으로 ’형제묘‘라 칭했다고 한다.

보는 곳마다 너무나 가슴아프고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다시는 우리 역사에 이런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풍요로운 내일의 여수가 되기를 희망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동도. 사진=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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