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닭 육수에 큼직한 무와 토종닭이 어우러진 ‘닭탕’. 뜨거운 국물 한 숟갈에 담긴 담백한 닭고기와 시원한 무의 맛이 옛날 할머니 밥상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문성식

취재에 몰입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찾아오는 허기는 늘 정직합니다. 이때 마주하는 한 끼의 밥상은 취재의 마무리가 아닌, 현장의 온기를 체감하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취재하다 만난 광양의 밥상’은 일부러 찾아간 맛집이 아닌, 마을 골목과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들을 기록합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과 혼자서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 그 속에서 말없이 오가는 투박한 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들이 광양의 소박한 풍경을 깨우고,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삶을 확인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광양 망덕포구에서 만난 구수하고 시원한 닭탕한 그릇

취재를 다니다 보면 밥때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오전 내내 사람을 만나고 마을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배에서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날도 그랬다.

8월의 햇살이 뜨거웠다. 광양의 이야기를 찾아 망덕포구 쪽을 걷던 중 진월면 망덕리 내망마을 입구, 진월톨게이트 가까운 곳에서 작은 식당 하나를 만났다. 이름은 앵두나무집.

화려한 간판도 없고 요즘 식당처럼 번듯하게 꾸민 모습도 아니었다. 오래된 시골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옮겨놓은 듯한 소박함이 오히려 마음을 끌었다. 주인 부부의 얼굴에는 오래 손님을 맞아온 사람들 특유의 편안한 미소가 있었다. 벽에 걸린 친절서비스 교육 자료와 여러 증서도 눈에 들어왔다.

“닭탕 한번 드셔보세요. 순한 맛도 있고, 매운맛도 있어요.”

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닭탕을 주문했다.

봄이면 앵두나무와 매화나무, 벚나무 등 갖가지 꽃이 피어나는 시골집 같은 풍경의 ‘앵두나무집’. 토종닭으로 끓여내는 구수한 닭탕과 오래된 장독이 어우러져 옛 고향집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사진=문성식

잠시 뒤 커다란 냄비 하나가 식탁 가운데 놓였다.

보글보글 끓는 국물 사이로 큼직한 무가 떠 있고, 토막 낸 닭고기가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으로 다시 보아도 그렇지만, 실제로 마주한 닭탕은 요즘 흔히 먹는 삼계탕이나 백숙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닭을 한 마리 통째로 내놓은 것도 아니고, 살을 잘게 찢어 놓은 닭곰탕도 아니었다.

큼직하게 토막 낸 닭고기와 무가 넉넉한 국물 속에서 함께 끓고 있었다.

국물을 한 국자 떠 입에 넣었다.

“어, 시원하다.”

첫맛은 담백했다. 그런데 목을 넘어가면서 은근한 깊이가 느껴졌다. 닭에서 우러난 구수한 맛에 무의 시원하고 달큰한 맛이 겹쳤다. 국물은 맑은 편인데도 밍밍하지 않았다. 간이 지나치게 세지 않아 몇 숟갈을 연거푸 떠먹게 됐다.

묘하게 익숙한 맛이었다.

소박한 밑반찬 사이로 큼직한 닭고기와 무를 푸짐하게 담아낸 닭탕 한 상. 화려하진 않아도 한 숟갈 떠먹으면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 맛에 밥 한 공기가 절로 비워지는, 정겨운 할머니 밥상이다. 사진=문성식

닭으로 끓였는데 소고기뭇국을 먹는 듯한 시원함이 있었다.

뜨거운 8월이었다. 냄비에서는 계속 김이 올라오고,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런데 이상했다. 뜨거운 국물을 먹을수록 속은 오히려 개운해졌다.

이른바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이런 것일까.

무는 오래 끓여졌는지 젓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부드럽게 갈라졌다. 입에 넣으면 무 특유의 단맛이 은근하게 퍼졌다. 국물에 닭기름이 과하게 돌지 않아 느끼함도 없었다.

그리고 닭고기.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 들자 살이 뼈에 붙어 있었다. 부드럽게 풀어지는 일반적인 닭고기와 달리 씹는 맛이 있었다. 토종닭 특유의 탄탄한 육질이었다.

한 번 씹고, 두 번 씹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국물 한 숟갈을 곁들이니 닭고기의 담백함과 무의 시원함이 다시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국물이 좋아서 한 숟갈, 닭고기가 좋아서 또 한 점.

그러다 흰밥 한 공기를 국물에 말았다.

사진 속 밥상을 보아도 그렇다. 커다란 냄비 하나를 중심으로 흰밥과 몇 가지 소박한 밑반찬이 둘러앉아 있다. 화려한 반찬은 없다. 김치와 깍두기, 나물과 무침류의 찬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그런데 이상하게 밥상이 푸짐해 보인다.

뜨거운 닭탕에 밥알이 하나둘 풀어지고, 국물을 머금은 밥알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여기에 잘 익은 김치 한 조각을 얹으면 입안에 매콤하고 새콤한 맛이 번진다. 다시 국물을 떠먹으면 그 매운맛을 닭탕의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이 말끔히 씻어준다.

소박한 식당 벽면에 자리한 ‘앵두나무집’의 메뉴판. 닭탕과 백숙 등 국내산 토종닭을 고집하는 차림표에서 세월이 쌓아 올린 깊고 진한 향토의 손맛이 느껴진다. 사진=문성식

밥 한 숟갈, 김치 한 점, 닭고기 한 점.

그리고 다시 국물 한 숟갈.

그렇게 먹다 보니 어느새 밥그릇이 비어 있었다.

그때 오래전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꿩 대신 닭.’

어릴 적 명절이면 들었던 말이다.

예전 고향에서는 설날 떡국에 꿩을 넣기도 했다. 겨울이면 가까운 야산으로 꿩을 잡으러 가기도 했고, 꿩을 구하지 못하면 닭으로 국물을 냈다. 아버지가 토끼를 잡아오시던 기억도 있다.

토끼털은 둥글게 말아 검정 고무줄로 묶어두었다가 겨울 귀마개처럼 쓰기도 했다. 꿩의 깃털은 모자 장식이 되기도 했고, 아이들의 놀이감이 되기도 했다.

그때는 먹을 것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고기는 밥상에 오르고, 털과 깃털도 생활 속에서 다시 쓰였다. 그래서 음식 하나에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상호처럼 마당 한편에 앵두나무가 푸르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앵두나무집’ 전경. 꽃과 정원을 가꾸는 주인장의 따스한 손길과 소박하고 정겨운 향토 식당의 정취가 마당 곳곳에 스며 있다. 사진=문성식

가난했지만 지혜로웠고, 부족했지만 버리지 않았다.

그 시절 어머니들이 그랬다.

특히 설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닭장떡국의 맛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다.

전라도 지역에는 닭을 간장에 졸여 만든 ‘닭장’을 떡국의 재료로 사용하는 음식이 전해져 왔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도 닭장떡국을 전라도 지역의 떡국으로 소개하며, 재래간장에 닭을 졸여 만든 닭장을 국물 재료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닭의 진한 육수와 간장이 어우러져 구수한 맛을 내는 음식이다.

‘닭장’이라는 이름도 재미있다.

닭을 가두어 기르는 닭장이 아니라, 닭을 간장에 졸여 만든 음식이다.

닭을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내 집간장에 졸여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국을 끓였다. 냉장고가 없거나 지금처럼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던 시절, 한 번 마련한 닭을 오래도록 알뜰하게 먹기 위한 생활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었다.

그래서 닭장떡국은 집집마다 맛이 달랐다.

어떤 집은 간장이 짰고, 어떤 집은 달큰했다. 장독대에서 오랫동안 익은 집간장의 향이 닭고기에 배어들었다. 닭의 살과 뼈에서 우러난 진한 맛까지 더해지면 별다른 양념을 많이 넣지 않아도 국물은 깊어졌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이런 음식문화와 연결해 설명되곤 한다. 다만 그 유래가 하나로 확정된 것은 아니며, 전라도의 닭장떡국과 관련해 꿩을 대신해 닭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생각해 보니 이날 만난 닭탕도 그 오래된 밥상의 기억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망덕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내망마을. 마을 입구를 지키는 커다란 표지석과 그 너머로 보이는 소박한 가옥들에서 평화로운 시골 정서와 정겨운 일상이 느껴진다. 사진=문성식

닭 한 마리와 무 한 토막, 그리고 장맛.

재료는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한 음식일수록 재료의 맛이 정직하게 드러난다. 닭에서 우러난 육수와 무의 달큰하고 시원한 맛, 여기에 간을 맞추는 장맛이 어우러져야 한다.

어머니들은 좋은 재료를 많이 넣는 것으로 음식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있는 재료를 가장 맛있게 먹이는 것이 손맛이었다.

봄에 병아리를 사다 마당에서 키우고, 모이를 주고 물을 먹이며 기다렸다. 닭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키운 닭 한 마리를 명절이나 손님이 오는 날 잡았다.

그러니 닭 한 마리가 밥상에 오르는 일은 작은 잔치였다.

닭 한 마리가 자라기까지의 시간만큼 가족의 기다림도 길었다.

그래서 옛날 닭요리에는 음식 이상의 것이 있었다.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고, 먼 길 찾아온 손님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 내어주고 싶은 정이 있었다.

그날 닭탕 한 냄비 앞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다.

국물은 뜨거웠고, 닭고기는 쫀득했다. 무는 달큰하면서도 시원했다.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은근한 장맛이 입안에 남았다.

무엇보다 밥과 잘 어울렸다.

국밥처럼 한꺼번에 말아 먹어도 좋고, 닭고기를 먼저 건져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도 좋았다. 김치를 한 조각 곁들이면 맛은 또 달라졌다.

이런 음식은 혀가 먼저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코가 먼저 기억하고, 눈이 기억하고, 마음이 기억한다.

장독대에서 풍기던 간장 냄새,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냄새, 마당에서 울던 닭소리, 뜨거운 국물을 식히며 후후 불던 어린 시절의 입김까지.

세월이 흐르면 그런 것들이 음식의 맛으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음식보다 이런 소박한 음식이 더 그리운지도 모른다.

비싼 고기보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국 한 그릇이 생각나고, 이름난 음식보다 장독대 냄새 밴 집밥 한 끼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오늘도 한 끼 식사에 감사합니다.’ 식탁 둘레에 둘러앉아 뜨끈한 닭탕 한 그릇을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에서 따스한 온기와 정이 묻어난다. 정성스레 차려낸 밥상 앞에 모여 안부를 묻고 잔을 기울이는 풍경이 시골 식당 특유의 훈훈함을 전해준다. 사진=문성식

닭국이면 어떻고 닭탕이면 어떠랴.

어떤 곳에서는 닭무시탕이라 부르고, 또 어떤 곳에서는 닭장탕이라고 부른들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중요한 것은 그 이름 속에 어떤 시간이 들어 있느냐일 것이다.

그날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8월의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식당 안에서 흘린 땀이 채 마르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몸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뜨거운 국물을 먹고 땀을 흘렸으니 몸은 더워졌는데, 속은 오히려 시원했다.

망덕포구로 이어지는 길에는 여름이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취재길에서 우연히 만난 닭탕 한 그릇.

배를 채운 것은 닭과 무와 국물이었지만, 마음을 채운 것은 오래전 고향의 기억이었다.

할머니의 손맛은 특별한 비법에서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재료 하나, 잘 익은 장 한 숟갈, 정성껏 끓이는 시간, 그리고 가족과 손님에게 따뜻한 한 끼를 먹이고 싶은 마음.

아마 그것이 우리가 오래도록 ‘집밥의 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겨운 밥상을 뒤로하고 다음 이야기를 향해 길을 나선다. 푸른 산자락과 잔잔한 물결, 전어 조형물이 한데 어우러진 망덕포구의 평화로운 풍경. 넉넉한 인심과 삶의 향기를 품은 이 포구를 지나 또 다른 맛과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 여정을 이어간다. 사진=문성식

그날 나는 광양의 한 시골집 같은 식당에서 뜨거운 닭탕을 먹으며 오래 잊고 있던 고향의 맛을 다시 만났다.

밥은 때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다시 끓여내는 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