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서초등교사" 1907년 사립 희양학교로 출발해 100년이 넘는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광양서초등학교의 전경입니다. 푸른 천연 잔디 운동장 뒤로 현대식 교사와 이를 든든하게 호위하듯 서 있는 아름드리 노거수들이 한데 어우러져, 지역 인재 양성의 요람다운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교정에 울려 퍼진 100년의 종소리, 희망을 틔우다

지난 제28회에서는 교통의 중심지에서 문화예술의 심장부로 부활한 옛 광양역 부지를 돌아보았다. 이번 제29회는 1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지역 인재 양성의 요람이자,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버텨낸 광양 근대 교육의 출발점, ‘광양서초등학교’로 향한다.

녹음이 짙어가는 교문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연두색 조끼를 입은 반가운 얼굴들이 기자를 맞이한다. 바로 학교 지킴이로 활약하고 계시는 광양시니어클럽 일자리 참여자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읍내의 소소한 살아가는 이야기와 학교 역사에 얽힌 귀한 회고를 주고받았다.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백발의 지킴이들과 푸른 잔디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 그리고 교정을 호위하듯 서 있는 거대한 고목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학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초등향나무” 광양서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수문장처럼 자리를 지켜온 든든한 한 쌍의 쌍향나무 노거수입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학생들의 등하굣길을 배웅해 온 학교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사계절 내내 푸른 빛을 뽐내며 교정의 깊은 역사와 전통을 묵묵히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서초등 왕버들” 교정 뒷길에 우뚝 솟아 푸른 하늘을 수놓고 있는 거대한 왕버들나무 노거수입니다. 오랜 세월의 깊이를 증명하듯 굵고 웅장한 밑동을 자랑하는 이 나무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학교 뒷자리를 아늑하게 지켜주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생태적인 휴식처를 선사해 온 귀중한 자연유산입니다. 사진=문성식

구한말의 어둠 속에서 피어난 민족 교육의 서막

광양서초등학교의 역사는 국권 피탈 직전인 구한말, 암흑 속에서 등불을 켜려 했던 선조들의 교육 구국 정신에서 출발한다. 대한제국이 광양군에 마지막으로 봉했던 서상붕 군수의 주도로 1907년 9월, 옛 향청(鄕廳) 자리(옛 군민회관과 제일약국을 잇는 골목)에 ‘사립 희양학교(晞陽學校)’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개교 당시에는 단 1개의 교실에서 42명의 전교생이 수학한 소박한 규모였다.

이후 1910년 6월 박희권의 주도로 ‘사립 광명학교’로 개명해 광양향교 명륜당을 빌려 배움을 이어가다, 1911년 11월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광양공립보통학교’로 정식 개교하게 된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최종 설립 인가처는 국권을 강탈한 일제 통감부였다.

일제의 차별과 탄압은 교묘했다. 일제는 1914년 인근에 왜인(일본인) 자녀들만 분리해 가르치기 위한 ‘광양공립심상고등소학교’를 세워 운영했다. 이 왜인 학교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우리 정부가 인수해 ‘광양동초등학교’로 재탄생하며 왜색을 지워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엄연한 조선인 차별의 상징이었다. 이에 맞서 광양서초등학교는 1938년 광양서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광양서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는 수난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배움의 터전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해방의 환희와 전쟁의 비극을 품은 운동장

광양서초등학교의 운동장은 광양 근현대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이 펼쳐진 역사적 무대였다. 1945년 8월 17일, 광양군민들이 조국의 해방을 축하하며 눈물과 환호로 가득 채웠던 ‘범군민대회’가 열린 곳이 바로 이 운동장이었다. 당시 궁핍했던 시대상 탓에 운동장 일부가 곡식을 키우는 콩밭이었음에도, 시국수습군민회의 김완근 위원장의 뜨거운 연설에 군민들은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학교는 현대사의 거대한 비극에 휘말렸다.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 당시, 이곳은 진압군 15연대 1대대의 주둔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1949년 9월 빨치산의 광양 습격 때 격렬한 공격을 받았고, 1951년 1월에도 토벌군의 주둔지로써 다시 한번 격전지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역사적 상흔을 기려 현재 이곳은 ‘여순사건 광양 유적지 4호’로 등록되어 있다.

뒤이은 6·25 전쟁 중에는 유엔기의 폭격으로 학교 건물이 전소되는 비극을 맞았다. 제1회 졸업기념사진 속에 당당히 남아있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목조 교사는 그렇게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인민군 점령기에는 인민군의 웅변 대회가, 한국군 수복기에는 반대의 정치 선전이 번갈아 펼쳐지며 이념의 슬픔이 반복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배움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교사를 잃은 학생들은 군용 천막을 임시 교실 삼아, 미군이 배급한 밀가루죽으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피어난 눈물겨운 학구열이었다.

테마가 있는 학교 숲, 미래를 가꾸는 녹색 교정

모진 풍파를 이겨낸 학교는 2007년, 광양 지역 최초로 ‘개교 100주년’이라는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이어 2010년 6월에는 ‘꿈을 키운 100년! 자랑스런 100년!’이라는 슬로건 아래 성대한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다듬었다.

현재 29,274㎡의 넓은 부지 위에는 시원하게 펼쳐진 천연 잔디 운동장과 함께, 역사를 증명하는 노거수(老巨樹)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교정 곳곳에 자리한 수령 100년이 넘는 왕버들나무, 히말라야시더(설송), 그리고 교문 앞을 든든하게 지키는 한 쌍의 향나무는 학교의 산증인이다.

또한, ‘그린스쿨(Green School)’ 사업을 통해 80년 이상 된 낙우송 2주와 가시나무 5주를 비롯해 70여 종 900여 주의 수목이 어우러진 ‘테마가 있는 아름다운 학교 숲’을 가꾸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1인 1나무 가꾸기’를 통해 자체적으로 자연을 보호하고, 학부모와 시의 협조로 생태 환경을 유지 관리하는 이 교정은 이제 인근 주민들과 시니어, 아이들이 함께 찾아와 산책과 놀이를 즐기는 소중한 지역 공동체의 쉼터가 되었다.

“서초등유적판” 광양서초등학교 교정 한편에 세워진 ‘여순사건 광양 유적지 4호(광양서국민학교)’ 안내판입니다.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의 주둔지이자 빨치산의 치열한 공격 대상이었던 비극적 현대사의 상흔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진 풍파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조들의 발자취와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평화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서초등하교” 수업을 마친 남매가 아름드리 노거수가 우거진 교정 뒷길을 따라 다정하게 하교하는 뒷모습입니다. 일제의 탄압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천막 교실을 세워 배움의 대를 이어왔던 옛 선조들의 숭고한 땀방울 위로, 이제는 평화롭고 울창한 학교 숲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가방을 메고 나란히 걸어가는 남매의 발걸음은 광양서초등학교가 지나온 지난 100년의 찬란한 기억을 품고, 새로운 미래의 100년을 향해 희망차게 나아가는 서정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사진=문성식

시니어 기자의 시선, 고목의 나이테에 새겨진 우리들의 꿈

울창한 학교 숲 사이로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기자는 잠시 상념에 젖는다. 우리 시니어 세대에게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은 비록 검정 고무신이 닳도록 뛰놀던 가난한 나날이었지만, 꿈만큼은 저 높은 히말라야시더 나무처럼 푸르렀던 시절이었다. 겨울철 난로 위에 층층이 쌓아 올렸던 양은 도시락의 온기는 이제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지만,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배움을 향해 눈을 반짝였던 열정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번영의 뿌리는 결국 100년 전 일제의 탄압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천막 교실을 지켜냈던 선조들과 우리 세대의 땀방울에 닿아 있다. 교정의 고목들이 품은 수많은 나이테는 바로 그 인내와 성장의 기록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과거 100년의 발자취가 오늘의 품격 있는 광양을 만들었듯, 오랜 노거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잔디밭을 뛰노는 저 아이들이 광양의 새로운 100년을 책임질 위대한 자산이다.

마치며, 기억을 넘어 미래의 100년으로 걸어가다

사립 희양학교로 시작해 오늘날에 이른 광양서초등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광양 근대사 그 자체이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2만 2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지역의 중심을 잡아준 이 학교는, 이제 과거의 상흔을 아름다운 숲과 예술적 쉼터로 승화시키며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가 되어주고 있다. 교내 한쪽에 소중히 마련된 ‘개교 100주년 기념관’의 역사적 기록들처럼, 빛바랜 흑백 사진 속 선배들이 보여준 배움의 열정을 기억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대를 읽는 안목과 공동체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다음 제30회 예고]

다음 제30회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정겹게 공존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광양읍 도시재생과 근대 건축 — 골목길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