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구봉산 파노라마워크 취재길에 만난 소박한 밥상… 귀한 별식에서 서민의 한 끼로, 세월 따라 달라진 수제비 이야기
지난 10월 8일, 광양 구봉산에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파노라마워크가 개장했다. 구봉대를 옮기고 새롭게 조성한 구조물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적하던 산길에는 자동차가 줄을 잇고, 평소 조용하던 용장마을에도 전에 없던 활기가 찾아왔다.
구불구불 산머리를 따라 오르는 길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해마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차량을 마주칠 일이 드물던 동네다. 대부분 고령 주민들이 조용히 살아가는 마을에 자동차가 갑자기 다가오면 놀라기 일쑤다. 관광객에게는 새로운 명소로 향하는 길이지만, 주민들에게는 낯선 소음과 조심스러운 보행을 감당해야 하는 일상이기도 하다.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 시장기가 돌았다. 마침 눈에 들어온 곳이 수제비를 파는 식당이었다. 숲과 산길 가까이에 자리한 식당이지만 손님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보리밥과 들깨수제비를 주문해 한 숟가락씩 떠먹다 보니 문득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오늘도 수제비야? 나 수제비 안 먹을래!”
어린 시절, 밥상 앞에서 한 번쯤 부려봤을 법한 투정이다. 지금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였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쌀밥보다 수제비를 더 자주 먹던 시절이었다. 끼니마다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은 국이 올라오면, 아이들은 밥을 먹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수제비는 쉽게 물릴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쌀이 부족한 집에서 식구들의 배를 채워주던 고마운 한 끼였다. 정부의 취로사업에 참여해 저수지를 만들고 하천 제방을 고치며 받은 품삯 가운데 밀가루가 들어 있기도 했다. 힘든 노동 끝에 얻은 밀가루는 가족의 끼니가 됐고, 반죽을 뜯어 끓인 수제비는 허기진 배를 달래주었다.
세월이 흘러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수제비를 마주하면 옛날 생각이 난다. 맛이나 영양을 따지기 전에 먼저 마음이 움직인다. 어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던 부엌, 냄비에서 김이 오르던 저녁, 형제자매가 둘러앉아 먹던 밥상이 떠오른다. 한때는 벗어나고 싶었던 음식이 이제는 일부러 찾아 먹는 추억의 별미가 된 것이다.
오늘 취재길에서 만난 수제비 한 그릇에는 그렇게 지나온 세월과 사람들의 삶이 함께 담겨 있었다.

밀가루 반죽에서 시작된 오래된 음식
수제비는 밀가루를 반죽해 손으로 얇게 뜯거나 떼어 끓는 국물에 넣어 익힌 음식이다. 조리법은 단순하지만, 그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오늘날 수제비를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처음부터 서민의 밥상에만 올랐던 것은 아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중국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6세기 무렵 밀가루 반죽을 잘라 끓는 물에 넣어 익히는 박탁(餺飥)이라는 음식이 등장한다. 오늘날 수제비와 닮은 조리법이다. 다만 이것이 우리나라 수제비의 직접적인 기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기록이 충분하지 않아 언제부터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는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우리 문헌에서 수제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는 1517년 간행된 중국어 통역서 『사성통해(四聲通解)』가 꼽힌다. 이 책은 중국 음식인 박탁을 설명하면서 우리말로 ‘수저비’라고 부른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적어도 조선 중기에는 수제비와 비슷한 음식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수제비를 오늘날과 다른 방식으로 즐기기도 했다. 당시 조리법을 전하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운두병(雲頭餠)’이라는 음식이 소개돼 있다. 좋은 밀가루에 다진 고기와 파, 간장, 기름, 후춧가루, 계핏가루 등을 넣어 반죽한 뒤 닭을 삶아 만든 장국에 떠 넣어 익히는 방식이다. 완성된 음식에는 닭고기를 얹었다. 지금의 소박한 수제비와 비교하면 재료와 조리법이 한층 화려하다. 밀가루가 귀했던 시대에 이런 음식은 일반 서민이 일상적으로 먹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수제비라는 이름의 유래도 흥미롭다. 손을 뜻하는 한자 ‘수(手)’와 접는다는 의미의 ‘접이’가 합쳐져 ‘수접이’에서 수제비로 변했다는 설명이 있다. 반죽을 손으로 뜯어 넣는 조리법에서 비롯됐다는 풀이다. 다만 다른 어원설도 있어 이를 확정된 유래로 보기는 어렵다. 음식 이름 하나에도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릿고개와 밀가루, 수제비가 서민의 밥상이 되다
수제비가 우리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남은 까닭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도 관련이 깊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식량 사정이 어려웠던 시절, 밀가루는 많은 가정의 중요한 식재료가 됐다. 전쟁 뒤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들어오고 밀가루 음식이 널리 퍼지면서 수제비는 서민들이 자주 먹는 한 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쌀밥을 매일 먹기 어려웠다. 겨울에 저장한 곡식이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봄철이면 끼니 걱정이 더욱 깊어졌다. 이른바 ‘보릿고개’다. 산과 들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루로 만들어 죽이나 수제비를 끓였고, 밀가루를 얻으면 반죽을 넉넉히 만들어 식구들의 배를 채웠다.
기억 속 수제비는 늘 넉넉하지 않았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뜯어 넣고 감자나 애호박, 김치 몇 조각을 더하면 한 냄비가 완성됐다. 국물을 넉넉히 잡으면 식구가 많아도 그릇을 채울 수 있었다. 반찬이 변변치 않아도 김치 한 조각이면 먹을 만했다. 밥을 대신해 허기를 달래는 음식으로는 그만이었다.
정부가 추진한 혼분식 장려 정책도 밀가루 음식이 일상에 자리 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 쌀 소비를 줄이고 밀가루 등을 섞어 먹도록 권장하던 시절, 수제비와 칼국수 같은 음식은 가정의 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수제비를 먹었던 사람들의 기억은 단순히 정책이나 식량 사정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반죽을 주무르고, 가족이 둘러앉아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 먹던 풍경이 함께 남아 있다.
지금은 밀가루가 흔하고 먹을거리도 다양해졌다. 수제비를 주식으로 삼는 가정은 드물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수제비를 찾는 사람도 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 이제는 지나온 삶을 떠올리게 하는 별미가 된 것이다.

뜨데기부터 밀제비까지, 이름도 가지가지
수제비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손으로 반죽을 뜯어 넣는 모양이 이름에 반영된 경우가 많다. 경기·강원 지역에서는 ‘뜨데기’나 ‘뜨덕국’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전남에서는 ‘떠넌죽’이나 ‘띠연죽’, 경남에서는 ‘수지비’·‘밀제비’·‘밀까리장국’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뜨더국’이라는 명칭이 알려져 있다. 지역과 마을에 따라 쓰임이 달라 모든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이름을 들으면 음식이 단순히 조리법만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밀가루를 ‘밀까리’라고 부르던 말씨, 반죽을 ‘뜯는다’는 동작을 표현하던 사투리, 집집마다 이어진 부엌의 언어가 음식 이름에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시니어라면 부모님이나 고향 어른들이 수제비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해 볼 만하다. 같은 음식이라도 고향에 따라 이름이 달랐고, 그 이름에는 지역의 말과 생활이 담겨 있다. 음식의 역사를 살피는 일은 곧 사라져 가는 생활 언어를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감자에서 들깨까지, 수제비의 다채로운 변신
수제비의 매력은 재료와 국물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는 데 있다. 기본은 밀가루 반죽이지만,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곡식과 뿌리식물을 활용해 여러 종류가 만들어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밀가루로 만든 밀수제비 외에도 메밀수제비, 감자녹말로 만든 감자수제비, 칡뿌리녹말을 이용한 칡수제비, 어린 보리싹이나 보릿겨를 활용한 수제비 등이 소개돼 있다. 재료가 부족한 시절에는 밀가루만 고집할 수 없었고,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곡식과 식물을 활용해 먹을거리를 마련했다.
제주도의 ‘메밀저베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메밀가루를 익반죽해 멸치장국에 떼어 넣고, 미역이나 배추김치 등을 곁들여 끓이는 향토 음식이다. 메밀을 심는 날 아침에 먹는 풍습도 전해진다. 같은 수제비 계열의 음식이라도 지역의 농사와 풍속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 셈이다.
오늘날 식당에서 만나는 수제비는 훨씬 다양해졌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맑은 국물에 감자와 애호박을 넣은 기본 수제비부터 김치를 넣어 칼칼하게 끓인 김치수제비, 바지락이나 새우 등을 더한 해물수제비가 있다. 들깨를 듬뿍 풀어 걸쭉하고 고소하게 끓인 들깨수제비도 인기다. 감자를 갈아 만든 옹심이를 함께 넣거나 닭고기 육수를 활용하는 메뉴도 볼 수 있다.
이번 취재길에 맛본 들깨수제비는 옛날의 수제비와 오늘의 수제비를 이어주는 음식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는 기본 방식은 같지만, 들깨가 더해지면서 국물은 부드럽고 고소해진다. 보리밥을 곁들이면 쫀득한 수제비와 보리밥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져 한 끼가 한층 풍성해진다. 예전에는 허기를 달래려고 먹었던 음식이 이제는 맛과 식감을 즐기는 별미로 변한 것이다.
소박하지만, 한 그릇의 영양도 살펴야
수제비는 밀가루 반죽이 주재료이므로 탄수화물의 비중이 높은 음식이다. 감자와 애호박, 양파, 버섯 같은 채소를 넣으면 식이섬유와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고, 바지락이나 새우, 고기 등을 더하면 단백질도 보탤 수 있다. 들깨를 넣은 수제비는 고소한 맛과 함께 지방과 여러 영양소를 더하는 방식이다.
다만 국물 맛을 내기 위해 간장이나 소금을 많이 사용하면 나트륨 섭취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시니어들은 국물을 남김없이 먹기보다 간을 적당히 조절하고, 채소와 단백질 재료를 충분히 곁들이는 편이 좋다. 수제비 한 그릇이 특별한 보양식이라기보다는 재료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균형 잡힌 한 끼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운 것은 수제비만이 아니다
구봉산 취재를 마치고 만난 수제비 한 그릇은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어린 시절에는 밥 대신 수제비가 나오는 것이 싫었다. 이제는 그때의 음식이 그립다. 음식의 맛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그 음식을 먹던 사람과 풍경이 달라진 것일까.
어머니는 밀가루에 물을 부어 반죽을 만들었다. 손바닥으로 치대고, 적당히 숙성한 반죽을 손으로 얇게 뜯어 끓는 국물에 넣었다. 냄비 가장자리로 김이 오르면 부엌에는 밀가루와 멸치 육수가 섞인 냄새가 퍼졌다. 식구들은 그릇을 앞에 두고 뜨거운 국물을 식혀 가며 먹었다. 수제비는 특별한 날의 음식은 아니었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먹는 일상의 음식이었다.
그 시절 수제비에는 가난의 기억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재료로도 식구들의 배를 채우려던 어머니의 마음, 이웃과 먹을 것을 나누던 정, 어려운 형편에서도 하루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의 삶이 함께 담겨 있다.
오늘날 구봉산 파노라마워크를 찾는 방문객들은 새로운 광양의 풍경을 만나고 돌아간다. 그 길에서 잠시 벗어나 먹은 수제비는 또 다른 광양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화려한 관광지와 달리 수제비는 우리 삶 가까이에 오래 머물러 온 음식이다. 시대가 바뀌고 식탁이 풍성해져도, 사람들은 여전히 익숙한 한 그릇에서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수제비는 가난했던 시절을 견디게 해 준 음식이자, 오늘날에는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다. 한때는 “오늘도 수제비냐”고 투정했지만, 이제는 그 한 그릇에서 어머니의 손맛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떠올린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수제비 자체보다, 그 음식을 둘러싸고 함께 웃고 먹던 사람들의 따뜻한 밥상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