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광영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영어 보드게임지도사 양성 교육에서 마커스 스퇴어(Marcus Stoehr) 강사와 교육생들이 게임을 통해 영어를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이영순
마커스 스퇴어 강사가 교육생들에게 보드게임 규칙을 설명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게임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영어 표현을 익히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진=이영순
보드게임에 집중한 교육생들이 승리를 향해 전략을 세우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게임의 묘미에 웃음과 긴장감이 교차한다. 사진=이영순
마커스 선생은 성인을 대상으로 보드게임을 진행하는 일이 무척 신나고 즐겁다고 말한다. 언어를 배울 때도 즐거움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게임을 함께 즐기는 마음이 앞서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것을 익힐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진=이영순

어르신들의 삶의 경험을 존중하며 배움과 웃음을 나누는 마커스 선생

“게임으로 배운다는 것은 정말 신나고 즐거워요! 배움이 꼭 책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광양시 광영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영어 보드게임지도사 양성 교육 현장. 게임판 위에서 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참가자들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누군가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가 싶으면 순식간에 상황이 뒤집힌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아쉬움 섞인 탄성이 이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자를 장담할 수 없는 보드게임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지난 9월 28일 첫 수업을 시작한 이 교육은 현재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기자 역시 교육생으로 참여해 매시간 새로운 게임을 배우며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이자 보드게임의 즐거움을 전하는 안내자, 마커스 스퇴어(Marcus Stoehr) 선생이 있다.

수업은 가볍게 몸을 풀듯 진행하는 ‘스타팅 게임(Starting Game)’으로 시작해 그날의 메인 게임으로 이어진다. 우노(Uno as A Class)를 비롯해 월드 트레저스(World Treasures), 카 레이싱(Car Racing), 젤리 베어(Jelly Bear), 월드 플래그스(World Flags), 해피 빌리지(Happy Village), 패밀리 패밀리(Family Family), 홉 홉 홉(Hop Hop Hop), 클린 어스(Clean Earth) 등 다양한 게임이 기다린다.

게임마다 규칙도, 승리 전략도 다르다. 어떤 게임에서는 순발력이 중요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기억력과 관찰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다음 수를 예상하며 머리를 굴리다가도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면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길 것 같던 사람이 역전을 당하고, 뒤처졌던 사람이 어느 새 선두에 나선다. 승자가 자주 바뀌니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게임판 위에서는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환경도 잠시 잊힌다. 모두가 같은 규칙을 배우고, 같은 목표를 향해 웃고 즐기는 참가자가 된다.

마커스 선생은 “성인을 대상으로 보드게임을 진행하는 일이 무척 신나고 즐겁다”고 말한다. 언어를 배울 때도 즐거움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게임을 함께 즐기는 마음이 앞서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것을 익힐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에게 보드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함께 웃고, 생각하고, 서로 어울리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다. 놀이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평생 배움을 이어가는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에 있는 스포캔(Spokane) 출신인 마커스 선생은 17년 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꾸려가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순천의 한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지역 내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광양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지금은 사랑스러운 세 딸과 함께 살아가며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품었던 목표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당시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에게 한국에서의 17년은 단순히 일자리를 찾아 정착한 시간이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교사로서 성장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배우는 시간이었다.

마커스 선생이 한국 생활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는 안전함과 편안함이다.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서 교육받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점, 자신 역시 가르치는 일을 하며 안심하고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고맙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이 낯선 나라에서 가정을 꾸리고 삶을 일구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한국 생활에서 그가 발견한 매력은 안전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통시장부터 아울렛까지, 길거리 음식부터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까지, 한국에서의 쇼핑과 외식은 그에게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 처음 한국 전통시장을 찾았을 때는 꽤 놀랐다고 한다. 북적이는 시장에서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고르고, 상인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나 주말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식당 문화도 처음에는 신기했다. 직원이 계속 곁에서 필요한 것을 묻는 대신 테이블의 호출 벨을 누르면 바로 와서 도와주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단연 삼겹살이다.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에 곁들여 먹는 다양한 밑반찬, 취향에 맞게 즐기는 음료까지. 단순하면서도 풍성한 한 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삼겹살이 생각나지 않는 날에는 감자탕을 찾는다. 미국의 수프나 스튜와는 다른 한국 국물요리의 깊은 맛도 좋아한다.

물론 모든 음식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다. 해산물은 즐기지 않아 회에도 도전해 보았지만 선뜻 마음이 안 간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는 비 오는 날 김치전에 막걸리를 꼭 맛보라고 권한다.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정취와 맛이 어우러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한국 문화 중 하나는 명절에 가족과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다. 추석을 비롯한 명절에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시간이 무척 좋다고 한다. 음식을 함께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 속에서 한국 사회의 따뜻한 면을 발견한다.

마커스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길이 머무는 대목이 있다. 그는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어르신들은 자신보다 훨씬 많은 삶의 경험을 지닌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아오며 겪은 수많은 일과 그 속에서 얻은 지혜는 책이나 인터넷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는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마음은 보드게임 수업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교육생이라는 관계를 넘어, 서로 다른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즐기는 것이다. 게임 규칙을 익히는 동안에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승패가 갈리는 순간에는 함께 웃는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어 표현을 배우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놀이의 즐거움을 되찾는 시간이다.

마커스 선생은 한국어로도 최대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하려고 노력할 때 실수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가르치는 일도, 배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즐거움이 있을 때 배움은 더 오래 기억되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보드게임은 바로 그런 시간을 만들어 준다. 규칙을 이해하고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사고력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소통할 기회도 얻는다. 무엇보다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은 일상에 활력을 더한다. ‘웃음이 최고의 보약’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혹시 아직 보드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면, 오늘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기 좋은 쉬운 게임 하나를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 승패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규칙을 익히며 함께 웃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다른 가정환경과 생활방식 속에서 살아왔더라도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는 같은 인간이다. 함께 웃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살아간다면 조금 더 따뜻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영어 보드게임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그 역시 배움을 멈추지 않는 학생이다. 게임판 위에서 마지막까지 승자를 알 수 없듯, 인생에서도 누가 누구에게 더 많이 가르치고 배우게 될지는 미리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서로에게서 배울 것이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마커스 선생은 아직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르신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

광영도서관의 보드게임판 위에서는 오늘도 웃음이 이어진다. 영어를 배우러 왔다가 놀이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게임을 하다가 서로의 삶을 알아가며, 함께 웃다가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

어쩌면 마커스 선생이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수업은 게임의 규칙이나 영어 표현을 넘어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국경이 없으며, 함께 웃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좋은 선생님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