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원, 신재 최산두 유품전 및 학술대회 성황리 개최

정인화 광양시장은 조선 중종시대 유학자이며 문인이었던 최산두 선생은 중앙정치 무대에서 개혁적 공직자의 길을 걸었던 선비였다면서 박혜강 작가의 책 ‘조선의 선비’에서 신재 선생의 위대한 삶이 잘 묘사되었다는 사례를 전하면서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선생의 삶과 남겨진 시를 통해 역사와 문학적 가치를 잘 규정해 주기 바란다는 축사를 하였다. 아울러 뜻 깊은 대회를 위해 수고해 준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사진=정경환
광양문화예술회관 제 1전시실에는 최산두 선생의 친필  유품과 교지, 문집 등 유물이 전시되었다. 행사에 참가한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문집과 교지 등 유물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정경환
중종 임금이 최산두에게 내린 옥홀(玉笏)이 전시 유물 중 가장 뛰어 났다. 옥홀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우리나라에 유일한 유물이다. 옥홀은 중종 8년(1513년) 최산두가 별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하사 받은 것으로 청백색 옥(玉)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인유경보명유신’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조복이나 제복 착용 시 손에 잡았던 의식 용구라고 한다. 사진 왼쪽 세로 방향으로 길게 놓인 것이 옥홀이다. 사진 =정경환
최길용 전(前) 전북대학교 교수가 ‘신재 최산두의 삶과 학문’연구 논문을 요약하여 발표했다. 화순 동복으로 유배 중에도 학관(學館)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여 하서 김인후, 미암 유희춘 같은 큰 유학자를 배출하고 호남의 성리학 사문을 이룬 위대한 학자로 규정했다. 사진=광양문화원
김진욱 조선대학교 교수가 ‘신재 시의 문학적 특성’에 관한 주제 발표를 했다. 신재 시의 특징은 칠언절구를 즐겨 지었으며 16세기 문학적 변화를 추구한 호남 사림의 사조가 깃들어 있다고 했다. 또 유학자며 개혁적 공직자로서 자성(自省)의 시와 자연을 관조하는 시를 썼으며 시적 아름다움이 있는 시어를 사용해 문예 미가 뛰어나다고 평했다. 전해 진 것이 18 수라서 편 수가 적은 것은 아쉽고 향후 연구의 여지가 크다고 했다. 사진=광양문화원
주제 발표 후 주제 발표자와 전문가 일곱 분의 패널이 종합 토론 및 질의 응답을 하였다. 왼쪽부터 백숙아 광양학연구소장,김진욱 조선대 교수, 최길용 전 전북대 교수, 조태성 전남대 교수, 송은정 문학박사, 조지형 전남대 교수,정미숙 광양학연구소 연구원. 사진=광양문화원
개회식을 마치고 내빈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다섯 번째부터 김종호 광양문화원장, 정인화 광양시장, 최병춘 초계 최씨 문중 대표. 뒷 줄 왼쪽부터 세 번째 백숙아 광양학연구소장, 네 번째 최길용 전 전북대 교수, 여섯 번째 조태성 전남대 교수, 여덟 번째 조지형 전남대 교수. 사진=광양문화원

광양문화원(원장 김종호)은 17일 광양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과 제1전시실에서 신재 최산두의 삶과 학문을 조명하는 학술대회와 유품전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광양문화원의 2024년 역사문화발굴자원 및 교육사업 일환인 ‘신재 최산두의 삶과 문학의 재조명’ 사업 결과물로, 광양문화원이 추진하고 광양시가 후원했다.

제1전시실에서는 신재의 친필과 교지, 문집 등 유물이 전시됐고, 소공연장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신재의 삶과 학문의 업적을 조명하고 그의 시문학적 특성과 유물·유적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산업 개발 방안을 논의하는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김종호 광양문화원장은 개회식 인사말에서 “백운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위대한 학자 최산두 선생은 광양의 천 년 역사에 한 번쯤 있을 법한 큰 인물”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잘 알지 못했던 신재 선생의 업적을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어 뜻깊다”고 말했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축사에서 “조선 중종 시대의 유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신재 선생은 중앙 정치 무대에서 개혁적 공직자의 길을 걸었던 선비”라며 “이번 학술대회가 선생의 삶과 시를 통해 역사와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광양문화원은 ‘신재 최산두의 삶과 문학의 재조명’ 사업 이후 동화책과 단행본 발간, 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통해 인문학적·예술적 문화콘텐츠로 확대 발전시키고, 이를 청소년 교육 자료 및 지역민과 관광객을 위한 문화공동체 의식 함양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재 최산두는 1482년(성종 13년) 광양시 봉강면 부저리에서 태어났다. 8세부터 시문을 짓는 등 학문적 소양이 뛰어났으며, 22세에 진사시 장원으로 성균관에 입학해 31세에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등에서 공직을 맡았고, 37세에 정4품 춘추관 편수관에 올랐다. 기묘사화로 유배된 뒤에도 후학 양성과 성리학 진흥에 힘썼으며, 1536년 54세로 생을 마쳤다.

정경환 기자
정경환 기자
문화유산 답사 여행과 글쓰기 동아리 활동을 하며 글 벗들과 정서적 풍요를 가꾸는 삶을 살고 있음. 숲과 정원에 관심이 있고 식물가꾸기와 음악활동을 취미로 즐김.

관련기사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세요.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