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원(원장 김종호)은 17일 광양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과 제1전시실에서 신재 최산두의 삶과 학문을 조명하는 학술대회와 유품전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광양문화원의 2024년 역사문화발굴자원 및 교육사업 일환인 ‘신재 최산두의 삶과 문학의 재조명’ 사업 결과물로, 광양문화원이 추진하고 광양시가 후원했다.
제1전시실에서는 신재의 친필과 교지, 문집 등 유물이 전시됐고, 소공연장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신재의 삶과 학문의 업적을 조명하고 그의 시문학적 특성과 유물·유적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산업 개발 방안을 논의하는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김종호 광양문화원장은 개회식 인사말에서 “백운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위대한 학자 최산두 선생은 광양의 천 년 역사에 한 번쯤 있을 법한 큰 인물”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잘 알지 못했던 신재 선생의 업적을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어 뜻깊다”고 말했다.
정인화 광양시장은 축사에서 “조선 중종 시대의 유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신재 선생은 중앙 정치 무대에서 개혁적 공직자의 길을 걸었던 선비”라며 “이번 학술대회가 선생의 삶과 시를 통해 역사와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광양문화원은 ‘신재 최산두의 삶과 문학의 재조명’ 사업 이후 동화책과 단행본 발간, 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통해 인문학적·예술적 문화콘텐츠로 확대 발전시키고, 이를 청소년 교육 자료 및 지역민과 관광객을 위한 문화공동체 의식 함양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재 최산두는 1482년(성종 13년) 광양시 봉강면 부저리에서 태어났다. 8세부터 시문을 짓는 등 학문적 소양이 뛰어났으며, 22세에 진사시 장원으로 성균관에 입학해 31세에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등에서 공직을 맡았고, 37세에 정4품 춘추관 편수관에 올랐다. 기묘사화로 유배된 뒤에도 후학 양성과 성리학 진흥에 힘썼으며, 1536년 54세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