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옥룡면 상운(上雲)마을엔 문화유산·유적으로 중흥산성, 중흥사, 쌍사자 석등(모조품), 삼층석탑, 석조지장보살 반가상 등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들과 함께 중흥사 요사채(寮舍寨)에 봉안된 탱화를 소개한다.
불교유적·유물불화(佛畵) 탱화(幀畵)정의는 천이나 종이에 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 벽에 거는 불화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록된 글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탱화를 그리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존하는 탱화는 13세기경의 고려 작품이 국내에 5점 정도 전하고, 일본에 80여점, 구미지역에도 상당수 전하고 있다고 한다.
고려 불화의 경우에는 여러 존상(尊像)을 같이 배열할 경우 주존(主尊)을 돋보이게 상방(上方)으로 우뚝 솟게 배열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불화에서는 보살상이나 불제자상이 주존(主尊)을 둘러싸게 배열하고 있는 등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불교가 여러 보살 신앙을 발전, 전개시킨 데에서 연유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귀족 불교에서 대중 불교로 전개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볼수 있다.
기법이나 예술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보면 고려시대 탱화가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탱화가 귀족적 취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조선시대 탱화는 민중적 취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탱화의 소재는 다양하나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 신앙의 양상에 의하여 그 전개 양상도 달라 진다고 한다. 상운마을 중흥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경문왕(861~875)때 승려 도선(道詵)이 창건한 사찰이다.
요사채(寮舍寨)에 탱화(幀畵)가 봉안되어 있다. 탱화에 대한 광양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시기는 ‘조선’이며 3점이 봉안되어 있다고 기록돼 있으나 언급된 ‘칠성각 칠성탱화’는 현재 자취를 감췄다.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중흥사 현왕탱화(中興寺 現王幀畵)
이 탱화는 현재 중흥사 요사채(寮舍寨)에 있으며 견본채색으로 규모는 가로 80.5㎝, 세로 117.5㎝다. 현왕탱화는 사람이 죽어서 3일만에 심판을 받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배경은 방에 병풍이 처져 있고 그 앞에 현왕이 의자에 앉아 있으며 그 밑으로 판관(判官), 녹사(綠事)들이 서책을 들고 있다.
화기(畵記)는 화면의 하단 중앙에 있다. 이 현왕도에는 18세기 후반부터 유행하여 온 적색(赤色)과 녹색(綠色)을 주색으로 사용하였다. 화기(畵記)의 내용에는 원래 이곳 탱화는 경남 하동의 쌍계사 승당에 봉안되었음을 알수 있다. 제작시기는 광서14년(1888. 고종 25년)이며 화사비구(畵師比丘)는 묘영(妙英), 품윤(品允)등을 비롯해서 7인이다.
중흥사 신중탱화(中興寺 神衆幀畵)
이 탱화는 중흥사 요사채(寮舍寨)에 있으며 견본채색으로 규모는 가로 110㎝, 세로 130㎝이다. 화폭을 2단으로 구분하여 상당에는 제석을 중심으로 그 권속들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위태천을 위주로 한 무장 모습의 신중을 그린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화면 하단 좌측에 가로 30㎝, 세로 6㎝의 화기(畵記)란이 있는데 현재는 지워져 내용을 알 수 없다. 제작시기는 구도나 채색으로 보아 19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