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5일, 광양시 진상면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32개 마을 곳곳을 누비며 지역의 파편화된 기억을 모아온 ‘진상면 향토지’의 발간 기념식이다. 시니어 기자의 길을 걸은 지 어느덧 6개월. 기자가 행사 현장에서 목도한 것은 단순한 책 한 권의 발간이 아니라 소멸해가는 지역의 정체성을 붙잡으려는 뜨거운 집념이었다.
기념식장에 놓인 붉은 양장본 향토지를 보며 기자의 고향 전주를 떠올렸다. 2019년 발간된 ‘고향 호성동 농은마을의 삶’이라는 단행본은 비포장도로 위 초만원 버스를 타고 다녔던 나의 유년 시절을 아련한 추억으로 되살려줬다.이러한 기록의 가치는 현장에서 더욱 빛난다. 최근 취재차 방문했던 진상면 지계마을 회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꽃다운 나이에 산골로 시집와 농사지은 봇짐을 이고 하동장에 가기 위해 12개 고갯길을 넘나들던 세월. 그 눈물겨운 여정은, 기록되지 않았다면 그저 개인의 고단한 고생담으로 잊혔을 일이다.
농촌 지역의 역사는 대개 어르신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에 의존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기억은 흐릿해지고, 근거 없는 말들이 허공으로 흩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을 모르는 사람은 평생 어린아이로 사는 것과 같다”는 키케로의 말처럼, 기록이 없는 공동체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특히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오늘날, 지역의 고유한 생활 문화가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이번 향토지 발간은 구전으로 떠돌던 우리네 이야기들을 정밀한 사료와 증언을 통해 ‘역사’로 격상시킨 ‘기록의 승리’다. 백운산 매봉에서 시작된 수어천 물줄기가 32개 마을을 하나로 잇듯, 이 향토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를 잇는 단단한 가교가 될 것이다.이제 이 기록물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지역의 자긍심을 지탱하는 살아있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진상의 역사를 지켜낸 이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이 거울 속에 담긴 정신이 미래 세대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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