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봉강몀 하조마을에 도착하면 보호수로 지정된 '용란송'이 있다. 용의 알을 품고있는 형국의 소나무라는 뜻이다. 사진=이경희
용란송을 뒤로하고 성불사 가는길에 세심교가 있다.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가라는 뜻일게다. 사진=이경희
세심교를 지나면 조섲 숙종 17년 광양현감 임종석이 지었다는 ‘백운산 성불사’라는 기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이경희
성불사로 들어서는 일주문이다. ‘백운산 성불사’라는 현판이 보인다. 사진=이경희
성불사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사진=이경희
대자보전과 그앞에 세워진 태국 프라프타 승왕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받아 세운 5층 대보탑이다. 사진=이경희
大慈寶殿안에 모셔진 부처님. 사진=이경희
천왕문으로 오르는길에 눈가리고, 귀막고 압가린 불상이 놓여있는데 나쁜말 하지말고 나쁜말 듣지도 말고 나쁜것은 보지말라는 뜻일게다. 사진=이경희

가을이 깊어질수록 산은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다. 광양에 이러한 가을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백운산 도솔봉 아래 자리한 성불계곡과 성불사다.

광양의 4대 계곡 가운데 첫 번째로 손꼽히는 성불계곡은 백운산 깊은 품속에 자리하고 있다.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계곡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이면 붉고 노란 단풍이 계곡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성불사를 제대로 만나고 싶다면 자동차로 사찰 앞까지 올라가기보다 천천히 걸어보기를 권한다.

광양읍에서 시내버스 20번을 타고 30여 분이면 하조마을에 닿는다. 이곳에서 성불사까지는 걸어서 약 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천천히 걸을수록 성불계곡이 품은 아름다움과 이야기가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하조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나무가 있는데 용란송(龍卵松)이다.

용의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독특한 모습의 소나무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나무다. 역사적·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수로 지정된 용란송은 마을의 오래된 이야기를 묵묵히 품고 있다.

용란송을 뒤로하고 성불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가을 숲길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쉼 없이 흐른다. 바위 사이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와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조용한 산행의 벗이 된다.

한참을 걷다 보면 세심교(洗心橋)가 나타난다. 이름 그대로 ‘마음을 씻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서 잠시 마음속 욕심과 번잡함을 내려놓으라는 듯하다.

세심교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조선 숙종 17년 당시 광양현감 임준석(任俊錫)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성불사 7언 절구가 눈길을 잡는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글귀 앞에 잠시 서 있으면, 이곳이 단순히 아름다운 산속 사찰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 공간임을 느끼게 된다.

일주문에는 ‘白雲山成佛寺(백운산성불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산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주변의 분위기도 한층 고요해진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성불사. 성불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수없지만,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성불사는 신라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대가람으로 천여 명의 대중이 머물렀으며, 40여 개의 암자와 12개의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고즈넉한 산사를 생각하면 당시 성불사의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사찰이 모두 소실되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이후 명맥을 이어오다 언제 폐허가 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성불사의 새로운 역사는 1965년 무현 선사가 초암 3칸을 짓고 수행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이후 1974년부터 복원 불사가 이어졌으며, 1995년에는 태국 프라프타 승왕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받아 5층 대보탑을 건립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바탕으로 성불사는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전통사찰로 지정됐다.

가을에는 길이 곧 문화가 된다 용의 알을 품은 듯한 모습의 용란송에서 마을의 옛이야기를 만나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는다. 세심교에서는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를 되새기고, 옛 현감이 남긴 글귀 앞에서는 수백 년 전 사람들의 흔적과 마주한뒤 일주문을 지나 마침내 산속 고요한 성불사에 이른다.

목적지만 생각한다면 한 시간의 걸음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성불계곡에서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 자체가 하나의 문화탐방이다. 빠르게 지나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걸으면 보인다.

하조마을에서 시작해 용란송을 만나고,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세심교를 건너 성불사에 이르는 길. 그 길에는 자연이 있고, 역사가 있고,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으며, 무엇보다 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가을의 맛과 멋이 있는 길이다.

조선 숙종 17년 당시 광양현감 임준석(任俊錫)이 지었다는

‘白雲山成佛寺’ (백운산 성불사)

百曲淸溪半日尋(맑은 시내 돌고 돌아 반나절 찾았더니)

白雲深處有鐘音(흰 구름 짙은 곳에 종소리 들려오네)

爲民齊沐同儒釋(백성 위한 목욕재계는 유불이 한가지라)

天地神靈共昭臨(이에 천지신명도 굽어보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