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간판과 삼일절

외국어 간판이 온 사방에 넘치고 있다. 영어, 심지어 일본어로 표기된 외국어 간판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옥외광고물법시행령 제12조를 보면 간판은 원칙적으로 한글로 써야 한다. 외국문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한글과 같이 써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원칙적으로 외국어만으로 쓴 간판은 불법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로 일본어 간판을 사용하는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메뉴판 내부 인테리어도 일본풍으로 꾸미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개 사람들은 일본어 간판을 볼 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생소하다는 의견을 보인다. 또 일본풍 가게는 이국적인 특색이 있고 현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반응도 있다.

얼마 전 여수에 다녀왔다. 여수 진남관은 국보이자 호국의 성지다. 진남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의 자부심으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남관 앞 중앙동 로터리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그런데 동상 뒤편 가게에서 일본어로 쓴 간판과 일본어를 우리말로 쓴 간판을 봤다. 만약 이 가게 주인이 일본 사람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가게 주인도, 그것을 아무런 느낌 없이 본다면 우리 자신도 뭔가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부산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에는 특이하게도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 있다. 2005년 수안역 건설공사 중에 동래읍성 해자가 발견됐다. 해자는 성 밖에 땅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해 적의 침범을 막는 시설이다.

발굴된 해자는 좁은 구간임에도 임진왜란 당시 전투에서 사용된 다양한 무기류와 100명 안팎 사람들 유골이 출토됐다. 발굴에 참여한 학자에 따르면 칼로 예리하게 절단된 5세쯤 된 어린 아이와 여자들의 두개골, 조총에 맞은 두개골 등이 다량으로 발견돼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래서 동래읍성 전투를 조선판 킬링필드 현장이라고 한다. 또한 발굴된 해자가 극히 일부분임을 감안할 때 아직도 더 많은 참상들이 땅속에 묻혀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일본군의 무자비한 칼춤은 전라도 남원에서도 있었다.

황현필 역사연구소장에 의하면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조선인 1만 여명을 학살하고 코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참상이 얼마나 잔혹했던지 전투에 종군한 일본 승려 쿄넨은 ‘조선일기’에서 성(城)안 사람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죽여서 생포한 자는 없었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다. 알 수 없는 이 세상살이, 모두 죽어서 사라지는구나. 남원성 일대를 둘러보니 길에 누워있는 시체가 모래알처럼 많아 눈으로 보기 어렵다고 썼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패악질은 차고도 넘쳐 산을 이룰 정도다. 그런데도 일본은 사과는커녕 혐한으로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 이런 일본을 두고 오죽했으면 일본은 문명을 가장한 야만국이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도 차리지 말라고 했을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본어 간판이, 메뉴가, 일본풍 식당이 늘어나고 있는 건 우리가 대범해서 일까? 배짱이 좋아서 일까? 이건 일본과 싸우자거나 일본어를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일본은 영원히 우리 옆에 있을 숙명이기 때문에 일본을 더 잘 알아야 하고, 일본어를 더 잘 쓰자는 얘기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은 발전할 수 없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 현재는 과거의 종착점이요, 미래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항상 지금부터 잘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삼일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감옥에 가거나, 죽은 것을 생각하면 삼일절은 슬픈 날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도 전국적으로 저항한 선조들의 기개를 생각하면 삼일절은 기쁜 날이다. 오늘 삼일절은 그런 날이다.

박준재 기자
박준재 기자
▪︎광양시니어신문 기자 ▪︎보호관찰소/소년원/위치추적관제센터에서 근무 후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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