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개운한 국물이 특징인 소머리한우곰탕 한 상” 적당히 담긴 머리고기와 정갈한 반찬이 어우러져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한 끼를 완성한다. 사진=문성식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섬진강 변에 자리한 ‘박가네한우곰탕’ 외관” 깔끔한 간판과 소박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식당으로, 취재 길에 잠시 들러 한 끼를 해결하기에 부담 없는 곳이다. 사진=문성식

봄은 꽃의 계절입니다.

매화가 지고 나면 산수유가 피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뒤를 잇고, 마지막으로 벚꽃이 봄을 덮습니다. 예전에는 꽃이 차례로 피어 시간을 따라 흐르는 듯했는데, 요즘은 한순간에 피었다가 금세 져버립니다.

섬진강을 따라 다압과 금천 일대를 취재하던 날이었습니다. 꽃이 지고 난 뒤의 강변은 한결 조용했습니다. 드문드문 걷는 사람 몇 명, 그리고 강물 소리만이 봄의 끝자락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자장면 생각이 나 반점으로 향했지만, 이미 문을 닫은 뒤였습니다. 오후 1시 10분. 식당마다 점심 장사를 마친 시간, 길 위의 발걸음이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박가네한우곰탕’이었습니다.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오후 준비를 하는 손길이 분주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앉으세요”라는 한마디가 따뜻하게 건네집니다. 그 말 한마디에 허기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습니다.

잠시 후 상 위에 놓인 것은 소머리한우곰탕 한 그릇이었습니다.

“천천히 걷고, 잠시 머무는 섬진강 길—봄날의 여유가 흐르는 순간” 벚꽃이 흐드러진 섬진강 변 산책로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봄 풍경을 즐기고 있다. 사진=문성식

가격은 13,000원. 맑은 국물 위로 파가 올려지고, 머리고기가 적절히 담겨 있습니다. 따끈한 흰쌀밥과 정갈한 반찬이 함께 차려집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한 한 상입니다.

국물 한 수저를 떠 입에 넣습니다.

맑고 개운한 맛이 먼저 입안을 적시고, 뒤이어 은은한 깊이가 남습니다. 과하게 기름지지 않아 부담이 없고, 땀 흘린 뒤 먹기 좋은 깔끔한 맛입니다. 적당히 들어간 머리고기는 씹을수록 고소함을 더하며 허기를 차분히 달래줍니다.

이곳의 곰탕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속을 편안하게 풀어주는 맛이 특징입니다. 빠르게 배를 채우는 음식이라기보다, 천천히 몸을 데우는 한 끼에 가깝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집안에 누군가 아프면 어머니는 큰 솥에 곰탕을 끓였습니다. 하루 종일 장작불을 지피며 고기를 삶아내던 그 시간, 부엌에는 늘 김이 자욱했습니다. 그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풀리던 기억입니다.

곰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시간을 끓여낸 국물입니다.

오랜 시간 불 앞에서 기다려야 하고, 그 기다림 속에서 깊은 맛이 완성됩니다. 그래서인지 이 한 그릇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식당 안 분위기도 인상적입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박가네한우곰탕’ 내부” 주인과 종업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동네 식당 특유의 정겨움이 전해진다. 사진=문성식

주인과 종업원 사이에는 가족 같은 자연스러운 호흡이 느껴집니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꾸밈없는 정감이 묻어납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오래된 동네 식당 특유의 따뜻함이 담겨 있습니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서둘러 먹고 나가는 식사가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섬진강 바람이 다시 불어옵니다.

꽃은 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따뜻해졌습니다.

한 그릇의 곰탕이 전해주는 것은 단순한 포만감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품은 온기였습니다.

■ 박가네한우곰탕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원동길 70-22(061-772-4449)
대표 메뉴: 소머리한우곰탕(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