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인문학적 가치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광양의 근대 유적들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가교 구실을 합니다. ‘광양시니어신문’을 통해 연재되는 이 기록들이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잠든 고향의 푸른 풍경을 깨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히 지나는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닙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건너온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광양의 시간 여행이 우리 땅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고,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항아리 모양의 바다, 광양만이 품은 두 얼굴
남해안 지도를 펼쳐보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사이에 거대한 항아리처럼 깊숙이 파고든 만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동서로 약 27km, 남북으로 약 15km에 달하는 이 바다가 바로 광양만입니다. 입구는 좁고 안쪽은 넓은 전형적인 반폐쇄성 내만 구조를 지닌 이곳은, 행정구역상 전남 광양시·여수시·순천시와 경남 하동군·남해군을 한 품에 둘러싸고 있는 남해의 거대한 정신적·지리적 중심지입니다.
오백 리를 달려온 섬진강을 비롯해 광양동천, 광양서천, 수어천 등 20여 개의 하천이 모두 이 한곳으로 흘러듭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격렬하게 교차하고 다정하게 섞이는 넓은 기수역(汽水域)은, 과거부터 수많은 생명을 길러낸 생태의 보고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광양만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국내 2위 규모의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가 들어선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익숙하지만, 본래 이곳은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해산물로 인근 백성들의 삶을 오랫동안 풍요롭게 지켜온 어머니의 품 같은 어촌 바다였습니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찾아가는 공존의 데이터
맑고 차가운 섬진강 물과 남해의 조수가 만나는 광양만 기수역의 대표적인 명물은 단연 ‘재첩’입니다. 쫄깃한 식감과 구수한 국물 맛을 자랑하는 광양 재첩은 전국적인 특산물로 자리 잡았고, 광양만 연안의 넓은 갯벌과 습지는 흑두루미, 저어새 등 멸종위기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 소중한 월동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포스코 광양제철소 건설을 신호탄으로 광양만은 거대한 격변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광양항 건설과 여수국가산업단지 확장 등 대규모 매립이 잇따르면서 전체 해안선 368km 중 절반 이상이 콘크리트와 철강으로 둘러싸인 인공해안선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다 안쪽의 수면적이 줄어들자 해수의 순환율이 감소했고, 오염물질이 빠져나가지 못해 정부가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할 만큼 바다는 깊은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수십 년간 여러 국책 사업이 중첩되면서 바다가 받은 상처를 우리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의 문제다. 다행히 현재 광양만에서는 개별 사업의 영향만을 따지던 과거의 방식을 넘어, 20년 이상의 환경·생태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여 바다가 받는 누적된 충격을 과학적으로 진단하는 ‘누적영향평가’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세계 최대 수준의 제철소와 거대한 항구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순간에도, 철새가 날아오고 재첩이 자라며 봄이면 매화가 피어나는 이 복잡한 ‘공존’이야말로 광양만이 가진 가장 위대하고도 숙연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숨결 위에 세운 세계적 현수교
이 복잡하고 위대한 광양만 바다 위를 가로지르며 푸른 하늘을 찌를 듯 웅장하게 서 있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광양시 금호동과 여수시 묘도동을 잇는 ‘이순신대교’입니다. 총 길이 2,260m의 왕복 4차선 현수교인 이 다리는, 단순히 두 도시를 잇는 교통로를 넘어 한국 교량 건설사의 기념비적인 방점을 찍은 위대한 걸작입니다. 설계부터 시공, 장비 제작과 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오직 국내 기업의 순수 기술력으로만 완수한 최초의 다리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6번째로 현수교 자립 기술국이 되었음을 전 세계에 선포한 자부심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다리의 이름이 ‘이순신대교’가 된 것은 교량이 놓인 이 바다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이자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노량해전’이 시작된 역사적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장군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다리에는 흥미로운 숫자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두 주탑 사이의 거리인 주경간장이 정확히 1,545m인데, 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해인 1545년을 그대로 기념한 것입니다.
또한 바다에서 상판까지의 높이는 80m로 일반 도로 중 가장 높아 대형 선박들이 자유롭게 그 아래를 통과하며, 하늘을 향해 뻗은 콘크리트 주탑의 높이는 무려 270m에 달합니다. 이는 서울 남산이나 여의도 63빌딩보다 높은 규모로, 건설 당시 현수교로서는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했습니다.

경제의 혈맥을 뚫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다
이순신대교의 개통은 광양만권 주민들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과거 광양국가산업단지와 여수국가산업단지 사이는 직선거리로는 지척이었지만 바다로 가로막혀 있어, 대형 화물차들이 육지를 따라 굽이굽이 60km를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무려 80분이 걸리던 이동 시간이 이순신대교가 놓인 후 단 10분으로 대폭 단축되었습니다. 70분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물류비용이 절감되면서 두 도시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이는 ‘도시 연담화’ 효과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통행료를 전혀 받지 않는 ‘무료 도로’라는 점입니다. 비록 대형 화물차의 통행이 많아 천문학적인 유지 관리비가 발생하여 지자체의 고충이 크고 국도 승격의 과제가 남아있지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바다 위를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이 길은 유독 광양과 여수 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차가 멈출 수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이기에 과속하기 쉽지만, 제한속도 60km/h를 지키며 여유롭게 달리다 보면 묘도 초입에 위치한 이순신대교 전망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거북선을 형상화한 이 전망대에 오르면, 낮에는 세계 최대의 제철소와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 밤에는 웅장한 다리의 조명과 광양항의 불빛이 어우러진 세계적인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인간의 기술과 자연의 품이 만나는 바다
광양만과 이순신대교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치열한 삶이 만들어낸 웅장한 산업의 성취와, 그 모든 충격을 묵묵히 받아내며 여전히 맑은 숨을 쉬려 노력하는 대자연의 숭고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거친 바다 위로 우뚝 솟아오른 270m의 주탑은 마치 일제의 압제 앞에서도, 거대한 풍랑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삶을 일구어온 우리 시니어 세대의 당당한 기개와 닮아 있습니다.
과거 김 양식으로 풍요롭던 어촌 바다가 국가 경제를 이끄는 공업지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상실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스스로를 닫지 않고 섬진강의 맑은 물길을 받아들이며 여전히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목숨을 바쳤던 그 푸른 바다 위에서, 오늘날 우리는 경제를 살리고 영호남을 잇는 대화합의 다리를 만납니다.
거대한 다리 위를 지나며, 우리네 인생도 때로는 거센 풍랑을 만나고 지형이 바뀌는 격변을 겪을지라도, 중심을 단단히 잡고 서 있는 주탑처럼 묵묵히 전진해야 함을 배웁니다. 인간이 지은 가장 높은 다리 아래로, 자연이 만든 가장 깊은 물길이 흘러갑니다. 그렇게 광양만의 밤은 산업의 불빛과 우주의 별빛이 하나로 섞여 들며 깊어갑니다.
다음 회에는 백운산의 남쪽 줄기가 뻗어 내려와 봉화의 역사를 품고, 이제는 광양만 전체를 한눈에 굽어보는 광양의 위대한 조망점, ‘구봉산과 디지털 봉수대의 이야기’ 가 이어집니다.



































