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녹음이 짙어가는 봉강면 바구산 자락 아래,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강희보·강희열 형제 의병장의 위패를 모신 사당 '쌍의사'의 정문인 외삼문입니다. 이 문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평범한 선비와 무관이 어떻게 구국의 영웅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입구이기도 합니다. 사진=문성식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 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백운산 자락의 포근한 품에 안긴 봉강면 신촌마을 회관과 마을 입구의 전경입니다. 회관 앞에는 ‘형제의병장 묘역·쌍의사’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마을 안내도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이곳이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강희보·강희열 형제 의병장의 탄생지이자 호국 정신이 깃든 ‘형제의병장마을’임을 자부심 있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신촌마을의 정겨운 소란을 넘어 호국의 성역으로

광양의 산하는 이제 막 화려했던 봄꽃의 잔상을 뒤로하고, 온 산과 들판이 싱그러운 연두색 이파리로 짙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진월의 푸른 바다를 누볐던 ‘물길 전문가’ 어영담 장군을 만났습니다. 오늘은 그 바다를 뒤로하고 백운산 줄기가 포근하게 감싸 안은 고요한 정자와 풍요로움이 넘치는 동네, 봉강면 신촌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우리 역사 속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름만으로도 가슴 뜨거워지는 형제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안내판이 기자를 반겨줍니다.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나라와 내 고향 광양을 지키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강희보(姜希輔, 1560~1593)와 강희열(姜希悅, 1562~1593) 형제 의병장의 고향입니다.

동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낯선 기자의 방문이 못마땅한지 동네 강아지들이 일제히 짖어대며 기자를 맞이합니다. 마당에서 고사리를 말리던 어르신의 손길이 분주한 이곳은 평범한 삶의 터전이지만, 마을 뒤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공기는 이내 엄숙해집니다. 기자는 일상의 정겨운 소란을 뒤로하고, 두 형제의 숭고한 넋이 깃든 충절의 성역, 쌍의사와 묘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봉강면 신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구산 등산로 중턱에 자리한 강희보·강희열 형제 의병장의 묘소입니다. 생전의 우애를 증명하듯 나란히 놓인 두 기의 묘분과 그 곁을 지키는 묘비가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곳 묘역에서 시선을 멀리 던지면 형제가 나고 자란 신촌마을은 물론, 그들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광양의 산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진=문성식

나란한 묘소 위로 피어난 보라색 제비꽃과 광양의 조망

바구산 등산로 중턱에 자리한 묘역에 들어서면, 생전의 우애를 증명하듯 두 형제의 묘소가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그 평온한 무덤 앞에는 수줍게 고개를 든 보라색 제비꽃들이 마치 형제를 지키는 작은 파수꾼처럼 기자를 반겨줍니다.

묘역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실로 장관입니다. 두 형제의 무덤 머리 아래로 그들이 나고 자란 신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선을 멀리 던지면 광양 일대는 물론 저 멀리 순천만까지 이어지는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집니다. 이 아름다운 강산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바친 청춘과 목숨의 무게가 웅장한 풍광과 겹쳐지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붓과 창을 들고 스스로 뛰어든 구국의 길, 그리고 진주성에서의 산화

광양의 아들 강희보·강희열 형제는 1560년경 이곳 신촌마을에서 부사 강천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 강희보는 광양에서 나고 자란 선비였고, 동생 강희열은 무과에 급제하여 구례 석주관을 지키던 조방장이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형 강희보는 의병 100여 명을 모아 분연히 일어났고, 동생 강희열 역시 휘하 군사를 이끌고 형과 합세하여 경남 산청(단성)에서 왜군과 싸우던 백부 강인상을 구원하며 구국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특히 동생 강희열은 의병 200여 명을 훈련시키며 ‘날 비(飛)’ 자를 군표로 삼아 남원 지역까지 진출하는 등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이들의 마지막은 1593년 6월, 10만 왜군이 에워싼 영남의 요충지 진주성이었습니다. 당시 성 안의 아군은 고작 1만여 명이었으나, 형제는 김천일 장군의 지휘 아래 죽음을 각오한 9일간의 혈투를 벌였습니다. 그 치열한 사투 속에서 형 강희보는 6월 27일에 전사하였고, 동생 강희열은 이틀 뒤인 29일 성이 함락되던 날 끝까지 적진으로 돌격하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비록 성은 함락되었으나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혼비백산한 왜군은 병력 손실이 너무 커 결국 호남 진출을 포기하고 철군해야만 했습니다. 광양 형제의 고귀한 희생이 곧 호남과 조선의 생명선을 지켜낸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강희보·강희열 형제 의병장의 위패를 모신 사당, 쌍의사의 전경입니다. 사진 중앙의 본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의 삼문과 조화를 이루어 호국 영웅을 모신 성역다운 당당한 위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진=문성식

닫힌 문 너머로 느껴지는 웅장한 충절, 쌍의사(雙義祠)

묘역 아래 자리한 사당 ‘쌍의사(雙義祠)’는 여느 사당과 비교해도 그 규모와 위용이 남다릅니다. 입구의 붉은 홍살문을 지나 마주하는 사당은 동재와 서재, 내·외삼문을 고루 갖추어 형제의 깊은 충절을 대변하듯 당당한 자태를 뽐냅니다. 본래 이 성역은 1970년, 강씨 문중과 광양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강희보·강희열 형제장군 숭모회’를 창립하며 묘소와 묘비를 보수하고 사당을 건립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대대적인 이축 및 중건 작업을 거쳐 지금의 장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취재 당일, 사당의 대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낮은 담장 너머로 전해지는 묵직한 기운은 형제의 일관된 충심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조정에서도 일찍이 이들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영조 40년(1764년)에 형 강희보에게는 형조좌랑(정6품)을, 동생 강희열에게는 병조참의(정3품)를 추증하며 그 숭고한 뜻을 기렸습니다.

이러한 호국 정신은 43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광양의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근의 군부대에서는 두 형제의 이름을 따서 ‘희보 부대’와 ‘희열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할 만큼 그 존재감이 뚜렷합니다. 매년 음력 10월 3일이면 이곳 쌍의사에서는 장엄한 제례가 올려지며, 형제가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이 땅의 평화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거대한 보호수 아래 텅 빈 정자, 농촌의 쓸쓸한 현실.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신촌마을 정자의 풍경입니다. 수백 년 세월을 버틴 보호수는 여전히 푸르지만, 정작 쉬어갈 사람은 보이지 않는 농촌의 현실이 텅 빈 정자 위로 겹쳐져 아쉬움을 더합니다. 사진=문성식

시니어 기자의 시선, “함께 걷는 의로운 길

형제가 나란히 한 전장에서 목숨을 바치고, 죽어서도 한곳에 묻힌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도 위기의 순간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의로운 길을 선택한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가족애와 애국심을 봅니다.

우리 시니어 세대도 그렇습니다. 혼자 앞서가는 삶보다 곁에 있는 이와 보폭을 맞추며, 우리 공동체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 형제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나란히 핀 제비꽃처럼, 우리도 서로를 지지하며 이 땅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파수꾼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음 제18회 예고,

임진왜란의 거친 불길 속에서 나라를 구한 강희보·강희열 형제 의병장의 뜨거운 혼을 뒤로하고, 이제 우리는 시간을 건너뛰어 국권 침탈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구한말로 향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다시금 벼랑 끝에 섰을 때, 광양의 선비 정신은 붓을 꺾고 다시 한번 의로운 창검이 되었습니다. 백운산 자락을 거점으로 일제의 침략에 맞서 격렬한 항일 투쟁을 전개했던 황순모 장군과, 그 의기를 이어받아 광양의 맥박을 깨운 황병학 의병장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망국의 한을 품고 백운산 골짜기마다 메아리쳤던 그날의 함성,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지막 선비 의병장’들의 발자취를 찾아 다음 여정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고 정보]

주요 장소: 전남 광양시 봉강면 신촌길 21-6 (형제의병장마을)

배향: 진주 창렬사 및 광양 쌍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