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지금 악성민원이 넘친다. 대개 악성민원은 개인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악성민원인도 죄의식은커녕 자신의 행위를 권리행사쯤으로 당연시한다. 그러나 그 폐해는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 파괴력이 있다.
민원담당자는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이다. 이들은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피해자가 돼 평생 가는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또 악성민원 대응에는 공권력과 행정력이 투입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할 공권력과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뜻이다. 소요재정은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귀중한 인적·물적 자산이 허투루 쓰인다. 악성민원 문제에 모두가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다.

기자는 지난 6월 25일 광양시 ‘악성민원 응대 및 친절교육‘에 다녀왔다. 공무원 140여 명이 2시간 가까이 한결같이 교육에 집중했다. 악성민원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컸다.
이날 교육은 한국미래교육센터 양소윤 강사가 진행했다. 교육생과 실시간 설문 확인을 통한 쌍방향 소통방식으로 진행돼 참석자의 몰입도를 높였다. 교육주제는 ‘행복하게 일할 우리의 권리’였다. 민원응대 기본원칙, 악성민원 사례, 악성민원 상황에 따른 대면·비대면 응대방식 등을 강의했다. 전반적으로 강의방식은 매끄러웠다.
그런데 일반민원과 악성민원은 전혀 다른 성격이다. 접근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명확한 구분 없이 ‘친절교육’ 연장선에서 두루뭉술하게 진행되는 내용은 아쉬웠다.

고충민원 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3~5월까지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악성민원 실태를 파악했다. 지난 2일 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악성민원인은 총 2784명으로 나타났다.
악성민원 유형은 담당 공무원을 상습·반복적으로 괴롭히는 유형 48%, 폭행·협박하는 유형 40%, 신상공개 후 좌표찍기를 하는 유형 6%로 조사됐다.
‘칼 들고 구청가고 있다,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례, 공무원에게 12차례 침을 뱉고 얼굴을 할퀸 사례, 관공서에서 칼을 들고 공무원과 타 민원인을 위협하고 난동을 부린 사례, 공무원 실명을 공개하고 소속 단체회원들에게 항의전화를 독려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본인 땅을 매입해 달라며 청사 현관에 드러눕고, 시도지사 면담을 요구한 사례, 하늘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도지사와 함께 3년 안에 백두산에 올라야 한다며 생떼를 쓴 비이성적 사례도 있었다.
‘지나친 정보공개 청구사례’도 있다. SBS 5월 3일 보도에 따르면, 2022~2023년 우리나라의 정보공개 청구민원은 총 354만 건이었다. 이 가운데 단 10명이 82만 건을 청구했다. 과도한 ‘악성민원 정보공개 청구’가 총 23%로 전체 청구민원의 4분의 1에 가깝다.
‘집중적 악성민원 제기’ 사례도 있다. KBS 4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청주시에 거주하는 A씨가 4년 3개월 동안 제기한 민원은 총 7299건이었다. 하루에 4.8건의 악성민원을 제기한 셈이다. 이로 인해 민원담당 5명이 퇴직하고, 2명이 휴직했다.
놀랍다. 우선 제기된 악성민원 건수도, 악성민원인의 집념(?)도 놀랍다. 그러나 최근 악성민원 문제가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됐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국가가 더 놀랍다.
그간 대다수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귀중한 ‘공공재’인 공권력과 행정력이 악성민원에 의해 의미 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는 악성민원 원인도 개인 탓으로, 해결도 민원담당 개인에게 미루는 소극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악성민원 행위는 의도적이고, 반복적이고, 분노하고, 공격적이고, 억지스럽고, 비이성적이란 특성이 있다.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바른 대응은 악성민원이 일반민원과 다름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일반민원 응대는 친절교육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악성민원은 ‘손님은 왕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에서 출발한 ‘친절교육’으론 대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악성민원 대처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위기협상 전문교육’이 필요하다. ‘인간 행동과 심리이해’에 기반을 둔 교육이 필수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전체기관 45%가 3년 내 악성민원 대응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 “교육을 했더라도 친절교육 등으로 악성민원 대응에는 부적합했다”고 밝혔다. 핵심을 짚었다.
경찰수사연수원 박재일 교수는 “‘위기협상 시스템’은 일상 궤도를 이탈한 사람들의 독특한 심리적, 생리적 변화를 이해하고 대응방식을 결정한다”며, “이 시스템은 상대방 분노감정을 다룬다. 따라서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뿐만 아니라 스튜어디스, 민원담당자와 같이 감정노동 영역 종사자도 필수적으로 익히고 숙련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갈등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2018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을 수상한 위기협상 전문가 황세웅도 “위기갈등 상황이 빈번히 발생함에 따라 정부가 민원을 응대하는 공무원들을 위한 위기협상 전문가 자격증 제도를 마련하고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공동 대응팀’이 작동돼야 한다. 공동 대응팀은 서류상 존재하는 형식적 조직이 아니라 악성민원 현장과 법적 대응에서 실질적으로 작동되는 유기체적 조직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원담당은 경험 나눔과 정서적 연대를 통해 안정감을 갖게 된다.
셋째, 국가와 지자체는 보안 장비와 시설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막상 악성민원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당황해 증거수집 확보가 어렵다. 악성민원의 욕설, 폭행 등 불법행위 증거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장비와 시설확보가 요구된다.
넷째, 국가와 지자체는 민원관련 법령과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한 사문화(死文化) 조항, 민원담당 보호조항, 악성민원 개념정립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
민원처리에관한법률 제4조는 민원담당 보호규정이다. 그런데 민원담당이 부당하고 불법적인 악성민원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기관 차원의 대응규정이 없다.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 기관차원 대응으로 개선돼야 한다.
또 악성민원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욕설을 반복하고, 폭력 행사가 앞서고, 의미 없는 전화를 장시간 하는 경우 민원담당은 정당한 사유를 악성민원인에게 고지하고 그 업무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법의 목적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함’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 무한적 권리보장이 될 수 없다. 만약 부당하고 불법을 저지른 악성민원인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유기체와 무기체 구별은 자극에 대한 반응유무다. 악성민원인이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웬만해선 유야무야 넘어간다. 그러니 관공서가 무기체로 인식됐다. 누구나 마음껏 관공서에 감정배설을 해도 된다는 유혹을 받기 십상인 구조다. 악성민원이 넘치는 이유 중 하나다.
따라서 악성민원에 대한 기관차원 고소·고발이 활발해져야 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함을 선택하는 기회비용을 따져 처신한다. 악성민원인도 시간적, 경제적 패널티를 받는 시스템으로 바꿔 대응해야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끝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악성민원 폐해을 알리고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지난 현충일 부산 모 아파트 외벽 창문에 욱일기가 게양됐다. 욱일기를 내건 주민은 언론에 “지자체와 법적 갈등 문제를 알리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헌절과 광복절에도 욱일기를 게양하겠다”고도 했다.
경찰과 지자체가 설득을 위해 주민을 찾아갔으나 부재로 만나지 못했다. 마침내 분노한 주민들은 욱일기를 게양한 집 현관에 음식물로 추정되는 오물을 던졌다. 저녁 늦게 욱일기는 자진철거됐다. 악성민원 해결과 관련해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악성민원의 바람직한 해결은 전문가 양성, 적정한 시스템 구축, 합리적 법령 개정과 운용, 그리고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해결되는 사회문제다.
기자가 공무원 출신으로 민원 응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매우 유익한 정보를 담은 기사를 쓴 것 같다.
악성민원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통계수치를 통해서 확인하니 더욱 경악스럽고, 정말이지 국가는 뭐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우리사회 시위 문화와 악성민원, 유튜브나 SNS상의 악성댓글 등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나쁜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정부와 국회 등 저치권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사회가 합리적인 사회가 되도록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에서도 악성민원 처리 등 제반 문제에 대한 공로화에 힘써주면 좋겠다.
상호존중이있어야하는데~
악성민원인이공무원을함부로
대하는것을참고넘기면점점더
계속될듯합니다
친절과관용
공무원은국민을봉사하는것으로
넘어가는게
바람직한것인가~?
생각이들고
악성민원인에대해서는
처벌과불이익이 필요하다고생각합니다
가장 힘든게 사람 상대하는 일인거 같네요
공무원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요사이 자주 일어나는 문제점을 잘 지적해주셨네요 잘읽었습니다
민원은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부분인것 같네여 제 경험으로도 불편함을 표현할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같은 동네 주민들한테도 도움이 될수도 있구요, 하지만 불필요한 민원은 다른 민원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봉사자라는 지위를 노예라고 생각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악성민원이 끊기지 않는거 같네요… 제도 정비, 보호 방안 마련 등 좀 더 실효적인 대책도 나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