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소리의 유율을 넘어, 광양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낸 그릇
지난 55회 기사에서 본지는 백운산 바람과 섬진강 물결 속에서 피어난 ‘광양의 소리’를 다루었다. 들녘의 상사소리와 포구의 노젓는 소리, 그리고 남도의 한과 신명이 어우러진 소리의 울림은 광양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준 정서적 자산이었다.
‘광양의 문화’ 여섯 번째 이야기인 이번 제56회에서는, 소리의 울림을 넘어 광양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숨 쉬고 정서를 이어온 ‘광양의 언어(방언·사투리)’를 탐구한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한 지역의 풍토와 역사, 그리고 그 땅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가치관이 직조해 낸 삶의 유산이다. 남도의 동쪽 끝자락, 경상도와 경계를 맞댄 접경지이자 섬진강을 품고 있는 광양의 말은 전라도 방언 특유의 유연함과 경상도 방언의 강렬함이 오묘하게 교차하며 독특하고 정겨운 언어 지도를 그려낸다.

- 전라좌도의 끝자락, 영·호남 접경이 빚어낸 독창적 방언 지형
광양의 사투리는 전라도 방언(전남 동부 방언)의 큰 틀 안에 속해 있지만, 순천·여수·하동 등 인접 지역과의 교류 속에서 매우 독특한 언어적 스펙트럼을 형성해 왔다.
특히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과 맞닿아 있는 진상, 진월, 다압 등의 동부 지역은 경상도 방언의 음운적·어휘적 영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반면 광양읍을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은 전형적인 남도 좌도 방언의 부드러움과 길게 빼는 억양이 강하게 남아있다.
[ 광양 언어 지도의 입체적 구성 ]
[서부권: 광양읍·봉강·옥룡] ──► 전형적 남도 방언 (부드러운 말꼬리, 유연한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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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과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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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권: 진상·진월·다압] ──► 영·호남 접경 방언 (섬진강 너머 하동과의 교류, 경상도 어휘 유입)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광양의 언어는 전라도의 풍부한 감정 표현과 어미 변화를 유지하면서도, 경상도 언어의 직관적이고 툭툭 내뱉는 억양이 묘하게 섞여 드는 특징을 지닌다. 이 때문에 처음 광양 사투리를 접하는 이들은 경상도 말이나 때로는 강원도·북한 말씨의 느낌을 받기도 하며, 지역 이름인 ‘광양’을 토박이들 사이에서 ‘가냥’이나 ‘간양’으로 구수하게 발음하는 경향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삶의 땀방울이 배어 있는 광양 사투리의 고유 어휘와 표현
광양 사투리는 들녘과 포구, 그리고 백운산 자락의 일터에서 다듬어져 온 살아있는 생활어다. 이 땅의 민초들이 일상에서 체온을 나누며 사용해 온 대표적인 방언들은 다음과 같다.
거리와 상태를 나타내는 말:
뽀짝: 거리나 사이가 아주 가깝거나 바짝 붙어 있음을 이르는 말 (예: “그냥 뽀짝 붙어서 앉아라”).
가찹다: 표준어 ‘가깝다’의 옛 어형과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한 표현 (예: “집에서 시장까지 참말로 가찹네”).
생활 속 정겨운 도구와 음식 이름:
빼다지: 물건을 넣고 빼는 가구의 ‘서랍’을 일컫는 구수한 토박이말.
싱건지: 겨울철 슴슴하고 시원하게 담가 국물 맛을 내던 ‘동치미’를 가리키는 말.
단밥: 쌀쌀한 날씨에 일손을 멈추고 속을 달래주던 달콤한 ‘식혜’.
갱조개: 섬진강 하구와 광양만 일대에서 어민들이 물질과 채취로 삶의 터전을 일구며 부르던 ‘재첩’의 다정한 이름.
마음을 나누는 추임새와 행동 어휘:
하아~: 상대방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래, 맞다’를 뜻하는 구수한 호응사.
매~ 문때라: 어떤 일이나 물건을 ‘세게 문질러라’는 뜻으로, 억척스럽고 부지런하게 살아온 남도인들의 삶의 태도가 담긴 표현.
싸게싸게: ‘빠르고 수월하게 일을 끝내자’며 서로를 독려하는 부지런한 삶의 정서.
| 구분 | 광양의 정겨운 생활어 | 표준어 및 의미 | 언어에 담긴 정서 |
| 농경·생활 | “논매기 싸게 해부리고 모여서 기정떡이나 묵자” | 논매기를 어서 끝내고 모여서 기정떡이나 먹자 | 노동의 고단함을 나눔과 음식으로 승화시키는 정겨움 |
| 어로·포구 | “오늘 바당(바다) 물살이 찌글찌글하니 고기가 잘 잡히겠네” | 오늘 바다 물살이 활발하니 고기가 잘 잡히겠네 | 포구 어민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현장감 |
| 환대·음식 | “숯불에 불고기 싸게 구워줄 테니 어서 들어오시오” | 숯불에 불고기 금방 구워줄 테니 어서 들어오세요 | 먼 길 온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남도의 환대 문화 |

- 현장의 숨결, 진상면 텃밭농부도서관 서재환의 『오지게 사는 촌놈』이 증언하는 광양 사투리
광양 사투리의 진면목과 현장성은 지역의 흙냄새를 맡으며 글을 써 내려간 토박이 문인의 기록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진상면 어치리 텃밭농부도서관의 서재환 관장이 펴낸 자전적 에세이 집 『오지게 사는 촌놈』은 문자로 기록된 광양 언어의 귀중한 보물창고이자 생생한 현장 박물관이다.
백운산 억불봉 자락 계곡 마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저자는, 잊히기 쉬운 광양 토박이 사투리를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흙살 짙은 온기를 전달한다.
책 제목에 쓰인 ‘오지게’라는 표현부터가 전라도 방언 특유의 만족감과 꽉 찬 풍요로움을 뜻한다. 단지 ‘야무지게’나 ‘실속 있게’라는 뜻을 넘어,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자연이 주는 결실을 고스란히 끌어안으며 유쾌하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광양 촌놈의 기개와 해학을 집약한 단어다.
서재환 대표는 책 속에서 광양의 산골 마을과 일터에서 실제로 쓰이던 구수한 토속어들을 있는 그대로 풀어낸다.
“산자락 밭뙈기 밭매다 땀방울이 ‘찌글찌글’ 맺힐 때 시원한 둠벙 물에 손을 씻고, ‘오지게’ 여문 감나무 밑에 앉아 한숨 돌리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곧 광양의 역사요 삶이었다.”
찌글찌글하다: 땀이나 물기가 자글자글하게 맺히거나, 어떤 기운이나 동작이 생동감 있게 넘쳐나는 모양을 뜻하는 광양 특유의 현장어.
오지다 / 오지게: 마음이나 형편이 흐뭇하고 알차며 꽉 찬 상태를 이르는 남도의 정서적 언어.
배라먹다 / 껄떡거리다: 촌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있는 고단함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는 인간적인 해학 표현.
이처럼 『오지게 사는 촌놈』에 수록된 사투리 문장들은 단순한 비표준어의 나열이 아니라, 백운산 산골짜기에서 밭을 일구고 섬진강 물길을 따라 삶을 꾸려온 광양 사람들의 거친 손마디와 따스한 체온이 입혀진 ‘살아있는 생명어’임을 입증해 준다.

4. 사투리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와 미래적 보존
현대화와 표준어의 대중화로 인해 지역 고유의 사투리가 점차 사라져가는 오늘날, 광양의 언어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일은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는 핵심적인 인문학적 과제다.
광양의 사투리는 단순한 ‘방언’이나 ‘비표준어’가 아니다. 그것은 백운산의 깊은 계곡과 섬진강의 유유한 물길, 그리고 정병옥 가옥에서 윤동주의 시집을 지켜냈던 민초들의 삶의 궤적이 겹겹이 쌓여 완성된 ‘문화적 유전자(DNA)’다.
최근 지역 문학가들과 향토사학자들은 광양 고유의 구비 설화와 들노래 사설, 전통 사투리를 기록화하고 구술 채록하는 작업을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다. 지역 아동과 젊은 세대에게 광양 사투리의 멋과 정서적 가치를 전달하려는 노력은, 도시가 지닌 전통의 숨결을 미래로 잇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 광양 언어(사투리)의 4대 인문학적 가치 ]
[1. 영·호남 융합] ──► 섬진강을 사이에 둔 유연한 포용성과 어휘적 풍부함
[2. 따뜻한 정서] ──►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살가운 억양과 어미
[3. 삶의 현장성] ──► 농경·어로·식문화 속에서 자생적으로 피어난 생동감
[4. 정체성 유산] ──► 도시의 역사와 민초들의 삶을 증언하는 무형 자산

마음으로 통하는 가장 따뜻한 언어
광양불고기가 뜨거운 온기로 사람을 맞이하고, 장인의 명도가 고결한 정절을 보여주었으며, 광양의 소리가 귀를 울렸다면, 광양의 언어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가장 가깝게 이어주는 따뜻한 고리다.
비록 투박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시련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민초들의 해학과 타인을 향한 넉넉한 품이 들어있다. 오늘 가만히 귀 기울여보는 광양의 정겨운 사투리—그것은 이 땅이 품어온 수백 년의 시간과 사람들의 정이 소리 내어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고향의 노래다.
[다음 회 예고]
[길 위의 광양사(史) 제6부 광양의 문화] 57회:
들녘과 포구의 신명을 하나로 묶어내며 백운산 아래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던 ‘광양의 전통 놀이와 세시풍속, 버꾸놀이와 용지 큰줄다리기를 중심으로’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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