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첫인상은 우리가 가꿔야죠." 이현환 이장과 주민이 합심하여 화단을 정비하며 밝게 웃고 있다.사진=이호선
‘진상면 향토지’에 기록된 마을의 모습. 산세와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죽전마을(상)·신전마을(하)의 원형에서 오랜 역사가 느껴진다. 사진=이호선
죽전마을회관 뒤편, 투박하지만 정교하게 쌓인 돌담길이 굽이굽이 이어지며 고향의 향수와완연한 봄기운을 자아내고 있다. 사진=이호선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 신전마을. 하얀 매화가 꽃구름처럼 만개한 가운데, 마을 입구에 태극기가 힘차게 휘날리며완연한 봄기운을 전하고 있다. 사진=이호선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신전마을 정류장에서 이현환 이장이 ‘신전.죽전마을’의 미래와 마을 가꾸기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이호선

봄기운이 완연한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 수어댐을 지나 굽이진 길을 따라가면 하얀 매화 꽃구름 속에 폭 파묻힌 신전마을과 죽림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는 활기찬 마을 가꾸기 현장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83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작은 마을들이 지금 ‘꽃밭 정원’으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본래 광양현 동면 지역이었던 두 마을은 각기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 1600년경 재령 이씨가 터를 잡은 죽림(竹林)마을은 과거 웅동천, 성두천, 어치천 세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 하여 ‘대합수(大合水)’라 불렸다. 이후 울창한 대나무 숲의 이름을 따 죽림이 되었다.

이웃한 신전(新田)마을은 ‘새로 개간한 밭’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1912년 문헌에 처음 등장한 이곳은 웅동마을로 향하는 길목의 ‘바늘 바구’ 소(沼)와 산자수려한 경관 덕분에 최근 도로가 정비되며 더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두 마을의 삶은 1978년 수어댐준공을 기점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댐 준공 이후 전통적인 밭농사 중심에서 나무 농사로 체질을 개선했다. 초기에는 산비탈을 밤나무가 채웠으나, 현재는 감나무와 매실, 고사리가 마을의 주 소득원으로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현재 두 마을에는 실제 39세대(신전 18, 죽림 21), 8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비록 고령화된 농촌이지만, 투박하게 쌓인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향의 정취는 여전히 따뜻하고 넉넉하다.

기자가 찾은 현장에서는 마을 가꾸기 사업이 한창이었다. 이현환 이장과 주민이 화단에 쪼그려 앉아 잡풀을 솎아내고 새로운 생명을 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삭막한 도로변 옹벽 위로 초록의 기운이 채워지자 마을 전체가 한층 활기차게 살아났다. 단순히 깨끗한 거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함께 소통하며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신전마을 정류장에서 만난 이현환 이장은 마을의 살림꾼이자 활력을 불어넣는‘혁신 전도사’였다. 짧은 대화에도 마을에 대한 이현환 이장의 깊은 애정이 녹아 들었다.

“우리 마을은 신전과 죽림 두 동네가 모여 ‘죽전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구들이 조금 떨어져 있다 보니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살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제 소망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마을 주변을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밭 정원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매일 아침 기분 좋게 산책하고, 외지 사람들도 매화 향기에 끌려 찾아왔다가 마을의 정에 듬뿍 취해갈 수 있는 그런 동네를 만들고 싶습니다.”

매화 향 가득한 골목길을 따라 주민들의 손길이 닿은 화단은 이제 마을 공동체의 정을 이어주는 소중한 통로가 되고 있다. 화려한 축제장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진상면 신전·죽전마을. 이곳의 봄은 매화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로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