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금호 김상후 선생 유품 전시회가 서거 80주년을 맞아 지난 19일 광양 역사문화관 기획실에서 열렸다.
김상후 선생은 부유했던 가정의 사재를 팔아 임시정부 군자금으로 제공, 이로 인해 옥고를 치르고 나와 야윈 모습으로 살다 해방 전 서거한 애국지사다. 4대손 김형택의 노력으로 2002년 국가유공자로 지정 됐다.
이날 행사는 박기오 성균관 부원장, 김종호 문화원장, 서동용 국회의원 및 서영배 광양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박기오 부원장은 인사말에서 “김상후 선생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을사조약 체결 후 고향으로 돌아와 광산사업을 한다며 부동산을 팔아 임시정부 군자금으로 보내고, 옥고를 치른 후 후유증으로 바짝 야윈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목이 매였다.
서동용 국회의원은 축사에서 “광양의 애국지사로 손색 없는 금호 김상후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지사로 추앙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후 선생은 조선후기 광양의 유반(儒班)으로 유명했던 가문에서 1869년 출생했다. 선생은 1919년 4월 1일 광양읍 우산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만세를 외치던 애국지사다. 가산을 팔아 거액의 군자금을 임시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선생은 부귀영화를 버리고, 민족의식 고취와 농민 계몽운동, 광양 지역의 독립운동으로 일생을 바치면서, 선생의 자녀들도 뜻을 이어 국운과 함께 가문의 운도 같이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과 군자금 지원에 신분을 속였고, 해방 후에는 6.25전쟁 등으로 사회가 혼란했기에 밝혀지지 않았다. 1956년 신익희 선생과 조병욱 박사가 광양 민주당 군당 창당 건으로 전라남도를 방문했을 때, 징용자 명부를 열람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선생을 유공자로 등록하자고 했으나 아들 김동주씨는 “선비가 나라를 위해 애국하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라며 고사했다고 한다.
후일 선생의 4대손 김형택 씨는 “고조 할아버지 수형 기록과 집행원부 등을 국가기록원에서 찾아, 2002년 국가 유공자로 지정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