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 될 기록들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풍경을 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건너온 ‘성소’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잠들지 않는 정신, 광양의 들불이 타오르다
지난 제22회에서 음미했던 망덕포구의 서늘한 바닷바람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을 전하는 한편, 정병욱 가옥의 마룻바닥 아래서 조선의 맑은 영혼을 지켜낸 시인 윤동주의 절개를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이 눈물겨운 역사는 단순히 흘러간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자 했던 ‘자유’와 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의 거대한 물줄기로 이어졌습니다.
1919년 봄, 서울 탑골공원에서 터져 나온 대자유의 함성은 들불이 되어 이곳 광양의 들판과 장터 골목골목마다 찬란한 저항의 흔적을 새겨놓았습니다. 본 고에서는 광양 땅에서 피어난 3·1 만세운동의 역사를 추적하며, 단독 시위로 침묵을 깨트린 유생부터 서당의 10대 소년들, 포구의 청년들까지 광양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민초들의 저항사를 조명합니다.

광양읍 장터에 울려 퍼진 도화선, 정성련 의사의 단독 시위
전국으로 번져가던 만세운동의 불길이 광양 땅에 당도한 것은 1919년 3월 말의 일이었습니다. 광양 만세운동에 첫 불을 당긴 주인공은 옥룡면 출신의 우직한 유생, 정성련(鄭星鍊)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접하고 고향에서도 의로운 행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결심한 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자택에서 손수 백포 위에 태극기 3본을 그려냈습니다.
거사일은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는 1919년 3월 27일 광양읍 장날이었습니다. 오후 3시 30분경, 정성련 선생은 장터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드높이 흔들며 천지를 뒤흔드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갑작스러운 외침에 장터는 일순간 침묵에 휩싸였으나, 이내 감동한 군중이 몰려들어 열렬히 만세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선생은 현장에서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비록 선생은 1923년 이른 나이에 순국하셨으나, 그가 흔들었던 태극기는 광양 민초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오일장에 번진 함성, 광양읍 5의사와 청년들의 결단
정성련 선생이 사른 불꽃은 광양 청년들의 가슴에 항쟁의 불을 지폈습니다. 3월 29일, 16세 청년 김영호(金永鎬)와 소년 박용수(朴瑢洙), 그리고 청년 김석용(金錫瑢) 등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4월 1일 장날의 대규모 시위를 모의했습니다. 이들은 밤새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했으나 거사 직전 발각되어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의 체포는 민초들의 분노를 깨우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919년 4월 1일부터 4일까지, 광양읍 오일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체포된 동지들의 뒤를 이어 서경식(徐璟植), 박용래(朴龍來), 정귀인(鄭貴仁), 김상후(金尙厚) 선생 등이 앞장섰습니다. 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했습니다. 일제는 기마대까지 동원하여 칼과 총판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탄압을 감행했고, 수많은 민초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이 대열 속에서 50세의 김상후 선생은 시위가 흩어진 후에도 음식점에 모인 민초들 앞에 서서 독립의 당위성을 고취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목숨을 걸고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서경식, 박용래, 김상후, 정귀인, 정성연 선생을 우리는 ‘광양 5의사’라고 부르며, 오늘날 광양읍 우산리에는 이들의 위업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10대 소년들의 백절불굴 기개, 옥룡면 서당 ‘견룡재‘와 7의사
광양 항일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장엄한 페이지는 10대 어린 소년들의 서사입니다. 광양읍 장터에서 선배들이 짓밟히고 끌려갔다는 소식은 옥룡면 운평리의 서당 ‘견룡재(見龍齋)’까지 전해졌습니다. 글을 읽던 이기수(16세), 김영석(16세), 최준수(16세), 서성식(16세), 서찬식(16세), 박병원(15세), 나종길(14세) 등 일곱 명의 소년은 분연히 서책을 덮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소년들은 1919년 4월 2일, 손수 만든 태극기를 품고 만세를 부르며 읍내를 향해 행진했습니다. 그러나 길목을 지키던 일제 헌병대에 가로막혀 피투성이가 된 채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소년들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16세의 이기수는 취조관의 눈을 똑바로 보며 “어린아이도 제 어머니를 부를 줄 안다! 내 나라를 위해 국치(國恥)를 씻고자 한 것인데 너희들의 칼날을 어찌 겁내겠느냐”며 호통을 쳤고, 김영석 역시 “가냘픈 한 몸이 너희 칼에 베여 두 동강이가 날지언정 조국을 향한 마음은 하나뿐이다”라며 항변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옥룡 7의사’라고 부르며, 1966년 건립된 기념비는 현재 옥룡초등학교 교정 안에서 후배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린 나이에 격렬히 저항했음에도 사료 부족 등의 이유로 여전히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채 ‘이름 없는 투사’로 남아있어, 지역 사회의 실질적인 서훈 추진 노력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시회(詩會)로 가장한 포구의 모의, 진월면 청년 임태일과 무적도
만세의 함성은 섬진강 하구의 진월면 포구 마을까지 이어졌습니다. 1919년 4월 15일, 진월면 출신의 청년 임태일(任泰일) 선생은 선소리 앞바다의 아름다운 섬 ‘무적도(無敵島, 현 무접섬)’에서 열리는 시회(詩會)를 이용하여 거사를 계획했습니다. 일제의 눈을 속여 시회에 참석하는 문사들과 서당 학도들을 촉구해 독립만세를 외치고자 한 것입니다.
거사 전날 밤샘 작업으로 태극기를 그린 선생은 거사 당일 무적도에 모인 인파 앞에서 독립 선언을 펼치려 했으나, 첩보를 입수하고 섬을 포위한 일제 헌병대에 의해 만세 한마디 떼지 못하고 체포되었습니다. 비록 함성은 강가에 울려 퍼지지 못했으나, 시회를 항일 투쟁의 장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임태일 선생의 계산 없는 우직함은 깊은 여운을 남겼으며, 그들의 기개는 오늘날 망덕포구를 흐르는 섬진강 물결 속에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시니어 기자의 시선 및 마치며, 100년의 함성, 우리를 깨우다
오늘날 평화로운 광양읍 옛 장터를 거닐며, 우리 발밑의 흙이 100여 년 전 선조들이 흘린 뜨거운 피와 눈물로 적셔진 거룩한 땅임을 되돌아봅니다. 16세 소년의 몸으로 고문대 위에서 백절불굴의 기개를 보여준 옥룡 서당의 소년들과, 안위를 계산하지 않고 동지들을 위해 목청을 높인 투사들의 ‘우직한 기개’는 오늘날 우리 현대 사회가 회복해야 할 위대한 정신적 유산입니다.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조용히 사라지지만, 후손들의 가슴에 기억되는 역사는 영원한 이정표가 됩니다. 옥룡 7의사처럼 아직 역사책의 서훈조차 허락받지 못한 영웅들의 한을 풀어드리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책무입니다. 100여 년 전 광양 하늘을 수놓았던 “대한독립만세”의 당당했던 함성은, 안일에 빠진 우리의 영혼을 세차게 깨우는 영원한 종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다음 제24회 예고]
광양 장터의 뜨거운 항일 열기를 뒤로하고, 다음 회에는 우리 선조들의 뼈아픈 노동의 숨결이 서린 현장으로 향합니다. 일제에 의해 금과 철을 수탈당한 피눈물의 현장, ‘일제강점기 광양 광산 이야기’에서 어두운 갱도 속 피어난 아픈 노동사의 진실을 집중 조명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광양 3·1 만세운동 주요 시설 현황
- 정성련 의사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위치. 3월 27일 최초 단독 시위 기념 (1992년 대통령표창).
- 광양 5의사 3·1운동 기념비: 광양읍 우산리 위치. 4월 1일 장터 대규모 시위 주도 기념 (1992년 대통령표창).
- 광양 7의사 3·1운동 기념비: 옥룡초 교정 내 위치. 견룡재 서당 소년들의 항쟁 기념 (현재 미서훈).
- 진월면 무적도 항쟁지: 진월면 선소리 무접섬 일대. 임태일 선생의 시회 만세 모의지 (1992년 대통령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